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하루가 조금씩 미워지는 마법의 주문

in hive-196917 •  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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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마법의 주문을 지니고 있다. 평소 마법과 거리가 멀어도 낙담하지 마시길. 주문은 일반인도 쓸 수 있을 만큼 강력한데, 일반 마법은 듣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반면 이 마법의 주문들은 말하는 사람에게까지 효과가 들어 독특하다.

다만 진심을 듬뿍 담아야 한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라는 다정한 말이 업무 메일 끝에 달리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변한다면 애정의 의미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참, 우리는 신기하게 타인을 괴롭히는 마법의 주문을 주로 자신에게 쓰더라. 마녀들이 굳이 눈앞에 출몰하지 않는 이유다.


몇몇 사람들은 이 마법의 효력을 일찍 깨닫고 사랑과 증오를 넘나들며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데, 그래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주문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구독하는 애정하는 독자 분들에게 특별히 이 주문을 슬쩍 알리려 한다. 하루가 미워지는 마법의 주문, ‘이건 내 길이 아니야’다.

일이 고될 때, 도망치고 싶을 때, 사람들이 나를 괴롭게 할 때, 원하는 곳에서 탈락 소식을 받을 때 가장 많이 하던 생각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므로 피해도 괜찮다는 합리화였다. 주문을 읊으면 속한 공간은 신기하게 나와 상관없는 공간이 되었다. ‘시골 사람이지만 내가 있을 곳은 도시야’ 라거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마케터 일은 돈 때문에 하는 거야’ 라 속으로 중얼거리면 어깨가 올라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므로 이곳에 있는 사람을 무시했다. 당신과 나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으며 지향하는 분야의 사람을 만나면 숨겨진 상냥함을 내보였다. 당신이 있는 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므로. 나는 하나인데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됐다.

여기는 내 길이 아니라는 말은, 원하는 미래를 잡으며 자존감을 높이는 긍정의 주문인 줄 알았는데 도리어 하루가 미워졌다. 사실 글 쓰는 시간보다 마케팅을 하는 시간이 길고, 도시에 있는 시간보다 시골에 있는 시간이 길다. 살이 쪘고 피부가 뒤집혀 작년에 입은 옷이 맞지 않는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자 현재가 볼품없어 보였다. 지금이 미워지는 수순은 당연했다.

본래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을 들어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 본연의 나는 빛이 났던 과거의 나였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시 깃든 발언을 들으면 마음이 펄펄 뛰었다. 전에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기분이 안 좋았나, 하고 넘겼는데 지금은 내 목소리가 얕보여서인 게 틀림없다며 화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옷장에 감춰진 열등감이 겨울을 맞아 슬금슬금 밖으로 나올 채비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진정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빈 노트를 꺼내 한참을 적었다. 베스트셀러 몇 권을 연달아 내고 강연이 물 밀듯 쏟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서 소위 스펙이라 여겨지는 훈장이 없어도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렸을 적에는 여기서 상도 받았고 해외도 다녀왔고, 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가장 오랜 과거가 한 달 전으로 업데이트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속한 세계를 인정해야 했다. 스스로 만족할 선에 다가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나, 오늘 하루만은 기분 좋게 지내는 사람.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기 전 이불을 덮으며 아, 오늘 너무 행복했다,라고 감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라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야, 라고 말하는 사람.

좋아하는 지인은 오래전부터 책과 영화를 올릴 때마다 ‘… 만큼 오늘 내게 어울리는 건 없어.’라는 말을 곁들인다. 나는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오늘만큼 내게 어울리는 날이 없다는 주문을 외운다. 성공하고 싶다는, 인기를 얻고 싶다는,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면 나는 신입 마법사가 되었다는 상상을 한다. 지금을 부정하지 않고 오늘을 만족시키는 주문을 찾아 헤매는 꼬마 마법사.

마음껏 닿아도 괜찮은 날이 오면 묻고 싶다.

당신을 몰래몰래 괴롭히는 얄궂은 마법의 주문은 무엇일까. 기분 좋게 만드는 주문인 줄 알았는데, 실은 하루가 미워지는 속임수 주문임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 오랜만에 스팀잇을 찾아왔어요. 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부쩍 추워졌어요. 따뜻하게 채비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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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되뇌는 건 좋은 과거라도, 나쁜 과거라도 부정적인 경험을 주기 쉬운 것 같습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느낀다면 현재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지고, 부정적인 과거를 떠올리면 괜히 후회하는 밤을 보내게 되니까요.

반갑습니다. ㅎㅎ 진짜 며칠 사이에 너무 추워졌어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