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량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많이 읽고 싶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세상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책은 물론이고, 노잼 컨텐츠와 유해 컨텐츠도 너무 많다. 그런 읽기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나를 위한 텍스트를 만나는 일만이 중요한데, 그 순간을 위해 꼭 많은 시도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운과 감에 기대어 찾아낼 수 있다. 그렇게 실마리를 찾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생각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하면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나의 읽기 생활은 앞으로도 비슷하게 흘러갈 예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여름 <바르도퇴돌> 읽기에 다시 도전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그 이후 전에 없이 책을 많이 읽었다. 탐구심이 일어 책을 연달아 찾아 읽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바르도퇴돌>로부터 시작된 연결은 융과 데이비드 보위를 거쳐 차라투스트라에 다다랐고, 대학교 3학년 때 두세 페이지 읽다가 던져버렸던 차라투스트라의 말들을 모두 읽어내고 마침내 '나를 위한 텍스트'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쾌거랄까. 요즘엔 구루 린포체 만트라 읊을 때 같이 외친다. 위버맨쉬 위버맨쉬 위버맨쉬!
어젯밤에는 파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집에 오는데 갑자기 온갖 걱정, 두려움과 부담감이 앞다투어 밀려들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에 땀이 막 났다. 떨쳐내려고 일부러 산길로 접어들어 걸었다.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에 집중했다. 집중하며 발걸음을 옮기니 의미 없는 걱정거리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손에 든 핸드폰 화면에 반사된 빛이 공중에서 유령처럼 일렁거릴 때는 몇 차례 깜짝 놀랐다. 크게 놀라고 나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어둠과 고요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지만, 그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되돌아왔다. 의연하게. 의연하게.
인간은 가장 용기 있는 짐승이다. 바로 그 용기로 인간은 온갖 짐승을 넘어섰다. 진군의 나팔 소리를 울리면서 인간은 온갖 고통마저 극복했다. 인간의 고통이야말로 가장 깊은 고통인데도.
용기는 심연에서 느끼는 현기증도 죽인다. 그런데 인간이 서 있는 곳치고 심연 아닌 곳이 있던가! 본다는 것 자체가 심연을 보는 것이 아닌가?
용기는 최고의 살해자다. 그것은 동정도 죽인다. 그런데 동정은 가장 깊은 심연이다. 삶을 깊이 보는 것만큼 인간은 고통도 깊이 본다.
하지만 용기는 최고의 살해자다. 공격하는 용기는, 이 용기는 죽음마저도 죽인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에서는 진군의 나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