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01(월)역사단편84-평양패수고(16) 백제와 낙랑4

in hive-143843 •  3 months ago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역사에 등장하는 지명의 위치를 추정할 때
'유물'을 몇 개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주류 사학자들인데
'실증'이라는 이름을 앞세운다.

그런데 과연 물건 몇개로
그 지역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까?

지천에 널려있는 중국집간판이 천년후에 발견되면
그곳이 곧 중국땅이 되는 것인가?

강단 역사학자들은 빛나는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 게으르고 안일하며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와 다름없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추구가 전체의 이익과 배치되면
그 개인은 매장되거나 무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 역사학계의 현실은
국가의 이익에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개인의 이익을 누리면서 명예까지 독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매국노들이 가르치는 역사를 배웠고
우리 자식들도 그들에게 배운다.

머지않은 시간에,
북쪽은 중국에 귀속되고,
남쪽은 어찌될지 모르겠다.

북쪽이 중국에 귀속되는 것은
발해가 거란과 여진에게 먹힌것과 같은 이치다.

조선 민족은 옳으니 그르니 따지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실속은 내다버리고 쪼개지기 바쁘다.

1찍은 2찍을 증오하고,
2찍은 1찍을 증오한다.

11.jpg
<조선사 편수회원들의 야유회>
해당 사진은 2009년 중앙일보에 게재된 것이다.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로 개편됐다.
편수회는 『조선사』 37권을 비롯해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등 식민주의 사관에 입각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책과 자료집을
무수하게 찍어냈다.
[출처:2009.09.03중앙일보 허동현]

단재가 가난에 고통받고
독립운동을 하느라 몸이 열개여도 부족하던 시기에
오늘날의 역사학계의 선배들은
개인의 정당한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공식적인 역사기록은
이때 만들어진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대 학자들의 제자들로 대를잇고 확대되었으니.
주류역사학계에 진실을 말하는 자는 없다.
자기 이익만을 정당하게 추구할 뿐!!

평양패수고나 읽어보자.

이제 古爾王(고이왕)의 侵襲(침습)한 樂浪(낙랑)으로 말하면,
『三國志』 東夷列傳(동이열전)에
「明帝密遺帶方太守鮮于嗣(명제밀유대방태수선우사)
樂浪太守劉昕越海定二郡(낙랑태수유흔월해정이군」註23)이라 하고,
「正始六年樂浪太守劉茂(정시6년 낙랑태수유무)
帶方太守弓遵以嶺東濊屬句麗(대방태수궁준이령동예속구려)
興師伐之不耐候等擧邑降(흥사벌지불내후등거읍강)」이라 한 바,
<출처: 평양패수고>

明帝(명제): 조조의 손자인 조예(205~239)
遺(유): 보내다
侵襲(침습): 침범하여 습격함
正始六年:정시6년(245)
降(강): 항복하다

(해석하면)
이제 古爾王(고이왕)때 공격한 ‘낙랑’으로 말하면,
『삼국지』 ‘동이열전’에
「명제(조예)가 몰래 대방태수선우사,
낙랑태수 '유흔'을 보내 바다를 건너 두 개군을 평정했다」註23)이라 하고,
「정시6년(245) 낙랑태수유무
대방태수궁준이 령의 동쪽인 ‘예’가 고구려에 속해 있으니
군사를 보내 공격하니 불내후등이 읍을 들어 항복했다.」이라 한 바,

註23)『三國志삼국지』에는
“景初中(경초중)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명제밀유대방태수유근)
樂浪太守鮮于嗣(낙랑태수선우사) 越海定二郡(월해정이군)
”으로 되어 있다.
(해석하면)
「경초(237~239)중에, 명제(조예)가 몰래 대방태수유근,
낙랑태수선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 두 개군을 평정했다.」

단재는 참고서적을 옆에두고 이용할 수가 없었다.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사람 이름을 혼동한듯 하다.

이와 같이 樂浪(낙랑)이
魏將 劉昕(위장 유흔)과 劉茂(유무)가 相繼(상계)하여 太守된 곳이니,
만일 이 樂浪이 今平壤(금평양)일진대,
丸都(환도)에서 寇(구)를 避(피)하여 遷都(천도)한 東川王이
어찌 九年 동안 根基(근기)가 深厚(심후)한
魏人(위인)의 樂浪에 移都(이도)할 수 있으리오.
<출처: 평양패수고>

相繼(상계): 서로 계승하다
寇(구): 도둑
根基(근기): 뿌리내린 터전
深厚(심후): 깊고 두텁다.

단재는,
경초(문제:237~239)때 낙랑태수가 <유흔>,
정시6년(245)당시의 낙랑태수는 <유무>라고 말하고 있다.
삼국지원문에 따르면,
<유흔>이 아니라 <선우사鮮于嗣>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름이 달라져도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해석하면)
이와 같이 樂浪(낙랑)이
위나라 ‘유흔’과’유무’가 계승해서 태수된 곳이니,
(수정하면, 위나라 선우사와 유무가 계승해서 태수된 곳이니)
만일 이 낙랑이 현재의 평양이라면,
환도에서 도적을 피하여 천도한 동천왕이
어찌 9년 동안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을
위나라의 영토인 낙랑으로 수도를 옮길 수 있겠는가..

사서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낙랑은
(1) 지금의 중국땅 어딘가에 있었거나
(2) 지금의 평양에 있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중국땅에 있었다면, 현재의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쳐야하고
평양에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뜯어고쳐야 한다.

어느쪽이건,
현재의 교과서에서는 말도 안되는 사실을 보여주며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한번 떠받들면
일체의 의심을 하지않고
던져주는대로 덥석물고 암기만 해대는
묘한 습성이 유전자 속에 있는 것인가?

80년대 운동권들이
선배 운동권들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서울대 운동권에서 만들어 던져준 두 세개 노선 이론을
경전으로 여기고 토씨하나까지 외우며
그 찌라시를 근거로
다른 노선과 견해들에 대해서는
원수 보듯이 격렬하게 비난하던 인물들이
여기 저기서 이름을 휘날리고 있다.

수십페이지 남짓하던 찌라시를
진리의 성배처럼 느끼며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배격하던
편협한 시각의 소유자들이
살아오면서 좀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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