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선일보에서 나온 기사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후다닥 글을 하나 썼습니다. 해야할 일들이 쌓여있는데, 자꾸 쓰고 싶은 글을 쓰게 되네요.
"삼성도 저렇게 당하는데"… 위기의 대기업, '위기' 말도 못꺼내
한마디로 최근 삼성 등 대기업을 향한 검찰수사 때문에 대기업이 위기에 처했단 기사입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한국에선 불법과 꼼수를 써서 기업 전체가 특정 주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행태가 만연합니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들의 가치를 후하게 안 쳐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최대주주인 재벌가문의 사익추구행위에 자기 투자금을 보태는 꼴인데 왜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언제든 불법과 꼼수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누구 때문일까요. 우리는 그동안 재벌이 문제다. 그래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로 얘기했는데요. 지배구조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웹툰 '송곳'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죠. 왜 노동권을 존중하는 프랑스 기업이 한국에서 나쁜짓을 하냐고. "여기선 그래도 되니깐" 마찬가지로 삼성이 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을 강행했을까요. 여기선 그래도 되니깐. 에버랜드 CB를 왜 삼남매에게 헐값으로 발행했을까요. 한국에선 그래도 되니깐. 글로비스로 일감 몰아줘서 몇 년만에 몇 조원 자식에게 챙겨주는 일이 왜 발생했고, 그와 유사한 일이 수백개의 기업에서 왜 벌어졌을까요. 여기선 그래도 되니깐.
여기선 왜 그래도 될까요. 이런 기사 때문입니다. 잘못을 따지는 일이 마치 기업의 경영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아전인수식 기사들, 근거들이 마치 사실인양 퍼지기 때문이죠.
기사에서 제시된 통계들이 마치 검찰 수사 때문인 것처럼 제시됐는데요. 그것도 인과관계의 오류입니다. 인과관계를 따지려면 결과에 영향을 미친 여러 근거들을 살펴보고, 그 근거들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을 따져봐야 합니다. 최소한 A때문에 B가 발생했다고 얘기하려면, 결과 B를 초래한 여러 근거들 가운에 A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해야죠. A가 여러 근거들 가운데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인과관계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 공론장이 훼손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인과관계의 오류가 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기사에서 제시된 근거들을 살펴보면요. 중국 시장에서 삼성 스마트폰이 덜 팔리는 이유와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줄어든 이유 모두 중국 시장의 영향이 큽니다. 현대차 사업보고서를 보면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2016년에 114만대에서 2017년에 78만대로 줄었습니다. 중국 외의 시장에선 현대차가 SUV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캐치하지 못한 탓도 있죠. 중국시장만 본다면 삼성, 현대가 이렇게 부진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사드 '전격' 배치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겁니다.(저도 인과관계의 오류에 빠지고 싶진 않지만, 최소한 검찰수사보단 더 영향이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합니다) 사드를 '전격' 배치한 결정을 조선일보는 어떻게 다뤘습니까. 그때도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대기업들의 위기가 왔다고 기사를 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