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city 100] 기둥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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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교회는 기둥만 남았다. 15m의 거대한 돌기둥 세 개.



필라델피아는 비옥한 토지와 상업에 유리한 입지로 짧은 기간 큰 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이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는 상인 길드를 발달시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도시에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는 지형적 약점이었다. AD 17년과 23년, 연달아 큰 지진이 발생하자 도시가 황폐해졌고 계속된 여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도시로 만들어버렸다.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필라델피아는 가난한 이들이 도시가 되었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성도들은 지진과 환난 속에서 신앙을 지켜 나가야 했다. 그들은 엄청나게 두꺼운 기둥을 만들어 지진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 기둥은 연대하는 '형제애'이다. '사랑'이라는 뜻의 헬라어 ‘필로스’(φίλος)와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άδελφός)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 '필라델피아'. 지켜주는 이 없고 도와주는 이 없으니, 그들은 신을 바라보며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단단하게 서로를 지지하는 손과 손, 어깨와 어깨들이 거대한 기둥으로 남았다. 그리고 수많은 지진에도 그 기둥은 살아남았다.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_ 요한계시록 3장 8절



도시의 유대인 길드는 필라델피아 교회의 형제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박해했다. 형제들에게 일을 주지 않았고 회당출입을 금지했으며 로마인들에게 수시로 그들을 고발했다. 그러나 형제들은 박해 속에서도 인내로 믿음을 지켜내며 배반치 아니하고 충성을 다했다. 그리고 많은 형제들이 순교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다. (이웃 서머나교회의 폴리캅 사도가 순교할 때에도 많은 필라델피아의 형제들이 그 순교의 대열에 동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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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이들이 차지도 덥지도 않을 때 가난한 이들은 목숨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야 했다. 부유한 이들이 돈으로 자신의 믿음을 뽐낼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배반치 않는 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을 배반하는 일은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 충성한 형제들은 차곡차곡 쌓는 믿음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쌓는 일은 작은 일의 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과 노력이 접착제처럼 결합하는 화학적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돈으로만 급히 쌓아 올린 거대한 신전들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물리적으로 얼기설기 쌓아 올린 기둥들이 지축을 흔드는 시련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묻혀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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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저 기둥은 이교 신전의 그 어떤 것보다도 튼튼해 보인다. 잦은 지진에 대응하려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화려한 신전의 어떤 기둥도 저만한 내구성을 가지지 못했다.



예수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한 달란트를 소홀히 여긴 종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 종은 얼마 되지도 않는 밑천으로 뭘 하려다 손해라도 보면 경을 칠까 두려워 그냥 땅에다 묻어 두었다. 주인은 진노하며 그의 한 달란트 마저 빼앗아 다섯 달란트를 잘 사용하여 자산을 잘 불린 종에게 주어버렸다.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았던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라고 저주를 한다. 필라델피아의 형제들은 적은 능력으로 작은 것을 다루는 일에 충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기둥을 세워 나갔다. 그리하여 신께 칭찬받는 교회가 된 것이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_ 요한계시록 3장 1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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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히 임하리니,' 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말인가. 멈추지 않는 지진으로 언제 땅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데,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언제까지 이 도시에서의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신께서 친히 '내가 빨리 가마, 어서 가마'라고 친히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렴' 잘 지켜내 온 너의 충성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얼른 갈 테니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의 충성과 믿음으로 신의 성전에 기둥을 삼을 테니 배제되는 일은 결코 없단다.' 보증에 보증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는 칭찬과 책망이 함께 기록된 다른 교회들과 달리 필라델피아 교회에 대해서는 칭찬만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신의 이름과 신의 성전의 새 이름을 형제들의 기둥 위에 새기겠다고 보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은, 대대손손 귀한 이름이 되어 후대의 수많은 교회들이 자신들의 교회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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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속에서, 흔들리는 땅 위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지켜 나갈까? 신의 약속에도, '형제애'는 이들의 유일한 실질적 안전보장이었다. 신은 없는지도 모른다. 약속은 역시 그들의 당대에 이곳, 이 땅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신이 있고 없고, 약속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중요치 않다. 그들은 신을 향한 같은 믿음, 약속에 대한 같은 신뢰로 '형제애'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형제애로 척박한 현실을 버텨낼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기꺼이 친구를 위해, 형제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큰 사랑을 경험한 것이다. 순교의 대열에 동참한 형제들의 행렬을 보고 순교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 뜨거운 '형제애'를 살면서 경험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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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지진 중에도 살아남은 저 기둥들은 필라델피아 형제들의 믿음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다. 가난한 이들이, 운 없는 이들이 각자도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가진 게 뭐 있다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을 하는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이 없는 이들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것을 있는 이들은 너무도 잘 알아 자꾸 없는 이들을 흩으려 든다. 자신들은 어떻게든 뭉치면서. '형제애'의 덕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음모론에 흔히 등장하는 수많은 비밀결사들은 반드시 '형제애'를 자신들의 계명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한다. 서로가 작은 일에 충성하는지 끊임없이 시험한다. 시험을 통과하는 이들에게는 '브라더'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그 면류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우리가 남이가'. 없는 이들은 가진 이들의 이런 행태를 욕하면서도 그 안에 끼지 못해 안달이다. 흉내라도 내려고 그들이 모이는 어둠의 클럽 주위를 서성인다. 가짜 명품 수트를 입고서. 그 가짜는 작은 일에도 충성하지 못하는 빈곤함이다. 진짜들은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보상이 없는 사소한 약속도 어떻게든 지켜내려 노력한다. 그것이 '형제애' 그리고 그것을 평가받는 테스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없는 이들은 사소한 것은 하찮게 여기며 거대한 무엇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 기회를 주어봐야 돼지 모가지에 진주 목걸이가 될 뿐이다. 그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저질 마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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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그들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형제애의 비밀을.



그러므로 길드에서,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다. 그들은 연대에 속하지 못할지라도 흩어져선 안 된다. 개체로서는 지축을 흔드는 위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같은 일일지라도, 모이기를, 답이 없는 답을 궁리하는 일을 멈추어선 안 된다. 그 작은 일이 쌓는 일이니까. 그들은 부딪히며 분쇄되고 살기 위해 결합함으로써 기둥이 되어 간다. 그것은 매우 사소하고 작은 일이어서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불투명한 결과가 예상되는 일이어도 그 작은 일에 충성할 줄 알아야 '형제애'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결은 먼저 서로가 형제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형제가 되는 것. 끊을 수 없는 운명으로 서로를 묶는 일 말이다. 그들에게 신은 약속했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_ 요한계시록 3장 7~10절



기둥 없이 문이 있을 수 없고 찌그러진 기둥은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없게 한다. 단단하게 세워진 형제애의 기둥은 곧 운명의 문을 자유로이 여닫을 수 있게 하는 필수조건이다. 그 사이로 복이 지나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둥의 명패에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필라델피아'가 새겨지는 것이다.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91. Alashehir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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