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난 끝까지 여름일 거고

in hive-102798 •  25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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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성아를 끌어당긴 건 영하다. 그는 아직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영원한 여름'이고픈 영하는 여름 하夏자를 쓴단다. 아마도 영하(永夏)이겠지. 그러나 계절의 순리는 가로막을 수 없으므로 그의 삶에는, 빠르게 영하(零下)로 떨어지는 아무도 없는 숲속의 차가운 겨울이 밀어닥쳐 오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살다 떠나간 아내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끌어당겨 지은 펜션, 그리고 애정하는 딸은 곧 그의 곁을 떠날 예비 신부이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 남겨질 운명에 처한 건 영하뿐이고 영하는 겨울 준비를 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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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는 겨울의 동파를 막을 줄 모른다. 그렇다고 기술자를 부를 생각도 못한다. 언뜻 닳고 닳은 듯 보이는 용채는 그런 영하를 돌보는 경험 많은 산신령이다. 수많은 겨울을 지내본 용기의 화신. 그러나 영하는,



난 끝까지 여름일 거고.



그래서 여름 불청객을 끌어당긴 것이다. 빌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라면 끝까지 여름일 수 있지 않을까 환상을 품은 것이다. 그래서 헛바퀴를 돌며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던 성아를 아무도 없는 펜션으로 초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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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민한 성아는 초대에 응했고 펜션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영하와 펜션의 조합은 그녀를 다시 태어났다고 느끼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녀 역시 붉은 여름만을 살다 갈 생각이었으니까.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영하는 깨닫는다. '미루고 피하고 숨긴다고' 겨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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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개구리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네. 잘 해봐.'



한편, 영하의 딸 의선은 아버지의 갈망을 아는 건지, 아내 잃은 아버지와 성아를 맺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두 사람이 원만한 합의를 이루었다면 모른 척 자신의 새로운 가정에 집중할 수 있었겠지만(그녀에게도 자식이 생겼으니), 합의는 타결 직전에 결렬되었다. 합의는 이것이다.



끝까지 여름일 것.



성아는 영하에게 관리동을 뺀 펜션을 팔 것을 제안한다. 관리동에서는 영하가 살고 자신은 펜션에 살고. 동거를 제안한 것이다. 어쩌면 기다리던 제안을 받아든 영하는 갈등하고 고민하다 거짓 없이 제안을 수락한다. 단, 조건이 있다. 딸의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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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딸린 남자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성아의 갈망은 또 좌절되었다. 그 둘 사이에 자신이 낳지 않은 자식이 또 끼어든 것이다. 성가시다. 이번에도 너희들은 사라져 줘야겠어. 나는 아버지가 필요하니까. 붉은 캐리어에 담긴 자식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아버지들은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다. 겨울이 다가왔음을. 그렇다면 여름은 사라져 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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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채 : 서울 가서 딸내미랑 사니까 좋냐?
영하 : 답답해서 못 살겠어요. 살만 찌고.. 근데 수리할 데가 투성이네.
용채 : 남는 게 시간인데 천천히 하나씩 하면 되지, 뭐 처음 왔을 때처럼.
영하 : 뭘 천천히 하나씩 해요. 업자 불렀어요.
용채 : 많이 컸다?
영화, 용채 : [연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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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눈이 쌓이기 시작한 아무도 없는 숲속 펜션에 용채가 얼지 말라고 수도관에 동파 방지용 방한재를 감싸고 있다.



용채는 언제나 겨울을 산 듯 동파 방지에는 예민하지만, 여름을 살아보지 못해 에어콘이 말썽이다. 게다가 영하가 가진 딸도 없고(영하의 딸을 자신의 딸인 양 부른다), 시한부일지언정 남편 곁을 지켜주는 아내도 있는지 없는지. (그의 아내와 자식은 병상도 돌보지 않다가, 퇴원할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 조용히 짬뽕만 먹는다.) 그래서 영하가 부러웠나 보다. 그의 여름을 조용히 지켜보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이제 영하는 계절의 순리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아마도 미루고 피하고 숨겼던 일을 직면한 기호에게서 배운 것이리라. 복수는 개구리들의 의무라는 사실도. 그래야 이 계절의 반동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또 다른 개구리 성아는 죽어버렸으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멧돼지 귀신이 되어 나타나려나. 그러나 영하에게는 다행히 산신령 용채가 있다. 느슨한 연대도. 그리고 새로 태어난 자식의 자식도. 지켜야 할 이들이.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여름일수는 없단다. 겨울이다 봄인 줄 알았으나 돌 맞고 겨울에 도로 갇힌 개구리들, 상준들은 억울하다만. 그러다 보면 용채처럼 산신령이 될 수도 있다. 아, 물론 마법사도. 겨울의 달인이 되면 여름이 부러울지언정 동사할 걱정은 없으니까. 부둥껴 않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오지랖이라고 내치지는 마라. 너라고 겨울 스킵하고 봄일 수는 없으니까. 여름은 영원하지 않단다.



물론 조용한 겨울이 지나면 순리를 따라 여름이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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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같은 여름이 찾아올지도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87.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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