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를 상징하는 시민 정신은 실현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힘과 명예'였다. 전근대의 야만을 시민들의 '명예혁명'을 통해 사회와 개인, 국가와 국민, 집단과 개인 간의 관계를 권력과 복종이 아닌, 계약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것에 열광했던 부르주아들이 있었고. 절대 권력의 자리를 분산시키는 대신 잠재적 전복자, 혁명가, 검투사들에게 주어진 건 '자유 시민'이라는 명예인 것이다. 그게 고작 그럴듯한 명분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권력은 분산되었고 개인이 아닌 어떤 집단에게 유전되었다. 그래도 노예가 자유 시민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고무적이다. 역사의 발전이 늘 그렇듯이.
'힘과 명예'의 근대를 근간으로하여 나아간 현대의 시대정신은 '자유와 개성'일 것이다. 그것은 나누어진 것이 아니고 근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피어나는 꽃같은 것이다. 통제된 힘을 근간으로 한 시민의 자유와 명예를 기준점으로 하는 개인의 개성.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이것은 서로를 견제하고 강화하며 자라나고 성장해야 가야 하나... 쩝, 세상일이 그리 쉬운가.
2천 년 전 로마에서도 그건 어려웠다. 자유와 개성은 고사하고 근대를 향해 나아가고픈 제국의 꿈은 여전히 명예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생존이 시대정신인 야만의 시대에서야 이름 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하지만 먹고만 살다 간 인간을 역사는 기억해 주지 않는다. 비록 콜로세움에서 비명횡사를 했더라도 명예, 이름을 지키다 간 장수는 영원불멸의 역사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성급하게 현대의 시대정신을 논하려다 인류는 탈이 나고만 듯하다. '자유와 개성'은 '명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저질 PC주의와 어설픈 LGBTQ?의 개성을 만발시키려다, 이미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성난 군중의 Kill Sign을 받아 든 트럼프 황제에게로 권좌를 내주고 말아 버렸다.
이게 기후의 위기로 말미암은 자원 경쟁인지, 인간의 타락한 행동으로 말미암은 자연의 역습인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암튼 현대는커녕 근대의 시대정신마저 보장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작금의 현실을, 노장 리들리 스콧은 키케로의 말을 빌어 이렇게 일갈한다.
"로마 시대의 노예는 돈으로 자유 시민의 권리를 샀지만, 현대의 노예는 자신의 노예를 사기 위해 돈을 번다."
노예를 사기 위해 노예가 되는 이 이율배반적 삶이 인생의 표준이 되어버린 현대는 콜로세움과 다를 바가 없으니 우리는 어려서부터 검투사로 길러지지 않는가. 그러니 열심히 친구와 동료, 심지어 부모와 형제의 목을 따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아파트, 자동차, 명품의 노예로 남은 생을 헌신하면 되는 것이다. 목숨이 달린 검투사에게 이름값이 뭐가 중하겠는가.
하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개같은 죽음을 맞이할 바에야 이름 한번 크게 외치고 죽는 건 어떨까?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氏發.
제군!
3주 후면 나는 내 집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을 것이다.
제군도 꿈꾸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대열을 지키고, 나를 따르라!
만약 어느 순간 제군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푸른 초원을 달리고 있어도 놀라지 말라.
제군은 이미 죽어서 엘리시온에 있는 것이니까!
전우들이여! 살아생전 우리의 업적은... 후세에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힘과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려는 반전기에 트럼프가 황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거래의 달인이므로 인류는 어쩌면 4년간의 과도기를 마지막 기회로 얻은지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가지고 거래를 할까? 힘인가 명예인가. 힘없는 자유와 명예 없는 개성을 가지고 콜로세움에 들어서 봐야 단칼에 목이 날아갈텐데. 그대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strength and honor!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90. 글래디에이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