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밀고 지하철 타면서 느낀 점

in kr •  7 years ago 

오늘은 칼럼이자 기사인 글을 써볼까 합니다. 칼럼은 의견과 견해가 담긴 글이고, 기사는 팩트를 전달하는 글이죠. 주제는 '유모차와 휠체어의 대중교통 접근권과 위험성'입니다. 비슷한 글을 페북에 쓰기도 했지만, 좀 더 심도 있게 써보겠습니다.

우선 제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저는 아는 분이 장애인의 대중교통 접근권 관련 활동을 하고 계셔서, 그 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관심을 가졌긴 했지만,,, 사실 여기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은 없습니다. 이것을 꼭 의제화 해서 조금이라도 바꿔보잔 마음을 먹지도 않았죠.(곁가지지만 제가 언론인을 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해 지속적으로 이를 의제화하고 개선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제가 아이들을 키우고 유모차를 밀면서 휠체어 이동권이 저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자식 낳으면 차 사야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요. 저는 차가 없으니,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지하철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죠. 지하철 타고 내리거나, 환승할 때마다 이전에 알 수 없었던 불편을 느꼈습니다. 걸어다닐 땐 5분이면 환승할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두세번 갈아타며 20~30분 걸리는 역이 있었고, 아예 엘리베이터가 없고 장애인 리프트만 있는 역도 있습니다. 장애인이동권제작협동조합 무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하철 신당역에서 2호선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려면 무려 40분이나 걸렸습니다. (관련기사 http://www.hankookilbo.com/v/36f4831db4894cd3b6a7c2cd19031a0a)

제가 경험한 것도 있습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롯데백화점에 가려면 유모차를 들어서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경사로가 없습니다. 저는 아이가 둘이라서, 두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성인 남자인 저 혼자 안전하게 들기가 버겁습니다.
합정역에서 메세나폴리스로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5호선 광화문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장애인 리프트가 있습니다. 전 유모차 밀고 교보문고를 가려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아예 포기해버렸죠.

사실 장애인 리프트를 타보려다 말았습니다. 조금 위험해 보였고, 아이 둘 태운 유모차를 싣기에 작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 약간의 위험 요소도 피하게 되죠. 그런데 장애인 분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그 리프트를 이용했을 겁니다.

그래서 장애인 리프트와 관련된 뉴스를 하나 전달하고자 합니다. 아직 언론에 나온 바가 없으니, 일종의 '단독' 기사네요. 발굴한 기사가 아닌 남들보다 조금 빨리 쓴 '단독'이 중요하다 생각진 않지만(더더군다나 누군가의 비극을 소재로..), 그래도 이 스팀잇에서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이나 어떤 언론사 홈페이지보다 먼저 소식을 알린 셈이니 그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어제 아는 변호사 분에게서 제보를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은 블록체인 매체를 준비 중이라, 제보를 받으면 한겨레 담당 부서에게 전달만 하는 편입니다. 기사화 여부는 담당 기자가 정하죠. 이번 제보는 지하철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타려다 사망한 장애인의 유족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건입니다. 물론 서울교통공사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 소장의 내용만으로도 소개할 가치는 충분해 보입니다.

망자는 베트남전쟁 상이군인으로 하반신과 왼팔의 운동능력을 상실한 장애인입니다. 신길역 환승 구간엔 엘리베이터가 없어 반드시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구요. 장애인 리프트는 호출하면 역사 직원이 와서 가동을 도와주는 식으로 운영됩니다. 문제는 호출 버튼의 위치입니다.

왼팔을 사용할 수 없는 망자가 호출버튼을 누르려면 계단에 밀접한 상태에서 후진을 해야 합니다. 너무 위험할 수 밖에 없죠. 앞에 철제 배전박스가 호출 버튼을 가로막고 있어 휠체어로 접근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실제로 망자는 좁은 공간에서 방향을 바꾸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가 계단 아래로 떨어졌고, 두개골에 심각한 골절을 입었습니다. 사고 즉시 의식을 잃었고, 98일 만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죠. 저는 소장에 담긴 CCTV 스틸사진도 봤는데, 당시 저 버튼을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망자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리프트를 만들 때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호출 버튼이 계단과 가깝지 않은 곳에 있었으면 이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은 이전에도 꽤 발생했습니다. 2004년 서울역, 2006년 회기역, 2008년 화서역에서도 발생했죠.

휠체어와 유모차를 밀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어려운 일인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셈이죠. 이 사건에 대해 추가적인 내용이 나오면 그때그때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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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이제야 읽었군요.. 저 사고 기사를 읽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셨군요. 저도 사고전 사진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심이 더 필요한거 같아요.

1달러쓰시고 홍보로 올려주셔서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한번 경험해보고 유모차타고 지하철.... 안타요 ㅜ
허리끊어져도 아기띠하고 탑니다...

1스팀달러 쓴 보람 있네요^^ 저도 아기띠 많이 쓰는데, 아가가 둘이라서ㅎㅎ

결국 이런 경우에 장애를 만드는 것은 환경이 맞는 듯합니다. 모든 지하철역, 버스 등이 장애인 이동권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장애가 장애가 아니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충분한 배려가 시스템에 녹아든다면 장애를 장애로 느끼지 않겠죠. 우리에겐 요원한 얘기지만요

안타깝습니다.. 눈에 띄는 시설의 보유에만 신경 쓸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를 위한 배려와 디테일이 중요하겠네요....

맞습니다. 아마 저거 설치해서 나름 할 일 했고, 호출 받을 때마다 직원 나갔으니 제대로 일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에요. 그래서 배려와 디테일이 중요한거죠.

이렇게 좋은 글이 많이 읽히지 않고 있다니.. 스팀도 늘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저도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했고 학창 시절에 오체불만족 책을 읽었을 때도 그랬고, 서울에서 살아보면서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장애인, 임산부, 노약자)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합니다... 제 와이프도 임신 8개월차고 차가 없어서 지하철 이용 많이 하는데 계단도 많고 동선도 너무 꼬여 있고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눈에 띄는 행정(보도블럭 갈기)보다는 세심한 배려, 행정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디테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스팀잇에선 이틀만 지나도 잘 안 읽히는데, 이렇게 읽어주시고 정성스런 댓글도 달리니 나름 보람이 있네요. 일본은 우리랑 많이 다르지요? 그래도 장애인 이동권 관련해 활동하시는 분들과 저 사망한 장애인의 유가족 소송을 대리하는 공익 법률단체가 있어요. 그런 분들이 노력을 해주시니, 이렇게 약간이라도 달라지는 것이겠죠.

네, 일본은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악연이지만 선진국이라 사회적으로는 배울 점이 많더라구요.
우리나라에도 인권관련해서 활동하시는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는군요^^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교류해요^^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나름 신경써서 쓴 글인데, 너무 안 읽혀서 1스팀달러를 써서 '홍보'로 올려봤다.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것도 내 나름의 스팀 실험~

정말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이 어서 개선되길 바랍니다~

네 관심이 힘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