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위에 우주가 있다면 아래에는 심해가 있다

in kr •  7 years ago 

1926년은 적어도 서양에게 있어서는 지구의 모든 곳을 탐험한 날로 기억됐었을 것이다. 그날은 아문센이 남극에 이어 북극의 중심을 찍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30년이 지난 냉전시대에 소련과 미국은 우주를 향한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지구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볼 게 없으니 본격적인 우주개척 시대가 열린 듯 보였다. 그러나 위가 곧 아래가 되고, 아래가 위가 되는 신기한 양자역학의 동시성 법칙은 거시세계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우리의 위에 우주가 있다면 아래에는 심해라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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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scubadiverlife.com/five-fascinating-deep-sea-creatures/

하늘만 우러러보고 1980년대까지 우주경쟁이 지속됐던 반면, 심해의 세계는 1990년대쯤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졌다. 그전까지 심해는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 죽음의 장소로 인식되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살아가려면 빛과 산소가 필요한데, 심해에 해당하는 수심 2000m 이상에서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빛이 차단된다는 것은 바다 속 미생물의 광합성으로 인한 산소가 발생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당연히 이론상 무생물의 장소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탐사결과에 따르면 심해는 또 다른 생태계의 보고(寶庫)였다. 상식대로라면 없어야하는 생물이 탐사 때마다 매번 발견되었고, 야광별처럼 빛나는 심해어와 심해 미생물체의 존재로 인해 마냥 암흑의 세계도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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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drothermal vent(열수분출공)

그렇다면 심해는 도대체 어떻게 빛과 산소가 거의 없는 척박한 땅에서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일까? 2000년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해의 생명체들은 ‘hydrothermal vent’라는 존재로 인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고 한다. hydrothermal vent는 한국에서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이라는 전문용어로 알려져 있는데, 쉽게 말하면 화산활동에 의한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장소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열수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학물질을 먹고사는 박테리아가 있으며, 다시 해당 박테리아를 먹고사는 심해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열수분출공은 심해의 번식을 촉진하는 요람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빛과 산소가 없으면 알의 부화가 굉장히 느려지는데, 열수분출공은 심해의 온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해서 부화속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때 심해어들은 열수분출공에 의해 알이 쪄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알을 낳는다고 한다. 결국 육지의 생물들이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면, 지구의 밑바닥 심해에서는 놀랍게도 열수분출공이 햇빛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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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가장 깊은 심해라 불리는 마리아나 해구. [딥 씨 챌린지]프로젝트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이미지 출처:https://www.potentialplusuk.org/index.php/2017/07/07/challenge-9-exploring-the-mariana-trench/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심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사 중 심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인데,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 이 사람조차 직접 심해탐사를 하면서 좌절을 겪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탐사준비 자체도 힘들지만, 기껏 탐사를 해도 별 성과 없이 돌아오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참여한 심해탐사 프로젝트인 [딥 씨 챌린지]의 영상물을 보면 그런 고충을 잘 느낄 수 있다. 마치 남극과 북극을 향해 나아가는 아문센이 초창기에 고뇌하던 모습이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다르게 말해서 우리는 지구를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비밀이 다 풀린 공간에서는 탐험가의 고뇌가 절대 나타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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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어의 모습. 이처럼 심해에는 자체발광하는 생명체가 많다.

한편 심해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실은 우주탐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동안의 우주탐사는 생명체가 존재할만한 산소가 있는 장소를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심해탐사를 통해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주탐사의 영역에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두꺼운 빙벽으로 덮여있어서 빛이 들어올 수 없는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 대한 탐사가 시작되었고,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아서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판단됐던 곳의 연구도 재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맨 밑바닥의 비밀을 풀어냄으로써 지구 맨 위의 비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이처럼 우리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진리를 통해 원래의 진리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사례로 들었던 남극과 북극의 경우 역시 서로 정반대의 극에 있음에도 유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또 일상에서 진리를 깨닫는 과정은 어떤가. 의외로 큰 진리는 일상의 작은 진리에서 얻어질 때가 굉장히 많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계기는 일상에서 매일하던 목욕을 통해서였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가 함수를 만들어낸 시점은 누워있던 중 자신의 위에 파리가 날아다녔을 때였다. 아마 현재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도 사실 우연치 않은 계기로 블록체인을 생각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에 비하면 작지만 밝게 빛나고 있는 존재들, 산소와 빛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비밀이 많은 곳.

그곳은 우주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관심가지지 않았던 밑바닥 심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다. 앞으로 계속 생겨날 새로운 진리들도 그런 인식의 전환과 함께 생겨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제임스 카메론의 TED영상링크와 함께 글을 마무리지어보고자 한다.

제임스 카메론_TED


ps: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를 만든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를 동경해서 유난히 영화에 파란 색감을 많이 집어넣는 것으로 유명하죠.(TED영상에서도 그런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심해와 우주가 통하는 구석은 있는지, 심해의 대가가 되고 나서 NASA의 화성 탐사에 자문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합니다. 심해에 대해 궁금하시거나 제임스 카메론의 바다에 대한 열정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은 다음 2개의 다큐멘터리를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에일리언즈 오브 더 딥]
제임스 카메론 [딥 씨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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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멋진 글 감사합니다.
놓치고 있는 너무나도 많은 좋은 글들이 있으니 ...
자주 찾아뵙고 글도 정독 하겠습니다. ^.^;;

어떤 환경에서도 그에 적응하여 사는 생물들이 경이롭습니다.

네 정말 경이롭죠!

좋은 글 잘봤습니다!! 저도 심해에 무슨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많이 찾아보곤 했었습니다만.. 단순히 생명체가 궁금했었지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는 못했네요 :)

저도 우연치 않은 계기로 다큐멘터리 하나 보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됐네요ㅎㅎ yahweh87님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  7 years ago (edited)

제임스 카메론의 잠수함 여정을 다룬 다큐를 보고, 그 열정과 의지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지극히도 사랑하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인지, 문득 그런 생각도 드네요. 나는 진짜 나를 잘 알까? ..... 깊은 글 감사합니다 ^^

제임스 카메론이 살아온 행적을 보면 참 비범하죠.. 저도 그에 비해 저의 재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지 종종 의문이 들곤 합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해를 다 알지 못하죠 아직까지?
우주만큼이나 넓은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우주만큼 넓긴 힘들겠지만,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지구 곳곳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빛도 없는 그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까도까도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오는 걸 보면 자연의 신비가 정말 놀랍긴 놀라운 것 같습니다ㅎㅎ

전공이 지질학인데 아는게 없네요ㅠㅠㅎㅎㅎ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ㅠㅠ

  ·  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Geraphy 님!ㅎ
제가 500 팔로워 이벤트로 Bramd 님께 대문이미지 제작을 해드리기로 했는데, Geraphy 님 대문을 만들어 달라 하셔서 댓글 남깁니다ㅎ 영화+잡학 포스팅에 맞는 대문을 부탁받았는데, 넣고싶은 이미지나, 연재하시는 글 중에 제일 만들고 싶으신것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제가 작업하는데 참고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제라피님 글 정주행 해보겠습니다..!!

Bramd 님 부탁 : 저는 최근 대문을 받아서 @shyuk3655 님의 대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 잡학 포스팅에 맞는 대문을 부탁드립니다-

별볼일없는 저한테 대문을 만들어주시겠다는 두 분께 일단 감사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__)
대문이미지를 받게 된다면 넣고 싶은 이미지는 Bramd님 말씀처럼 영화+잡학이긴 한데, 그렇게 되면 kyunga님이 제작하기 난해하겠죠..ㅠ
그렇다고 제가 지금 '이거다!' 싶은 이미지는 생각나지 않는 상태라서요.. kyunga님이 제 글을 대강 봐주시고 의식의 흐름(?)대로만 제작해주셔도 저는 그저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의식의 흐름ㅋㅋㅋ 글들 읽어봤는데, '사유' '몰입' '지식의 연결' 같은 키워드들이 떠오르네요.
총 3분꺼 순차적으로 진행해야되서 기간은 여유있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
제가 완성하면 댓글남기겠습니다!
근데 제라피님이라고 읽는거 맞나용?ㅎㅎ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라피 맞습니다. 저를 닉네임으로 불러주시는 분이 처음이라 기쁘군요ㅎㅎ 기간은 언제든 상관없으니 천천히 만들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주를 향해 나가고있는 인류가 오히려 심해는 한참 미정복상태라죠ㅠ 저 밑의 세계는 어떤세상일지...누가 정복할지 참으로 기대됩니다

희한하게도 선진국을 위주로 탐사경쟁에 들어가는 것까지 예전 역사와 너무나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구의 신비를 풀어내면 좋지만, 너무 과하게 파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