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 - 1948, post # 12

in koreanwar •  6 years ago 

웨더스비 교수 씀

스탈린 루즈벨트.jpg

미국에게 있어서 남한의 점령은 경제적인 부담이었으며, 미국은 값어치 있는 자원을 거의 가지지 못한 지역에 식량보급, 에너지 지원 등을 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은 북한의 풍부한 광물과 산업지역을 통제하는 것이 전쟁으로 찟겨나간 국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자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소련 외무부는 모스크바의 1945년 12월 연합국 외무장관회담에서 한국문제 해결에 대한 토의를 준비할 때, 소련 외교관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경제적 자산에 대해 지속적인 통제를 확보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개략적인 보고서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그중 하나의 방안이 모든 일본의 군수산업과 중공업이 전리품으로 부분적 보수를 위해 소련에 양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1945년 소련이 대일본전에 참전한기간은 매우 짧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원들은 이런 자원들은 “소련의 전기간동안, 1918-1923년간 극동지역에서 일본의 간섭으로 인한 피해를 포함하여, 일본에 의한 막대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소련 영사관이 일본 통치의 마지막 기간 동안의 각종 자산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준비했기 때문에, 소련 정부는 한국의 일본 산업자산, 가치있는 광물자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일본과 1945년 8월 9일 선전포고를 하기 전까지 일본과 중립조약을 준수했으며, 그리하여 태평양 전쟁동안 서울에 영사관을 계속하여 유지했었다. 소련군은 한국의 자원에대한 위치와 성격에 대한 지식으로, 점령을 하자마자 자신의 지역을 경제적으로 봉인해버렸다. 적군(소련군)은 사람들이 38도선을 넘어 남한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으나 전력과 석탄의 유출을 중지시켰다. 적군(소련군)은 또한 수송, 우편 및 일상생활에 중요한 여러 기능을 금지했다.

9월 중순 미군이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미군 장교들은 평양을 방문하여 소련의 카운터파트들이 서울에서 38도선의 분할로 인해 조성된 현안문제들에 대한 토의를 하자고 초청했다. 그러나 소련군 장교들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북한의 자원을 자신들을 위해 확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군들이 일본이 건설한 산업 공장을 해체하여 기차로 장비들을 소련으로 보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경제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은 실제로 가능성이 있었다. 11월 8일 미국 대사 해리먼은 스탈린에게 두 점령군 사령관이 만나서 어떻게 교역, 철도수송 그리고 해안 하역, 동일안 재정정책의 수립 및 기타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토의를 하자는 이전 미국의 요구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이러한 대화가 소련의 “전리품” 약탈을 방해할 것을 두려워한, 소련 외무부는 대신 두 국가가 “소련과 미국군대가 한국 영토에 주둔하는 사실로부터 발생한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 소련-미국 위원회의 창설을 제안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스크바 회담에서 왜 소련 대표들이 국무장관 번스(Byrnes)가 회담의제 였던 통일 정부의 수립 주장보다 “현안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으로 한국문제에 대한 토의를 시작하자 긴장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번즈는 몰로토프에게 모스크바가 한국의 소련 사령관이 미군의 카운터파트와 해리먼이 11월 8일 편지에서 열거했던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을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었다. 몰로토프는 해리만의 편지가 회담의 의제와 관련이 없으며, 독립한국 정부의 수립을 향한 첫 행보가 무엇인지에대한 미국정부의 생각을 포함하고 있기때문에 그가 편지를 언급하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도 있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몰로토프가 저항했을 때, 번즈는 해리만의 제안은 신탁통치의수립을 위한 첫 조치일 수 있다고주장했다. 소련 외무장관은 어떻게 이러한 문제가 연관되어 있으며 그렇게 설명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자연스럽게 주장했다

다음의 포스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국에 대한 논의가 이런 예측할 수 없이 혼란한 출발에서, 신탁통치에 대한 완전히 무력화된 합의로 결론으로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참고자료]
Suzdalev, “A Report on Japanese Military and Heavy Industry in Korea,” December 1945. Archive of the Foreign Policy of the Russian Federation, Fond 0102, Opis 1, Delo 15, Papka 1, Listy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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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이 산업시설을 북한에 지어놓은것도 한몫했겠죠. 남한은 자기들이 쓸 전기조차 북한에게 의존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