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상(제7연대 3중대 3소대장) 1
이우상은 1950년 6월 25일 당시 제7연대 1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보직되어 있었다. 그는 김명익이 중대장으로 있었던 중대의 소대장을 역임했다. 그가 증언에 임한 것은 1966년 2월 18일 한 차례였다. 그의 증언은 김명익의 증언을 교차 검증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세부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변전에는 어떤 사건 겪은 것이 있습니까?) 38선 근무했습니다. (38선 화천 오음리 이쪽입니까?) 일람리입니다. (신남리전투 했습니까?) 우리 7연대가 했습니다. 우리 1개 대대가 가입했고 저는 거기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8선 근무할 때 비가 올 때 민간인 죽이고 가고 그랬습니다. (38선 근무 때에 겪은 것 이런 것이 있습니까? 6.25나가지고 쭉 말씀을 해주세요. 그 당시에는 몇 중대에 계셨습니까?) 1대대 3중대에 있었습니다. (몇 소대장입니까?) 2소대장인가 되었어요. (중대장이 누구입니까?) 서형구대위라고 5기생인데... 대대장은 5기생 김용배대령인데 5기생인데 별 달고 죽었어요. □김용배하고 지금 정훈학교 교장하고 둘이 다 겪은 것입니다. (그때에 어디에 배치되었어요.) 연대본부 춘천시 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1대대는 예비지요. (25일날 외출 나갔습니까, 안 나갔습니까?) 나갔지요. (연대장 얘기는 외출 안 보내고 영내 대기를 시켰다고 하는데...) 일요일날 아침에 외출 나가고 안 나가고가 문제가 아니라... 다 나가 있었습니다. (사병들은 일요일날 안 나가고...) 외출 일부 가고 그랬습니다."
"(연대장 얘기는 24일날 전방에서 적의 병력이 집결을 하고 포진지가 보이고 평상시보다 징후가 이상했다. 그래서 24일날 정상적으로 외출외박을 시키지 않고 영내대기를 시켰다고 그러는데요.) 영내 대기가 없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보냈지요?) 그렇지요. 보냈는데 지금처럼 다 나가지 못합니다.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와서 잡니다. 25일날 다섯 시에 출동했습니다. 사병들은 영내에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 되었어요. 일요일 날 쭉 외출을 보냈어요?) 7연대는 38선 근무를 했기 때문에 외출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전사기록을 보면 그 당시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저 애들이 평화공세를 하는 바람에 6월10일부터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해산된 것이 19일 날인가 해제가 되었어요.) 말단에서는 모르겠습니다. (비상경계라면 첫째 외출외박이 없을 것이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해제가 되었는데 24일 날 이쪽에 있는 부대들은 마찬가지로 외출외박을 보냈다 이것입니다. 그전에 일요일에는 외출외박이 있었느냐 이것입니다.) 지금 외출외박이라고 그러는데 요새의 외출외박하고는 다릅니다. 우리도 집에서 자다가 아침에 막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얘기를 계속해주세요.) 아침에 4시반 정도인가, 5시반 정도되었는데 □□병이 왔어요. 저는 평시의 비상이다 해가지고 그냥 부대에 들어갔습니다. 춘천은 멀지않으니까 5분 내에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본부는 어디입니까?) 정차장 옆입니다. 5분 내에 들어오는데 지금 춘천보다 훨씬 적으니까... 비상이다 해가지고 완전군장을 해가지고 대대별로 연병장에 집합을 했어요. 하니까, 대대장이 중대장들 나온 다음에 몇 마디 하더니 전체 대대병력에게 얘기를 하는데 내가 시방 기억이 안 납니다마는 하여튼 적이 공격해왔다는 내용의 말이 있어 가지고 도보로... 차량이 없었습니다. 도보로 저희들이 소양강을 건너가서 바로 앞에 유포리 일대에 배치를 했습니다. 나가가지고... 그때 나가려고 하니까 소양강에서부터 지금 동네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부녀자들이 도로를 나가지 못할 정도로 피난을 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들도 과거 38선 근무를 했으니까 주민을 아는데 인사를 하고 염려를 하지 말라 그러고 가는 것입니다.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평상시에 7연대는 38선에서 접촉이 있었고 해서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없었습니다. 7연대 병사들이 쭉 가서 배치를 했는데 포탄이 떨어져요. 그 포탄은 약 □포 정도 됩니다. 적 병력이라는 것은 볼 수 없어요. 그런데 꿍꿍 소리가 나요. 우리가 9시 정도... 낮에 정도 되었는데 적은 나타나지 않아요. 그때 25일 날 춘천에 비가 왔어요. 아침나절부터 계속해서 왔을 때입니다. 보슬비가 오는데 젖을 정도는 아니오. 보슬비가 오는데 그때 교전을 시작했는데 낮에 병력이 소수병력이지요. 분대 정도지요. 이렇게 저쪽 마산리에서부터 춘천 방향으로 약진해 오는 것입니다. 그 지형은 논으로 말미암아 200미터 300미터 평야입니다. 적이 1개 분대 가량 약진해서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는 원거리 단거리 그런 사격 없이 적을 보았으니까 무조건 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 하루 저녁 새었어요. 저녁에도 불빛이 보이면 사격하고 위협사격도 하고 그랬습니다. 아침절에 보니까 우리들 배치한 100미터 앞에 독립가옥이 있었는데 거기에 포로를 놓쳤어요. 처음 적의 배낭과 전대 정도 포획을 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소대 전면인가 그렇게 해가지고 있다가 11시부터 2시 사이에 철수를 해서 후방 고지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300미터 가량 뒤의 고지에 갔어요. 갔는데 화천 쪽에서 오는 길입니다. 양구에서 오는 길도 있는데 화천 쪽의 대도로에 적 기마병과 말이 끄는 포를 가지고서 약 500미터 앞에 있는 학교 연병장에 설치하는 것을 목격을 했습니다. 그때 대대 OP 중대 각 OP가 대구경포탄의 사격을 받았습니다. 1개 대대 전면이... 우리 소대 뒤에 대대 OP가 있었는데 우리 대대 전부가 포탄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3시경 되었을까요. 탱크가 그때 나타났어요. 나타났는데 화천 대도로 마산리 부근입니다. 그럴 때에 시방과 같이 3.6인치 로켙트가 아니고 2.36인치 로켙트를 가지고 탱크 파괴하려고 1개 분대 가량 다리고 도로 배수로 가까이 나타났어요."
"(몇 대입니까?) 다섯 대 정도입니다. 나가서 쏘았는데 탱크에 기관총이 있는지 없는지 이것은 내가 상식이 없었습니다. 포는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2.36을 가지고 쏘았는데 이것은 맞아도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쏘는데 그냥 기관총이 날아오는 것입니다. 혼나고 나오는 것입니다. 조대가 있는데 그냥 뛰어서 허겁지겁하게 우리 점령한 산에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병사가 부상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있는 판에 올라가서 약 30분 정도 되었는데 철수하라 그래서 소양강을 건넜습니다.
@tipu cu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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