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을 마치며 많은 생각이 머물렀다. 후회가 없고 미련이 없다. 다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할지 망설여지거나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여겨지는 지점들을 발견하긴 했다. 해 보았으니 아는 거지만 남은 것을 생각하면 한 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백 없이 빽빽히 들이 채운 삶이었다. 공간의 여백은 좋아하지만, 선택의 여백은 뭔가를 놓치는 기분이라 늘 꼼꼼하고 빽빽하게 행사했던 것 같다. 불일치하는 운명과 성향의 차이가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는 깨달음은 뒷맛이 씁쓸하지만, 그만큼 높은 난이도의 퀘스트였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아직은 미력하다는 생각도. 언젠가 도사님은 내용도 모른 채 아까운데 아쉽다고 말했다. 잘 쓰였으면 좋으련만. 도움을 얻은 이들과 달리 소진되는 삶에 대한 연민. 영화 <그린마일>의 사형수가 가끔 떠올랐다. 타인의 고통을 흡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연민하는 마음으로 흘러가 버린 장면들을 손으로 점자를 읽듯 읽어 내려갔다. 어떤 장면에서는 분노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안타까워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어떤 장면에서는, 어떤 장면에서는. 잘했다고,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계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지만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시간 속에 머물고 있으니까. 이미 기록된 것에 대해서는 안녕을 고하고 이제 기록해 가야 할 다음 계절에 대해서는 그저 환영해야지. 그것이 어떤 감정으로 채워질지라도. 너에게는 미안하다 말하고, 너에게는 고마웠다 말하고, 너에게는 여한 없이 떠나가라 말하고, 너에게는 지독했다 말하고, 너에게는 아쉽다 말하고. 나에게는, 나에게는, 나에게는. 입춘이 지났다. 하늘이 불타오르고, 대지가 불타오르고, 바람이 그 불에 힘을 불어넣겠지. 나의 마음도 다시 불타오르기를. 새로운 계절에는 새로운 기록을. 새로운 계절에는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계절에는 새로운 마음을. 새로운 계절에는 새로워져야지.
[위즈덤 레이스 + Music100] 24. Braille_ Ardie Son
음악과 같이 읽어나가니 영화의 독백이 되어버리네요. 주술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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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자막의 OST 같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이 공간에서 댓글이라니. 새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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