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환(7연대 대전차포중대 1소대) 3
오봉환의 증언을 놓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 육군군사연구소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다. 사실 극명하게 갈렸다기보다는 그의 증언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켰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는 주요 직위 및 참전자의 증언에서 심일의 북한군 자주포 파괴사실이 확인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오봉환의 증언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활용한 증언내용은 교묘하게 중요한 사실을 누락한 채 인용하고 있다. “25일 1500경 적전차 3대가 옥산포로 남하했다. 적 보병은 전차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때 1소대는 포 1문만 배치하고 1문은 뒤에 두었다. 배치할 공간이 없었다. 완전히 배치되어 사격할 준비가 됐을 때 전차 3대가 목전에 나타났다. 그것도 선두전차는 나의 조준경에 들었다. 약 10m 전방이었다. 나는 힘껏 줄을 당겼다. 바로 눈앞에서 번쩍하고 명중했는데 그대로 굴러오지 않는가. 우리는 포를 놓고 그대로 피신했다. 뒤에 안 일인데 일탄이 적 전차의 잠망경을 뚫고 들어가 조종사와 옆에 타고 있던 무전병의 목을 쳐서 전차는 그대로의 힘으로 달려와 대전차포를 깔고 뭉게 파괴되고 말았다. 이때 이 포탄(파편)은 연대장에 드렸던 기억이 난다. 어째든 선두전차가 갑자기 멎자 10m 뒤에 후속하던 전차가 앞전차를 들이받아 정차되고 나머지 3번차는 차머리를 돌려 도주했다. 적 전차병 1명이 하차하여 도주하는 것을 안창호 분대장이 사살했다. 그 뒤 심 소위가 나타났다. 이번 사격은 분대장과 나뿐의 행동이었다. 나머지 전우(2개 분대뿐이었는데, 1개 분대는 7명)들은 그곳 도랑에 배치되어 있었다. 나와 분대장은 포1문이 파괴되어 처벌대상이 된다고 걱정했는데 이번 성과로 적이 지연(진격)됐다는 바람에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심일소위가 활약한 전투장면과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귀하의 생각은?) 실제로 내가 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공적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 (짙은글씨: 중략부분)즉 중요한 부분(오봉환과 분대장이 자주포를 파괴했다는 내용)을 중략해 마치 심일 중위가 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심일 중위는 대전차포 1문을 적에게 넘겨주고 도주한 것이 아니라 진지노출에 따른 적절한 전술적 조치의 일환으로 철수한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오봉환의 증언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증언은 전쟁 발발이전 오봉환이 알고 있었던 방어진지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서 심일 중위가 대전차포 1문을 적에게 넘겨주고 도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증언은 결코 아니다.
육군군사연구소는 오봉환은 심일이 육탄 돌격하여 수류탄과 휘발유병으로 전차를 파괴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고, 200m 거리에서 대전차포로 적 전차의 운전수를 사살한 것으로 증언했다. 특히 포를 잃어 연대장에게 말을 들었다는 것은 이대용의 일부 주장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게다가 공적위원들이 심일의 공적이 사실이라는 근거로 제시한 오봉환의 증언은 오히려 심일이 현장에 없었다는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오봉환의 증언 전문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봉환 증언의 주요내용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오봉환의 증언에는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심소위 공적과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묻자, “실제로 내가 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공적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겠다.”고 증언했다. 오봉환 자신과 분대장이 대전차포로 적 자주포 1대의 조종수를 공격했고, 조종능력이 상실된 자주포가 아군 대전차포와 충돌해 멈추었고, 뒤 따르던 한 대는 앞 자주포와 충돌해 움직이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오봉환은 두 차례의 증언에서 증언내용에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타 증언이나 자료에 의한 학습으로 증언내용이 자세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원래 증언내용의 맥락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966년에는 시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1980년 증언에서 15:00라고 표현했다. 1966년에는 조종수의 목이 날아갔다고 했으나, 1980년에는 조종수와 무전병의 목이 날아갔다고 증언했다. 1980년 증언에서 전투내용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묘사되었다.(예:나의 조준경에 들어왔다, 힘껏 줄을 당겼다, 조종수와 무전병의 목을 쳐서 전차는 그대로 대전차포를 깔고 뭉개 등) 사격거리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1966년:200m, 1980년:10m라고 했다. 다만 그의 증언의 맥락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오봉환의 증언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6월 25일 옥산포에서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 6월 25일 옥산포에서 특공5용사에 의해 자주포를 육탄 공격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6월 25일 옥산포에서 자주포 2대를 파괴(기능불능상태)한 것은 오봉환과 그의 분대장이었다는 점이다. 넷째, 6월 25일 옥산포에서 아군 대전차포 1문이 파괴(기능불능상태)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봉환의 증언은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고, 육탄 5용사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이므로 시사점을 중심으로 채택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밝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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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한 방편이지요. 근데 외국 고래들이 다운보팅 하는 바람에 힘드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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