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부패한 정치인, 탁신 치나왓 전 태국 총리에 대해서 1탄 Feat. 부정부패로 맨시티 구단주가 되다

in kr •  7 years ago 

안녕하세요 @brianyang0912 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태국의 정치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심도깊에 모든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지만, 전체적인 그림으로 태국의 정치혼동기의 시작과,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그 정치적 유산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전 태국의 총리이자 현재 해외도피중인 탁신 치나왓 입니다.

탁신은 누구 ?

탁신이란 이름을 들어보신 분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했다고 알려진 이사람, 맨시티의 구단주였던 이사람, 경찰이자 성공한 사업가였던 이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외도피중인 이사람에 대해 혹시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사진출처: 나무위키: 탁신 친나왓

탁신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탁신의 얼굴이 마윈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으며, 실제로 탁신 또한 10년만에 태국 최고 재벌중에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치앙마이 출산이며, 중국 화교 집안의 사람으로 30대까지 경찰로 삽니다. 태국에서 경찰의 힘은 무진장 쎈데, 70~80년대의 안기부급의 경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탁신은 부인은 아주 정치적 힘이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탁신의 부인의 어머니는 라오스의 왕족 출신이며, 가문은 태국 황실 경찰을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가문이었습니다. 탁신은 이를 바탕으로 경찰에서도 승승장구를 합니다. 웃긴건 탁신은 경찰을 하는 와중에 여러가지 비즈니스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업을 말아먹고 부채가 500만 바트로 한화로 약 1.8억원 정도 되죠. 1980년당시 돈이니 엄청난 빚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죠.

그러다가 인맥을 통해 정부기관에 컴퓨터를 납품하는 회사를 차리고, 이걸로 돈을 크게 법니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경찰에서 사임을 하고 영화제작을 합니다. 탁신의 아버지가 영화관련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관심이 있었나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업 분야를 넓혀갔고, 돈을 통해 고위급 정치인들과 엄청 친밀한 관계를 맺어갑니다. 1989년에 탁신은 케이블 방송사를 차리고, 당시 태국 문체부 장관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또 말아먹죠

그리고 탁신은 통신산업에 진출합니다. 현재까지도 태국에서 큰 대기업 중 하나인 AIS와 TOT의 전신 기업이죠.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모두 통합되어 탁신은 계열사를 거느린 회장이 됩니다.

동시에 정계까지 진출하면서 교육부장관, 외교부장관, 부총리, 총리등을 거치면서 정계급 거물로 성장을 해버립니다.

1997년 헌법개정 그리고 탁신이 총리가 되다

1997년 똠양꿍 위기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자 태국은 민주화 국가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헌법이 1997에 크게 개정되면서 가장 민주화된 헌법이라는 별명을 얻죠. 1997년 민주헌법의 가장 큰 변화는 의회내각제인 태국의 상원의원을 기존 국왕이 임명하는 방식에서 시민들의 직접투표로 바꾼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탁신은 타이락 (Thai loves Thai) 정당을 만들면서 포퓰리즘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2001년 선거에서 민주당을 압도적인 의석차이 (248 VS 128)로 이기면서 총리가 됩니다. 타이락 정당은 반부패와 경제성장을 필두로 선거에서 압승하게 되며, 1천원 의료보험 정책 (30 Baht Universal Health Care), 마약퇴치 전쟁 (두테르테랑 비슷함), 태국 남부 무슬림 극진주의자들을 강력하게 제압, 지방 경제 개발 정책 등을 포함해 저소득층을 위한(?) 포퓰리즘을 펼치게 됩니다.

이때부터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은 점차 탁신을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태국의 빈부격차는 엄청났고, 탁신은 경제성장정책과 포퓰리즘을 병행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면서 서민들에 엄청난 지지를 받습니다. 탁신의 독주는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되었죠.

그사이에 그는 차곡차곡 부정부패를 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탁신과 기존 재벌들 관료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돈으로 언론을 통제, 시민단체 통제등을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 정치를 병행하였습니다. 탁신은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고, 보수적이었으며, 기존 왕권을 부정하는 공화주의자였으며 엄청난 부정부패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경제인 25위에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축출당하다

2005년 탁신은 또 다시 엄청난 투표 격차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앞으로 수십년간 탁신은 계속 집권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죠. 지방의 농민들이 탁신을 엄청나게 지지하면서 계속해서 정권을 이어나갈 것 같이 보였습니다. 당시 탁신은 태국 남부 분리운동주의 태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지난 11년간 6천명이 테러로 살해된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Feat. 태국의 이슬람 분리운동 (Deep South Conflict in Thailand)
를 격하게 공격하고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면서 엄청난 무력저항을 받습니다. 그와 동시에 탁신은 태국 남부 분쟁지역에게 불리한 정책을 펴면서 왕실의 추밀원 (Privy Council)로 부터 경고를 받고, 위기감이 조성되게 됩니다. 왕실의 추밀원은 왕을 대변하는 곳으로 태국은 입헌군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상 왕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총리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에 탁신은 긴장을 하게 되죠.

당시 태국의 군인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므로 탁신으 군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측근을 주요 요직에 세우려 합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위치의 육군참모총장자리는 기존 장관급 군인들의 반대로 자신의 측근으로 인사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참모총장은 강력한 친 왕권인 쏜티가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3사단장 자리까지 추밀원장이었던 쁘렘의 최측근으로 임명이 되면서 사실 상 탁신은 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수완나품 공항 준공과정에서 탁신의 부정부패 사실이 발견되고, 탁신은 지속적인 언론 통제를 하려 합니다. 탁신의 비즈니스 친구인 그래미 그룹 (우리나라로 따지면 SM 또는 YG 엔터)의 파이분이 태국 최대 언론사인 방콕 포스트를 인수하려 했고, 방콕포스트의 한 기자가 수완나품공항 활주로에 균열에 대해 보도하면서 해고당하면서 언론인들이 격분하게 됩니다. 또한, 마티촌이라는 태국에서 유명한 일간지를 발행하는 인수하려하면서 이는 기존 언론인들에게 크게 위협으로 느끼게 되었고, 언론인들은 일심해서 탁신에게 반기를 들게 되죠.

더욱이, 쏜티라는 사람은 미디어계의 큰 손인데 금융위기 당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탁신이 집권하면서 경제상황이 극도로 나아지며, 많은 부채 탕감을 받으면서 친 탁신파로 탁신의 측근에서 탁신의 언론통제를 도와왔던 사람인데, 탁신의 지속적인 부정부패와 언론장악의 행위를 보고 한순간에 돌아서며 반탁신계로 돌아서게 됩니다. 미디어의 지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손티가 방송에서 탁신을 비난하기 시작하자, 탁신에 대한 반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됩니다. 이를 놓치지 않은 군부는 드디어 움직이게 됩니다.

2006년은 태국에서 아주 정치적으로 뜨거웠떤 기간인데, 2006년 10월 총선을 앞두고 9월에 군부가 구데타를 일으킵니다. 9월에 탁신이 UN 회의 참석차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구데타를 일으켜 버린 것이죠. 탁신은 오도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

그리고 그후

탁신은 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에는 탁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맨시티의 지분 55%를 매입하면서 구단주로 등판했고, 엄청난 비난을 맞게 됩니다. 탁신이 부패한 정치인이었고, 또한 마약과의 전쟁에서 지금의 두테르테처럼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이죠.

이후 태국 법원에서 태국은 유죄판결을 받으며 범죄자 신분이 되고, 구단을 만수르에게 팝니다. 이때 당시에도 약 2배의 차익을 올렸다는 썰이 있으니, 타고난 장사꾼인지 타고난 사기꾼인지 참 분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결론

오늘 태국의 레드VS옐로우 정치적 대립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분량이 많아져 탁신밖에 적지 못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2탄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탁신같은 경우는 아직도 평가가 엇갈립니다. 실질적으로 태국의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를 잘 넘겼으며, 보수적이지만 진보적인 경제정책으로 태국의 빈곤률을 낮추고,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태국의 정국은 레드 VS 옐로우의 혼동으로 변하며, 저는 태국의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당시 학교가 휴교를 내렸고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외신기자가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옐로우와 레드의 정치적 갈등으로 총리가 바뀌었고, 저 또한 우연치 않게 학생으로 이 시위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상 태국 학자사이에서도 탁신 지지파와 반 탁신 지지파가 나뉘는 상황에서, 이 정치적인 상황은 아주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 2013년 반잉락정권에 대해 연설중인 전 아세안 사무총장 故 수린박사님


▲ 그리고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저

결국, 군부가 다시 구데타를 2014년에 일으켰으며, 운타 (Junta) 정부인 쁘라윳 정권이 지금 껏 통치를 하고 있는 실상입니다. 다음엔, 탁신 이후의 옐로우와 레드의 갈등, 그리고 탁신이 어떻게 뒤에서 그들을 조종했는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정치이야기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한 자료: 위키피디아: 탁신 / 나무위키 : 탁신 / 개인블로그, 수업자료 등) 특히, 위에 언급한 개인블로그에 정리가 정말 잘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태국의 정국에 대해 시험보기 전에 봤던 블로근데 오랜만에 보게되니 반갑네요 :) 태국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위의 블로그의 글들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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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현제 정치상황 배경을 잘 알려 주셨네요.
여전히 태국은 탁신 지지자들과 반대론자들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어 가끔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오히려 지금은 정국이 더욱 안정된 상태입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요? 만약 지금 쁘라윳 정권이 구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지 못했더라면 태국의 정국은 더욱 휘청거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쁘라윳은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은 정부이며, 군부독재체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민주적인 관점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탁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게 탁신은 부패했다이겁니다. 근데 실질적으로 그가 유죄를 받앗던 부패혐의들은 태국에 돈있는 사람은 누구나 했던 것들이고 탁신을 반대하는 세력에 부패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저 권력싸움에서 졌을뿐이고 탁신이후에 태국의 상황이 어떤지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 후에 경제나 정치나 다른 분야에서 거의 전혀 발전은 커녕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레드셔츠도 좋게는 안봅니다. 눈 앞의 정국을 보지 못하고 한낯 포퓰리즘 정책에 눈이 먼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정치적 이해가 부족할진 모르지만, 결국 포퓰리즘 정책은 국가를 더욱 힘든길로 데려가는 것은 맞으니까요. 세금없는 복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탁신 이후에 오히려 태국 정국은 점점 후퇴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도 더욱 무뎌지고 있고, 정치적 불안정이 가속화 되었죠. 오히려 탁신정권당시에 경제성장률은 더욱 안정적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탁신은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반민주적 행위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본인들의 기득권을 빼앗길 까봐 옐로우 셔츠가 들고일어난 것도 맞구요. 그 중 몇몇은 반 민주적인 행위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본인의 이권을 위해 아우성치는 것 일수도 있기 때문이죠.

결국, 역사가 평가할 일 같습니다.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이 아직도 평가되고있는 과정이므로, 언젠간 태국의 정치또한 평가될 날이 있겠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장 힘들어서 죽을것 같은데 미래가 무슨 소용일까요. 이산지역 가난한 곳을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 곳 또한 태국입니다. 방콕이나 관광지만 태국이 아닌 태국의 전 국토 모두 태국입니다. 왜 그곳은 불리시켜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탁신이 저지른 반민주적 행위는 마약관련 과격한 진압인가요? / 그럼 탁신 이후의 반민주적행위들에 대해서는 왜 애기하지 않나요? 선거에 불복해서 시위와 테러를 해 의도적으로 군부가 쿠테타할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민주정부가 들어서기는 했나요?? 그게 더욱 더 반민주적인 행위 아닌가요?

권력자가 큰 부를 가지게 되는게 과거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네요...
아시아에 민주화는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

아시아 국가들 같은 경우는 비슷한 정치적 양상을 띄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과 득을 따졌을 때 모든 것은 아마 역사가 판단할 것 같습니다. 학자들이 탁신을 나쁘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고, 좋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잘못된 부정부패같은 경우는 정말 잘못이지만, 그의 포퓰리즘의 정책이 저소득층에겐 투표의 권리와 힘을 부각시켜줬으므로 어찌보면 민주적 사고를 일깨워 줬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박정희, 전두환때 경제성장과 독재에 대해 평가가 갈리듯, 탁신은 부정부패와 민주화때문에 평가가 갈리는군요!! 재밌네요 ㅎㅎ

전 개인적으로 옐로우를 지지하는 방콕의 대학생들이나 지식인들이 탁신은 부패했기때문에 그를 반대한다는 애기를 않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솔직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기는게 두렵다고 애기했으면 합니다. 도대채 저넘의 군부는 정치권에 권력을 넘기겠다고 한지 몇년이나 지나야 넘길까요.. 아마 왠만해서는 넘기지않을겁니다. 선거로 이긴적이 단한번도 없기때문에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셨네요 :) 뭔가 역사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멋집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리핀을 비롯한 많은 동남아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솔직히 두테르테도 살인자라고 엄청나게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상류층과 외국인들은 치안상태가 좋아지는 등,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 이점이 있어 인정하는 분위기도 있으니까요. 그러는 과정에서 이제껏 많은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는데 두테르테의 마지막은 어떠할지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탁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고 있었지 자세히 몰랐는데 브라이언님 글을 읽고 또 공부를 하네요. 여전히 타국에서 잘먹고 잘 살고 있다니 약이 오르기도 합니다ㅠ

맞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동남아시아의 정치체계는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결국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인은 지금도 국회의원을 한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는 정치에 대한 인식이 바로서지 않은 특정 계층에게 포퓰리즘 정책을 편다면, 몰표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고, 부패한 정치인일 수록 이러한 사람들의 표와 민심을 이용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양상은 비단 동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겠죠.
정치라는게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