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쩌다 귀농) 샤랄랄랄랄랄라, 첫 농사짓기

in hive-196917 •  5 years ago 

어쩌다귀농.jpg

2008년 우리는 경북 상주에 귀농하여 2016년 10월 5일 제주도로 이사오기까지 시골 생활을 했었다.
9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어쩌다 귀농'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귀농이야기를 연재해볼 생각이다.

세상일은 참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귀농을 꿈꾼 건 남편이었고 나는 농사에 대해 꿈도 꿔보지 않았던 사람이었어서, 우선 남편의 생각에 동의하고 시골로 이사는 갔지만 나는 농사는 짓지 않는 걸로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시내에 있는 학원에 논술강사로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사방이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도 반은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쓰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고, 널찍한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살고, 시내에 한번 나갈려면 차로 2, 30분 걸리고, 뭔가 일상이 한가롭고 고즈넉한 것이 꽤 괜찮은 시골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내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바로 '봄'이라는 계절 때문이었다.
봄이 되니 시골은 통째로 활기를 갖기 시작했다.
그저 쓰잘데 없는 땅처럼만 보이던 곳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자라기 시작했고, 황량하기만 하던 과수원 나무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금세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햇살은 왜그리 화사하고 따뜻한지, 생애 첫 시골살이를 해보던 나는 아침마다 어딘가로 소풍을 가야할 거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봄이 되면 과수원을 하는 농부에게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
사실 귀농 첫해에는 때되면 해야하는 농사일은 전혀 몰라서 어리버리 지나가긴 했지만, 일년 농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봄에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되었다.

아무튼 우리도 사과 과수원을 임대받아 놓았기 때문에 봄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남편은 그간 공부했던 지식을 총동원해서 평생 해보지 않은 일에 몸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과수원에서 봄에 하는 일은 꽃이 피었을 때 적당히 '꽃적과'라는 것을 해야한다. 그건 꽃이 너무 많이 있으면 그게 다 과일이 되기 때문에 양분을 나눠 먹는 과일의 개체수가 많아지게 되어 과일이 잘 크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꽃을 솎아주는 것을 '꽃적과'라고 한다.

우리? 우린 꽃이 너무 예뻐서 그냥 꽃구경만 했다.ㅋ

꽃이 피었을 때 세상 벌들이 모두 날라온 듯 과수원에는 벌들이 웽웽웽 난리가 난다.
꽃이 한참을 향기롭고 예쁘게 지내다가 벌들에 의해 수정이 된다.
보통 농가에서는 이때 인공수정이라는 것도 해주는데 우린 벌만 믿고 그저 꽃구경만 했다.ㅋ
수정이 되면 사과꽃 하나에 여섯개의 사과가 수정이 된다. 가운데 튼실한 녀석 하나와 그 하나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다섯개가 달려있다.

수정이 된 과일이 손톱만해지면 또 할 일이 있다.
'적과'라고 해서 가운데 있는 튼실한 녀석만 빼고 나머지 다섯 개를 가위로 하나하나 잘라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전체 나무에 사과가 30cm 간격으로 하나씩 달리게 거리도 맞춰주어야 한다.
사과의 모양이 예쁘게 될려면 나뭇가지에 가장 예쁘게 달려있는 녀석을 중심으로 거리 적과를 해주는 것이 기술이다.
너무 낮은 곳에 달아도 안되고, 너무 높은 곳에 달아도 안되고, 너무 깊숙한 곳에 달아도 안되고, 너무 끄트머리에 달아도 안된다.

우리? 이런 것 하나도 모르고 예쁘게 수정된 사과를 잘라내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어서 엄청 많은 사과를 남겨두었다.

그당시 우리가 임대한 사과밭에 사과나무는 세어보진 않았지만, 100그루는 넘었을 것이다.
오래된 사과밭이라서 나무도 수명이 수십년이 된 것들이었다.
사과나무 하나에 수백개의 꽃이 피고 그 꽃마다 여섯개의 사과가 수정되니 나무 하나에 가위질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계산도 안된다.
남편은 처음 하는 농사에 혼자 나무 하나에 매달려 하루종일 적과를 했다.
아마도 남편 혼자 그걸 다 하려면 일년은 충분히 걸렸을 것이다.
그 당시 나의 하루 스케줄은 아침 먹고 점촌 수영장에 수영갔다가 점심먹고 상주 시내 학원으로 출근해서 저녁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침에 나갈 때 남편이 한나무에 매달려 적과를 하는 것을 보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데 아직도 그 나무에 매달려 있는 걸 봤다.
이래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는 집성촌이었어서 농사일을 서로 품앗이해주는데, 우리는 연고가 없는 이곳에서 그 시스템에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우리 농사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우리와 평생을 농사만 짓던 이웃분들과는 품앗이가 성립이 되질 않긴 했다.

결론적으로 세상일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절대로 일은 시키지 않겠다는 남편의 약속은 어쩔 수 없이 내가 깨게 된 것이다.
오전 운동을 접고 반거치 농사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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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농사일'이라며 사진 한장 찍어놓고, 샤랄랄라하게 빛나는 효과 넣어 기록해두었다.
정말로 철없는 농사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남편이라서 우리는 과수원에 농약도 안치고, 영양제 살포도 하지 않고, 비료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리고 과수원에 나는 풀도 잘 깎아주지 않았다.
가을에 수확을 어떻게 할지는 몰라도 우선은 일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농사 스타일은 두고두고 이웃 분들의 핀잔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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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미국 씨애틀은 물건 사제기가 심해 앞으로 텃밭에
농사 지을까 생각 중이에요 ㅋㅋ

요즘 미국 아주 심각하더라구요...ㅜ
텃밭에 야채가 자라기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길 바래야할 듯합니다.^^

샤랄랄라하게 빛나는 효과 넣어 기록해두었다.

ㅎㅎ 철없을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는거죠^^

농사지을 때, 제가 정말로 철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ㅋ

재밌습니다. 다음이야기가 기대됩니다~~ㅎ

앗! 스칸님!! 너무 반갑습니다.
스팀잇에서도 현실에서도 이런저런 일로 시끄러운데, 잘 계시는지요.^^

[어쩌다 귀농] 언제 올라오나 했어요~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스팀잇과 하이브 분리로 시스템이 불안해서 이 연재가 계속 밀렸네요.^^
부지런히 써도 일년 이상 걸릴텐데.... 이제 정신 차리고 자주 써 보려구요.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기농 사과 맛보고 싶네요!!ㅎㅎ

유기농 사과의 맛을 저는 아직도 정의를 내릴 수가 없더라구요.
유기농이 맛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해 그해 자연 조건에 따라서 맛이 좋기도 하고 오히려 맹맹하기도 하고 그래요.
단지 텁텁한 맛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마도 유기농 과일의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긴 건 또 왜그리 못생겼는지...ㅋㅋ

저도 20대에 호주 사과농장에서 적과 (픽킹) 무지 많이 했습니다.
농부시절 생각나는 글이네요.^^

우와~ 적과를 호주에서 해보셨어요??
그럼 사다리도 엄청 잘 타시겠네요? 호주는 사다리타고 적과 안하려나요?
전 완전 곡예사 수준으로 사다리를 잘 탑니다.ㅋㅋㅋ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앵두와 대추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는데, 그걸로 족합니다.^^

앵두나무, 대추나무 하면 또 제가 사연이 많죠.ㅋㅋㅋ
농사일이 서투니 사연 투성이랍니다.ㅋ

저희도 동네 어른들의 웃음을 많이 삽니다. ㅋㅋ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살때 가장 힘든 것이 그런 거 같아요.
기존의 농사방식을 그대로 따르려는 어른들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사람들 간의 마찰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저흰 귀하디 귀한 젊은 귀농인이었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 주시더라구요.ㅋㅋㅋ

저는 완전 시골뜨기인데 적과라는 말을 안지가 얼마 안됐고 달래도 꽃이 핀다는 걸 굉..장히 늦게 알았어요. 여튼 그런 철없음이 저는 더 좋아보입니다. 자주 보러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