후기

in kr •  10 months ago 

<서울의 봄> 후기.

마침내, <서울의 봄>을 봤다. 답답해진다는 말을 많이 듣고 봤음에도 역시, 답답했다. 병력수도 적고 계획도 허술했던 반란군의 쿠데타가 대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을 책 <휴먼카인드>를 읽으면서 ‘아주 조금’ 풀 수 있었다. <휴먼카인드>의 저자는 인간의 본성이 결코 악하지 않으며 (물론 악한 면도 있지만) 서로 ‘연결’하고 ‘협력’하면서 진화했다고 말한다. 평화로운 협력은 인간 종의 생물학적 본능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_
공수부대를 되돌리겠다는 반란군의 말을 진압군이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똥별’의 무능함으로 보일 수도 있고, 이 사태가 끝난 뒤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훈련 중 탄피 하나라도 분실하면 큰일 나는 집단이 군대다. 만약 전사자가 나온다면 지휘관들은 군과 이 사회에서 퇴출당한다. 어떻게든 아군끼리 교전을 막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능(본성)적으로’ 아군에게 발포하는 것은 꺼림칙하다. 아무리 훈련된 군인이라도 그런 본성을 떨쳐내기는 어렵다. (<휴먼카인드>에서 전쟁에서 총을 쏘지 않는(못하는) 군인들의 실제 사례들이 나온다)

반란군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궁지에 몰린 것은 반란군 쪽이었다. 성공하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지만, 여기서 멈추면 자신들이 그동안 누렸던 군인으로서의 안정된 (그리고 영예로운) 삶이 일순간에 날아간다. 반란군은 절박했지만 진압군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이 ‘무대뽀’가 통했다. 상대가 아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_
<휴먼카인드>에서는 인간 모두가 선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인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인간들의 본성은 폭력을 혐오하고 ‘연결’과 ‘협력’을 선호한다. 이것이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에렉투스를 제치고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주장한다. 반란군 세력들은 <보편적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 유형이었을 것이다.

_
덧.

요즘에는 스마트폰이 널리 퍼져 있어서 이런 식의 쿠데타는 불가능하다. (처음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감사한 마음이) 실제로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집권세력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민주화 운동을 감시하고 참가자를 색출하기도 했다고.

배우 정우성이 잘 생겨 보이지 않았다. 그냥 눈이 부리부리한 군인처럼 보였다. 그의 감정을 쫓아가느라 ‘잘생김’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영화 <박쥐>에서는 송강호가 섬세한 미남으로 보였다. 역시 뛰어난 연기자는 그 연기만으로 주변 공간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고 환상을 현실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