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적인 감성은 나의 성질과 다르다. 나 자신은 이미 진작 학문의 길에서 내려온 인간이지만 나의 본질적인 기질이라고 할까, 그런 부분은 분명 학자의 유형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별개의 무언가에서도 보편적인 규칙을 찾고 싶어한다. 반면에 내가 예술가적인 감성이라는 걸 가졌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겪는 평범한 경험조차도 자신 고유의 특별한 무언가로 재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상반된 성질 같지만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둘은 본질적으로는 맞닿은 성질이기도 하다. 흙탕물 속에서 진주를 찾을 수 있는 눈은 옥에서 티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가능한 능력은 반대로도 가능하다. 지향점은 같지만 출발선이 다를 뿐이다.
분명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벽이 하나 있다. 일반적으로는 나와 다른 시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건 유쾌한 경험이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선함와 몰이해가 나뉜다. 몰이해를 경험할 때면 불쾌함까지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별 다른 계기가 없다면, 갑작스런 충동이 없다면 그 예술가적인 감성을 굳이 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이번에도 계기, 사카모토 류이키의 죽음이 없었다면 그의 자서전을 읽게 될 일은 없었다. 그의 음악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사후에나 그의 삶에 대해 엿볼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염려와 다르게 책은 아무 거부감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담백함이 있다면 고정관념이겠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고, 청년기의 오만함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자세한 갈등은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성격을 잘 보여준다. 글의 주제가 음악이라서 딱히 숨길 의도 없이 적당히 넘어간 지도 모르겠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을 자신을 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꽤 여유가 있는 집안이라서 본인은 음악에 큰 뜻이 있는 게 아닌데도 꾸준히 피아노 레슨부터 작곡 레슨까지 받을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뚜렷한 의지는 없이 학생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대학원생이 된다. 그렇지만 음악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그를 계속 새 길로 끌고 간다. 누군가의 소개, 누군가의 권유... 그 길을 따라 걷다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과 일을 하고 동경하던 배우들이 잔뜩 모인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태어나서 자란 일본보다 다른 나라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많은 경험을 하는 그 과정을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라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별 다른 뜻은 없지만 계속 글을 배웠다. 별 다른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며 살고 있긴 하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다르게 나는 지금까지도 글이 나를 특별히 자유롭게 해주는 건 아니지만 나도 글로 자유로워지길 바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