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史금사」에 考(고)하면,
이 때 女眞軍(여진군)의 參謀長된 者(참모장된 자)는 金 太祖(금 태조)라.
契丹(거란)은 漸漸 衰弱(점점 쇠약)하고 女眞이 勃興(여진이 발흥)하는 때니,
萬一 睿宗(만일 예종)이 初志를 堅守(초지를 견수)하여
一時의 困難(일시의 곤란)을 잊고,
尹瓘을 專任(윤관을 전임)하였다면 高麗의 國勢가 興盛(고려의 국세가 흥성)하여
後世(후세)에 外國의 彼征服者(오국의 피정복자)될 恥辱을 免(치욕을 면)할 뿐 아니라,
곧 契丹을 代(거란을 대)하여 興한 者(흥한자)가 金이 아니요
高麗(고려)일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女眞(여진)은 九城 返還의 恩(구성반환의 은)을 感(감)하여
自今(자금)으로 世世子孫(세세자손)이 世貢을 修(세공을 수)하고
瓦礫(와륵)으로라도 高麗 境上에 投(고려경상에 투)치 않겠다고 盟誓(맹서)하였다.
이 뒤에 女眞이 强大(강대)하여 大金國(대금국)이 됨에
비록 高麗(고려)에 바치던 朝貢은 廢(조공은 폐)하였으나
金一代(금일대)에 한 번도 高麗를 侵入(고려를 침입)한 일이 없었으니,
이는 尹瓘 一戰의 功(윤관일전의 공))이다.
尹瓘(윤관)의 때 史筆을 執한 者(사필을 집)한자가
尹瓘(윤관)을 仇視(구시)하던 金富軾의 徒黨(김부식의 도당)이었으니
尹瓘의 戰功(윤관의 전공)을 그대로 적지 않았으리라.
이것도 讀史者(독사자)의 알아 둘 바이다.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독립기념관>
考(고): 살펴보다
勃興(발흥): 세력이 왕성해짐
感(감): 고맙게 여기다
自今(자금): 이제부터
瓦礫(와륵): 깨진 기와조각
盟誓(맹서): 신앞에서 약속함
仇視(구시): 원수처럼 미워함
尹瓘(윤관: ? ~ 1111년)9성을 개척한 고려때 무장
金富軾(김부식: 1075~1151)시호가 ‘문열文烈’ 이다.
(옮기면)
「金史금사」를 살펴보면,
이 때 여진군의 참모장돤 자는 금나라 태조라.
거란은 점점 쇠약하고 여진세력이 왕성해지기 시작한때니,
만일 예종이 처음에 가졌던 뜻을 굳게 지켜서
일시의 곤란을 잊고,
윤관을 전적으로 믿고 맡겼다면,
고려의 국세가 흥성하여
후세에 외국의 정복을 받는 치욕을 면할 뿐 아니라,
곧 거란을 대신하여 흥한 자가 금나라 아니요
고려일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여진은 구성을 돌려준 은혜를 고맙게 여겨서
지금부터 세세자손이 대를 이어 공물을 바치고
깨진 기와장일지라도 고려영토안에 던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 뒤에 여진이 강대하여 대금국이 됨에
비록 고려에 바치던 조공은 폐하였으나
금나라 시기에 한 번도 고려를 침입한 일이 없었으니,
이는 윤관이 한번 전쟁해서 이룩한 공적이다.
윤관의 때 역사기록을 쓰던자가
윤관을 원수처럼 미워하던 김부식의 무리였으니
윤관의 전공을 그대로 적지 않았으리라.
이것도 역사를 읽는 사람들이 알아 둘 바이다.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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