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분에 한해 스포일러 있음.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다름아닌 장안의 화제 '스카이캐슬'이다. 약간 뒷북이긴 하지만 이제 19회까지 봤다. 거의 끝까지 몰아본 시점에서 평가하자면 스카이캐슬이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를 봐서 그런지, 학벌사회와 교육현장의 현실 외에도 폭력성과 불평등한 관계, 직업을 인간의 귀천과 출신성분에 연결하는 고약한 편견, 젠더 등에서 불편하고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쓴 '중요한 문제를 공론장으로 이끌고 온 담론화'에 이 드라마가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해보고 싶다.
오늘은 드라마의 앞 부분의 '영재 엄마의 죽음'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아들이 서울의대 합격한 직후에 그 엄마의 자살이란 충격적인 사건으로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청자의 주의를 끈다. 긴장감을 확 높이기도 했다. 죽음은 여러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래서 죽음은 시청자의 주목도를 높인 상황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좋은 장치다.(개인적으로 '죽음'으로 사건의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재 엄마의 경우 죽음 뒤에 그 이유가 제시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들의 복수'다. 아들은 부모를 미워하고 도망간다. 부모와 연을 끊겠다며 연락이 두절된 채 사라진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의 일기장을 보고 절망한다. 일기장엔 처절한 미움의 기록이 절절히 담겼다. 자식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부모에 대한 원망,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폭언과 성적압박 등으로 아들은 마음의 병이 깊어갔다. 그런 아들에게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하던 아줌마의 딸인 '가을이 누나'만이 의지할 대상이었다. 그런 가을이마저 어머니에게 쫓겨난다. 그리고 도통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는 영재에게 입시 코디는 다가와서 '합격 뒤 복수'를 제안한다. 그게 바로 부모와 연을 끊겠다며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영재의 엄마는 자살한다. 아들에게 미움을 받고, 부모와 연을 끊겠다며 집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서다. 그런데 난 이 부분이 너무 이해가 안 간다..
부모가 영재에게 해온 행동들을 감안하면 미움받는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아니, 자식들에게 잘 해왔어도 미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부모의 마인드 아닐까.. 하물며 영재네 부모는 당장 자식이 행복한 것보단 학벌과 의사라는 지위를 취득하길 원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잃는 것이 있다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부모에게 자식보다, 자식에게 부모가 훨씬 절대적인 존재다. 자식은 성장하는 내내 부모에 종속되고, 부모가 지속적으로 폭력과 강압으로 자식을 대하면 십수년간 그 늪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물론 부모도 자식에게 매인 존재다. 그치만 자식과의 관계에서 대부분 우위에 있다. 부모에게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자식은 부지기수지만, 미성년 자녀의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미움은 어쩌면 소극적인 반항의 방식이다. 관계에 있어 우위에 있는 부모를 향해 자녀는 당연히 미움의 감정을 품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 조심하고 세심하고 또 고민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그렇게 학대를 해오고도 미움 받는 것이 충격이라며 죽는 것일까. 물론 자신이 타인에게 가한 고통은 생각지 않고, 자신이 받는 고통만 전부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진 않다. 부모 자식 간에도 충분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대중적인 콘텐츠인 드라마에서 아들에게 미움 받는다고, 아들이 연을 끊겠다며 떠났다고 엄마가 바로 죽음을 선택하는 극의 전개가 못내 못마땅하다. 마치 그건 부모가 자식에게 가했던 그 육체적, 정신적 폭력보다 자식이 부모에게 가한 보복(미움과 연을 끊겠다는 메시지)이 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메시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십수년간 품어온 미움의 감정을 제대로 터뜨리며 잠적을 택한 아들을 엄마는 '잠시' 찾아다니다 절망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이 엄마는 과연 아들이 자신의 죽음을 어찌 받아들일지, 그 아들이 그 아픔과 자책을 안고서 평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은 것일까. 난 그런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드라마 초기 전개를 위해 무리하게 '영재 엄마의 죽음'이란 극단적인 에피소드를 넣은 작가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급 작가 비판으로 마무리하는 느낌인데요. 이 글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제안입니다. 혹시나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작가 분이 이 글을 보신다해도 서운해하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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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 않아 대충대충 봐넘긴 드라마입니다.
한국의 분위기가 존속 살인을 비속살인보다 더 패륜으로 보고 형량도 더 높은 것과도 상관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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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불편한 지점들을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이리 말하더군요. "그건 스카이캐슬이 불편한 게 아니라, 한국드라마가 불편한 거라고. 네가 말한거 한국드라마에 엄청 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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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자신의 삶과 자식의 삶을 동일시하는 엄마들이 있잖아요. 만약 자식의 성공이 본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라서 20년을 쏟아부었는데, 결과가 실패라면 큰 좌절감을 느낄 것 같아요. 게다가 속해있던 상류사회에서 실패한사람으로 낙인찍히는게 죽기보다 싫다 라고 생각한다면...죽을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조금 과한 설정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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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요. 자신이 속한 상류층 집단에서의 낙인이 정말 싫긴 하겠죠.. 스카이캐슬 만담을 해야할까봐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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