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사랑 타령

in wc2 •  8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D 도러블입니다

개인적인 일로 잠깐 바빴었는데
@marginshort 님께서 백일장을 주최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짬을 냈어요.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날이였네요.
놓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

평소 스티밋에 이런 류의 글을 쓰고 싶다가도
그냥 일기장에 적을 말들이지 않나 싶어 그만두었는데,
이런 기회를 주신 @marginshort 님께 감사드려요.

중고등학교 때 이후 백일장은 처음이에요.
그때는 정말 상 욕심에 열심히 썼었는데 ㅋㅋㅋ
이번 백일장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써보고 싶어요.

네 가지 주제 중 어떤 주제가 제일 편한 마음으로 쓸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첫사랑, 끝사랑... 그런 달콤쌉싸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주셨더라구요.
솔직담백한 고백들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제 이야기로 시작해볼게요 :)

이야기의 저작권은 @dorable 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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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 can't do anything with your easy words" 영화 'Closer')

잠깐 인턴 일을 할 때 알게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살 연상의 비슷한 전공을 가진 남자.
같은 인턴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친해졌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친근한 관계가 되자
그 역시 나에게 넌 애인이 있나요, 그런 질문을 했지요.
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도 없다며 특유의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곧 전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학교 동기였던 그녀는
조금만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매일 사랑한다 말하고 듣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와는 조금도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과한 관심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줄줄 나열하는 말들을
나는 햄버거를 씹으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말이 끝났을 때쯤에는
다 먹은 햄버거 포장지를 네모나게 접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만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만 맹세컨대 진심이었습니다.

네. 진심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단 한 번도 애인에게 집착한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자신마저 버려가며 타인을 원할 수 있는 사람이란 어쩌면 타고나는 걸까,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별로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저렇게 대꾸해버린 이상 별수 없었지요.

나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탕 껍데기를 만지면 나는 소리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스락. 예컨대 이런 소리요.
사탕이 들어있다고 믿을 때, 그 소리는 맛도 냄새도 없는 주제 참 달콤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껍데기지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단지 껍데기.
사랑,은 바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의 손에서 바스락 거리는 껍데기의 소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볍고 공허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긴 글을 읽고 싶지 않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단어에 많은 것들을 집어 넣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너의 눈은 호수처럼 깊고 샛별처럼 빛나고 손과 발은 비단보다 부드럽고 비 마른 흙보다 포근한 품과 어쩌구 저쩌구 뻔한 미사여구가 동원된 콩깍지 찬양에서 시작해서 그리하여 너를 원하는 내 마음, 이라고 써버리면 당연히 아무도 그 글을 읽지 않을 테니까.

다른 단어들처럼 사랑, 또한 어쩌면 그렇게 탄생했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의미와 서사를 담고.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전해질 수 없는 것들이 생겨버린 것이지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다 보니 결국은 정확히 어떤 하나를 짚어낼 수가 없어져 버려서
"도대체 그래서 사랑이란 게 뭔데"하고 되묻게 되어버린 것.
오히려 그렇게 쓸모없이 공허해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원하다는 단어조차 사실 영원하지 않은 세계에서 그런 공허한 말 따위를 굴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고들 하지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면 전혀 없는 것, 과 다름 없다고요.
내 전 애인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네 개인적인 시간을 너무 많이 갖는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여자랑 술을 마셔도,
하루종일 연락이 없어도
별 신경쓰지 않는 게 사랑이냐.
사랑한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나는 사탕 껍데기따위의 비유를 들지 않고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굳이 보겠다고
억지로 단단하게 굳힌
그 틀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잖아.
너는 지금 우리 관계를 그 틀에 억지로 맞추고 있고.
네가 말하는 그런게 사랑이라면, 난 널 사랑하지 않아."

그리고 그들과 나는 서로에게

"널 이해할 수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게 모든 관계의 끝이지요.

그렇게 끝.

끝입니다.

내 얘기를 들은 남자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더니,

"무척 남다른 연애관을 가지셨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나오는 여자가 떠올라요."

이래서 문학하는 인간들이란!

나는 웃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나 또한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입밖으로 꺼내는 일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너무 진지한 얼굴이어서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당신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남자는 그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진짜 사랑'이란 게 있다면
나는 마침내 사탕을 찾아낸 어린애 같은 기분이 될 것입니다.

친구랑 밤새 노는 애인을 구박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더 사이좋아보이는 모습에 질투도 하고,
평범한 애정을 느끼면서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글쎄요.
나는 사탕은커녕 부스러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껍데기, 그저 껍데기 뿐이지요.

그 사실에 별로 서글프지 않다면 이상한가요.
꼭 모두가 디즈니 주인공들처럼 손에 손을 붙잡고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야만 하는 걸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진짜 사랑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요.

그 사실에 서글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하고 대체로 평범하니까요.
나 또한 그런 사람일 뿐입니다.

이상하고 평범한 내 이야기를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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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사랑,은 바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의 손에서 바스락 거리는 껍데기의 소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아요

나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탕 껍데기를 만지면 나는 소리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스락. 예컨대 이런 소리요.
사탕이 들어있다고 믿을 때, 그 소리는 맛도 냄새도 없는 주제 참 달콤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껍데기지요.

이래서 문학하는 인간들이란! ㅎㅎㅎ 도러블님께서 너무 멋진표현을 해주셔서.. 저도 저말을 한번 해봤습니다 ㅋㅋ

저도 저 남자분과 똑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어느날 도러블님께서 부디 녹지않는 왕사탕을 찾아내시길 바래요. 보통 그 사탕을 발견해 입에 굴리고있는 사람들을 보면 엄청 행복한 표정들만 짓고 있더라구요~ 가끔 힘들어서 미소가 옅어져도 결국엔 다시 행복하게 웃음짓는 모습들 말입니다 ㅎㅎ

지금의 그 마음들은 더 커다란 왕사탕을 찾기위한 시간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사랑이란 주제는 먹고 사는 음식 보다도 더 다양하고 맛이 각양각색으로 나타나는 주제인듯 합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 합니다.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