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법성게⟫ 이야기 #8 "무량원겁즉일념/일념즉시무량겁"

in kr •  6 years ago  (edited)

無量遠劫卽一念 / 一念卽是無量劫


일(一)과 다(多)를 이야기 하면서 이를 공간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일미진중함시방이 소개되었다. 무량원겁즉일념은 시간에 적용하여 일과 다를 설명한다.

一微塵中含十方 / 一切塵中亦如是 - 공간개념에서의 크기는 부분과 전체가 연결됨
無量遠劫卽一念 / 一念卽是無量劫 - 시간개념에서의 길이는 부분과 전체가 연결됨

무량이란 셀 수 없다는 말이니까, 멀다는 의미의 원과 함께 쓰여서 매우 멀다, '겁나 멀다'이다.

은 산스끄리뜨 깔빠kalpa란 인도인들이 생각하던 긴 시간의 단위다. 겁파劫波라고 번역하다가 오늘날은 앞의 글자 겁만 떼어서 쓰는데 그냥 긴 시간이라고 하니까 감이 오질않아서 주로 반석겁이니, 개자겁이니 하는 비유로 설명한다.

반석겁은 약 10km 정도의 정사면체(?)의 돌덩이가 있는데 100년만에 한 번 천상세계에서 내려오는 천녀의 옷자락이 스쳐서 그 돌이 모두 닳아 없어진다는 단위이고, 개자겁은 그 단위를 겨자씨로 바꾼 것이다. 사실 이 비유는 kalpa란 시간단위가 그만큼 길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긴 겁에 다시 무량을 붙였으니, 이를 수식이라면 단순히 '긴 겁'이란 말이 될 것이고, 이를 서술적으로 해석하면 겁으로는 잴 수 없으니 겁에 겁이 붙어 한량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겁이란 말 자체가 상상이상으로 긴 시간이니 이 여부는 큰 상관이 없겠다.

한마디로 무지하게 긴 시간이다. 이 긴 시간이 일념과 같을 수 있을까.
시간이란 절대적인 개념같지만, 그 또한 물리적 세계를 구성한 하나의 기준 혹은 요소일 뿐이다. 시간도 공간과 같아서 끌어다 앞뒤를 맞춰보면 결국 일직선으로 생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고돈다.

이런 시간에 대한,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믿음은 인도인들의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인도인들은 시작과 끝이란 관념이 없는 둥근 시간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며, 이것을 samsara輪廻라고 불렀다.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업을 지으면 그것이 우주적인 질서에 의해 즐겁거나 괴로운 과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인락과, 악인고과인데, 이 관념에서 어떤 질서란 누군가 절대자가 조정한다기보다는 내 스스로의 행동인 경우이다. 자신이 쏜 총알이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고 또 어떤 정해진 질서에 따라 그 도덕적 결과로 또다른 누군가에 의해 총알이 내게도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총알은 시간을 돌아서 내게 꽂히는 것과 같다. 즉 나를 고통으로 괴롭히는 총알은 내가 쏜 총알에 대한 벌이 아니라, 내가 쐈던 바로 그 총알이다. 누워서 허공에 침을 뱉는 행위, 내가 행위를 짓고 내가 그 행위의 결과과 되는 것, 이른바 내가 짓고自作, 내가 받는自受 것이다.

여기에 자유의지가 개입한다. 순간의 결정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원래 불교의 윤리관에서 순간의 행위는 1회성이다. 어떤 선한 행위나 악한 행위는 즐거움, 혹은 괴로움이란 결과로 나타나고 나면 그 원인인 행위는 더이상의 어떤 효력도 사라진다. 그러나 행위의 결과는 끝나버렸지만 현실적으로 남는 경향성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순간의 강력한 행위와 긴 시간동안의 반복된 행위는 맞물려 있으며 상호적이다.

법성게란 짧은 엔솔로지가 바탕하고 있는 화엄철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중첩이며 연결이다. 시간, 공간은 그 길이와 크기와 상관없이 서로 수없이 반복적으로 얽혀있으며 상호영향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연결과 중첩은 전체가 그 일부의 작용에 개입하며, 또한 아주 작은 일부의 움직임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일과 다의 상호성이 앞의 두 구절에서 공간적으로, 이번 두 구절에서 시간적으로 그 크기와 길이에 대해 각각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이를 미루어 보면 결국 공간과 시간도 서로 의존적이고 이어져 있다. 여기에 결국 시간과 공간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동일한 시공간 위에서 살지만 또다른 시공간 위에 서 있다. 개인의 경험은 전체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으니 아마 혼자서 결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시공간이 확정되면 수없이 많은 이들의 시공간이 재조정 되며 그 현상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는 화엄철학과 법성게의 저자가 발명한 구조가 아니라 발견한 것이며, 비록 실측이 아니라 관념적이었지만, 세계와 존재의 구조에 대한 그들의 통찰이다.

[법성게 이야기]

法性圓無二相 | 諸法不動本來寂 / 無名無相切一切 | 證智所知非餘境 | 眞性甚深極微妙 | 不守自性隨緣成 | 一中一切多中一 / 一卽一切多卽一 | 一微塵中含十方 / 一切塵中亦如是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오랜만에 법성게 올리셨네요..천천히 시간두고 공부해보렵니다^^

고맙습니다. @paramil님 처럼 읽어주시는 분이 있어서 보람을 느낍니다.^^

법성게..듣고도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ㅜ
찬찬히 다시 보아야 할 것 같아요^^

@orange5008님 고맙습니다. 저희들도 어렵습니다. ㅋㅋㅋ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엔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살고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던 인도 사람들의 철학적 사고의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 알면 알수록 더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