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달리면서 좋은 건 하루 중 유일하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둑한 새벽 공기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짙은 적막이 나를 반겨줄 때, 점점 더 호흡이 가빠질 때 나를 느끼고 깨닫게 된다.
오늘은 달리면서 퇴사에 대해 생각했다. 어제 사직서를 냈고 부장이 잠시 면담을 했다. 첫마디는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였다. 이 한 마디에서 이 사람에 대해 남아있던 실오라기 같은 믿음도 사라졌다. 언제나 자신은 피해자라는 생각, 자신은 잘하고 있는데 부하들 능력이 없어서 자신이 매번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퇴사를 하면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봐 회피하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나와 대면했을 때 나를 '바른 말 사나이'라 불렀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했다. 부하 직원들의 말에 언제든지 경청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이틀 지날수록 변했다. 어느 순간 나는, 곁에 있으면 껄끄럽고 곁에 없으면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 아쉬운 '계륵'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은 학문에 능통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비슷한 부류인 양수가 있었다. 양수는 책략에도 능해 조조가 책사로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유비의 촉과 한중을 두고 전투를 버릴 때 조조는 고민에 빠졌었다. 한중 차지하고 지키자니 거리가 멀어 방어하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촉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라 아쉬웠다. 유비 입장에서 한중은 꼭 필요한 도시였기에 더 포기하기 싫었을 테다. 조조는 닭갈비뼈를 발라 먹다가 '계륵' 이라고 말했다. 하후돈은 이것을 그날밤 암구호로 사용하였고, 머리는 좋으나 눈치는 없었던 양수는 '계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철군 준비를 지시한다. 후에 철근하기 위해 준비가 된 모습을 보고 조조는 크게 분노하였고, 결국 양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실 내가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도 상관없다. 내가 일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있지만, 일을 통해 성장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스팀잇에 글을 쓰는 것처럼 회사에서도 글 쓰는 걸 좋아해 내가 만든 업무메뉴얼과 회사규정, 그리고 보고서들은 아직도 몇몇 분들이 사용하고 있다. 가끔씩 내가 만든 양식을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반갑기도 하고, 직접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을 만나면 오히려 내가 더 고맙기도 하다. 그분들 덕분에 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무언가를 더 해낼 자신이 없다. 어느 순간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감동보다 실망과 상실감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하튼 아내님과 대화를 하면서 꼭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양수는 '계륵'을 자신의 생을 갉아먹는 것으로 사용했지만, 나는 생을 마주하고 나아가기 위해 사용하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 감사하며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늘 격려하고 응원해 주시는 스티미언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 스팀잇이 더 흥하도록 도움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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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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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t925 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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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있군요.
조직을 갉아 먹는….
잘 하셨습니다. 좋은 기회가 올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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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어도 됩니다.
지나와서 보니 열심히 달리다가 쉬는 기간에 더 큰 힘을 축적했더군요.
급하지는 않지만, 소홀하지는 마시고 이직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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