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book 100] 변하지 않는 도시

in hive-102798 •  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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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거야. 견뎌내지 못하고 달라지는 거야. 세월의 압력에 그렇고 전염병의 협박은 더 그랬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곳들이 여긴 많더라.



5년 만에 다시 찾은 교토는



여전히 그대로였어. 달라진 게 없진 않아. 관광객은 더 늘어나 골치고, 전염병 지원금으로 새 단장을 한 가게들이 많아졌어. 하지만 하던 일을 모두 그대로 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大衆酒店 주카이의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더라. 오늘만 그랬던 건지 아니면.. 대신 손주로 보이는 청년이 할머니를 돕고 있었어. 그리고 영어를 하더군.



그 도시에 가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곳에서 진짜 너를 만나고 싶다고

_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관광객은 받지 않는다는 가게들은 ‘멤버스 온리’가 아닌 ‘리저베이션 온리’를 써 붙여 놓았어. 예약해야 돼. 너 멤버는 아니어도 좋은데 예약이란 걸 해야 한다고. 난 준비가 필요하거든. 그런 가게들이 자꾸 늘어나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 안 붙들어도 오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니까.



뭣 때문에 그런지는 나도 몰라. 나도 여기가 좋으니까. 여기가 끌리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닌 게지. 그리고 그런 이들이 넘치니까 예약을 하라고, 아니면 멤버가 되라고 벽을 쌓는 거야. 그 성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그런 곳을 알고 있어? 들어가고 싶어 죽겠는 멤버십 말이야. 예약하기 위해 광클을 멈추지 말아야 할 좋.은.곳. 말이야.



그날 교토에서의 자전거 맛을 잊지 못해 바로 짐을 싸고 교토살이를 시작했다. '유라쿠소有樂所'라는 게하에 짐을 풀고 게하에서 제공해주는 내. 자.전.거.를 타고 교토 구석구석 여기저기를 얼마나 헤매었던가. 그리고 체중이 한 달 사이 10kg쯤 빠져나갔다. 그저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 뉴스에서는 스트레스가 비만의 원인이라고. 케케묵은 진실을 또 한 꼭지 할애해서 콕 집어주고.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어내 준 건 자전거라고. 깨달음에 안도하며 염려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될 거라고. 그러다 죽는다고.

_ [City 100] 마법사의 백마 / @mmerlin



서울을 떠난 첫날 자고 일어났더니 삼 킬로가 사라졌어. 유랑을 시작했을 뿐인데. 그리고 이번엔 브리튼의 백마가 함께 하지. 변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십년 전 나의 첫 게하 '유라쿠소有樂所'는 오년 전에 와보니 맨숀으로 변했는데, 오년 전 묵은 두 번째 게하 역시 맨숀으로 변했더군. 게스트하우스가 주인들을 맞은 거야. 그리고 누군가 거기 살고 있지.



그런데 미셸은,



마법사가 첫 번째 글짓기를 완성했던 커피숍 미셸은 오년 전에는 비어있더니, 이번엔 브리튼 자전거 전문점으로 재개장을 했더군. 세상에나, 마법사가 백마 타고 오는 걸 어찌 알았을까.



그리고 ‘春子’가 사라졌다.



감았던 눈을 뜨자, 거대한 평원에는 멀린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멀린의 짐가방, 나나상과 주인장, 회사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춘자’역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골목도 사라지고 ‘춘자’를 둘러싸고 있던 마을도 사라졌습니다.

_ M.멀린, <미래도시건설전사> 의식종료 中



‘멤버스 온리’를 전수해 준 春子는 마법사의 축복기도와 함께 정말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걸까? 春子는 불꺼진 간판만 남았어. 마이코네가 지나가던 길에 비치던 그 모습은 春子가 사라졌다고 다시 와 확인해 보라는 전령이었던 걸까?



언제였을까? 春子의 삼차원 공간에 오코노미야키 집이 들어선 게 적어도 사년 전이니, 春子는 정말 마법사의 축복기도와 함께 사라진 걸까? 그러면 멤버스는, 春子가 단호하게 내걸었던 ‘멤버스 온리’의 멤버스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어디서 무얼 하며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멤버스 온리’를 내걸 때에는 ‘멤버스 포에버’를 생각하게 되는 거야. ‘온리’에 부합하기 위해 자격을 갖추었던 이들은 그것이 적어도 ‘얼웨이즈’일거라고, 심지어 ‘포에버’이기를 바라며 멤버스가 되었을 텐데. 사라져 버린 春子가 야속할까? 하지만..



어두운 밤, 등을 밝힌
‘春子’의 집에는
멤버스가 살고 있는가?

‘春子’는 외로이
자신을 찾아 줄
멤버스를 기다리고 있는가?



‘멤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春子가 다른 차원으로 멤버스를 찾아 나선 거라면, 외로운 밤을 견디다 못해 이 시공간을 두고 떠난 거라면. 마법사는 春子에게 안타까운 이별을 고할 수밖에. 그리고 곧 다시 만나자는 기약을 남길 수밖에.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셔요. 함께 오셔요. 모두 오셔요. 이 ‘春子’에게로, 그대들의 미래에게로.. 와서 우리 함께 놀아요. 우리 함께 춤추고 달리고 웃어요. 세상이 모두 우리의 것이잖아요. 보세요. 모두가 이렇게 기다리는데.. 모두가 이렇게 간절한데.. 그깟 현실일랑 아랑곳하지 말고 오셔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요.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대들이 걱정하는 모든 일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답니다. 그대들이 꿈꾸고 열망하는 모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어서 오셔서 ‘春子’의 손을 잡고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아가요. 걷고 또 걸으면, 달리고 또 달리면, 부르고 또 부르면… 그것은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이니,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거예요. 우리는 결국 살게 될 거예요. [스팀시티], 우리의 도시에서..

_ M.멀린, <미래도시건설전사>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中



그래 그런 줄 알았어. 春子가 사라진 줄 알았다니까. 아쉬운 마음에 다시 찾은 春子는 세상에, 절반을 오코노미야키 집에 내어주고 2층에 자리를 잡았더라고. 그럼 그렇지. 春子가 멤버스를 두고 어디를 가겠어. 여전히 ‘멤버스 온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미성년자는 출입을 할 수 없다고, 성인만,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성인만 들어올 수 있다고 표지를 바꿔 달았더라고. 우리는 성인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책임지고 있을까? 그 물음에 답할 수 있기 전까지는 春子에 들어갈 수 없는 거야. 이제는 ‘멤버스 온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이들만’으로 조건을 바꿔 내건 거야.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되었지. 春子는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걸. 희미해져서 잘 알아볼 수도 없는 문패에 ‘하루코’라고, ‘春子’라고 명확히 적혀 있더라고. 누굴까? 春子는? 오코노미야키 집의 머리가 하얗게 샌 여주인일까? 문에 걸려있던 싸인이 적힌 야구복의 주인은 여주인의 아들일까? ‘하루’라고 적혀 있던 그 유니폼, 春子, 봄 말이야 .



春子가 내어준 1층 오코노미야키 가게는 줄만 서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 그리고 아주 맛이 있지. 밀가루가 거의 없고 야채와 고기들로만 이루어진 오코노미야키와 야키소바가 맛 나더라. 덕분에, 줄만 서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덕에 이 가게에는 초저녁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삼십 분, 한 시간을 기다리는 거야.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春子는 어떤 마음일까? 여전히 ‘멤버십 온리’가 소중할까?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변하는 것들이 있어. 그리고 그것들은 함께 성장하지. 물론 우리는 지금은 멀리 있어도 언제나 함께야.



“도시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가기가 무척 어려워.” 너는 말한다. “나가기는 더 어렵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_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P.S.

“무섭지 않아?” 나는 그림자에게 물었다. “지하의 암흑 속에서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게.”

“물론 무섭습니다. 생각만 해도 오싹해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마음먹었잖아요. 애당초 이 도시를 만들어낸 건 당신 아닙니까. 당신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어요. 실제로 조금 전, 눈앞에 우뚝 선 단단한 벽을 무사히 통과했고요. 그렇죠? 중요한 건 공포를 이겨내는 겁니다. 게다가 수영은 당신 특기 아니던가요. 숨도 오랫동안 참을 줄 알고.”

_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위즈덤 레이스 + Book100] 01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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