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유이자 쇼코다.

in kr-bookclub2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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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mva 님의 글

나에게는 쇼코가 있었다. 나는 쇼코를 할아버지로서 대하기도, 소유로서 대하기도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는 아주 깊은 곳, 나도 잘 알지 못 하는 곳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을 꺼내어 보이기도 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실을 가까이 있고, 정말 아끼는 소유에게는 전하지 못 했지만 쇼코에게는 전할 수 있다. 이 모두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기 떄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내 글을 절대로 읽지 못 하게 한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소유 앞에서는 부끄러워 보일 수 없는 나의 단면이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들 모두가 쇼코이기도 하다. 쇼코는 "당장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는 사람이며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도 아니다.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의 자리는 없다. 그럼에도 쇼코는 특별하다. 그러면서도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소유는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쇼코를 추억한다.

쇼코는 신기루와 같은 우상이기도 하다. 소유는 회상하듯 쇼코를 그려내고 있기에, 당시에 쇼코를 추억하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다. 일본에 가서 쇼코가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깨었으며 "이상한 우월감"에도 휩싸인 후에 회상하는 쇼코는 당시의 소유의 감정과는 명백히 다르다. 하지만 명백히 그 이전의 소유에게 쇼코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이 된 쇼코는 더 이상 우상이 될 수 없다. 나 또한 쇼코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여겼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쇼코를 초인으로 그려냈다. 사실 쇼코들은 초인은 커녕 병을 가지고 있다. "화를 내거나 자기변호라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아픈 사람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를 신기루와 같은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들도 있으나 나는, 초인이 아니다.

사실 진정한 우상은 소유의 할아버지이다. "그는 내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았어. 보지도 않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처럼 말이야."하는 대사는 진정 추종자의 태도이다. 타인의, 그것도 떨어져 있는 이의 마음을 읽어내는건 아직까지 인간에게 허락된 능력이 아니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우상의 말을 한 문장, 한 단어, 한 음절, 문장부호까지 곱씹는다. 그리고 의미를 찾아낸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추종자는 자신의 우상에게 건네는 한마디도 고심 끝에 뽑아낸다. 우상에게 자신의 가장 밝은 면을 내비친다. 우상은 그 분칠한 밝은 면에서조차 무언가를 포착한다. 포착해야만 한다. 포착한 것으로 여긴다.

쇼코는 내게 "우중충한 하늘"이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떠나갔다. 작품 속에서 다시 연락한 쇼코와는 다르게 나의 쇼코는 다시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소유는 "쇼코의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쇼코의 집을 찾았다. 나는 쇼코의 집 주소가 기억나지도 않았다. 아마, 알았다고 해도 나는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쇼코에게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을까? 쇼코는 그저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일까?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유처럼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 기회가 있었다면 개입하려 들었을까?

그저 담담한 1인칭 소설이 이토록 흡입력이 있는 이유를 아시겠는가? 우리 모두는 소유이며, 소코이며, 할아버지이며, 어머니다. 소유의 시각을 통해서만 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음에도 우리는 인물들 제각각의 고뇌를 이해한다. 공감한다. 이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의 단면은 이 외에도 무수하다. 가령 나는 이전에도 글을 썼듯 소요의 어머니처럼, 아버지의 장례절차에서 울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하고 내 나체를 보여드리는건 그만두겠다. 결국 우리는 소유이자 쇼코이기에 앞으로 계속 기회가 많다.

여러분들은 아마 내 글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쇼코 자신은 "불에 타다 만 발바닥.", "등이 꺼져버린 하이웨이 위의 가로등.", "썩었으되. 그것뿐인 씨앗."을 이해했을까? 아마, 그저 배설에 지나지 않았겠지.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체와 배설물은 아름다울 수 없다. 나체가 아름다운 모델도, 어딘가는 뒤틀려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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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설보다 (한달째 읽고 있는 중 이라는 것이 함정 ;;) 더 여운이 남는 리뷰글이네요.. 오늘도 소크라테스님의 필력에 반하고 갑니다 ;D

그럴리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독후감이군요.
읽으면서 다시 한번 쇼코, 소유, 할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모두 소유이기도, 쇼코이기도 하다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저도 한때 누군가의 쇼코였을까요? 비밀 노트 혹은 아무도 읽지 못할 병 속에 담긴 편지?

그럼요. 지금도 브리님은 저의 쇼코인걸요.

먼가 멋진 댓글을 달고 싶어 브리님 포스팅까지 훔쳐보고 왔는데 역시 난해하네요ㅜㅠ

쇼코의 미소를 읽어보시면 바로 이해가 되실거에요. 대부분이 인용이거든요 ㅎㅎ

아 저도 쇼코의 미소 읽고 독후감 도전 해보렵니다. 쇼코의 미소에 관한 포스팅이 많이 보여서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안 읽어보셨으면 하나도 이해가 안 되셨을텐데... 쇼코의 미소 읽어보시고 다시 들려서 읽어주세요 ㅎㅎ

책의 내용을 정말 정말 궁금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책을 읽어야겠네요.

kmlee님의 글을 읽고 완전과 불완전, 이상, 이해, 아픔 그 어딘가에 조금씩 생각들이 머뭅니다.
일단은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kmlee님이 쓰신 것처럼, 소유는 "일상을 공유하는" 어쩌면 친밀할 수 있는 사람” 소코는 ”일상과 상관없는 아무 사람도 아니지만” 삶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 그리고 이곳에 있는 우린 그 경계 어디쯤에서 누군가에게 소유가 되기도 하고 때론 쇼코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어야겠네요. ^^

책을 읽지 않으셨으면 정말 난해한 글이었을텐데도 의미를 잘 포착하셨네요. 한번 읽어보시고 다시 이 글을 읽으시면 새로운 감상이 있을거에요. 재독할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감사합니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나면 다시 이 독후감을 읽어 보려 했어요. 자연스럽게 술술 넘어가네요.

한국 오셔서 읽으셨나보군요 ㅎㅎ

네 ㅎㅎ 사이사이 넣으신 생각들이 참 인상 깊습니다. 다시 읽어도 너무 자연스러워요. ^^
감사합니다.

  ·  7 years ago (edited)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한국에는 언제까지 계시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ㅜㅜ 그랬군요

쇼코의 미소에서 '쇼코의 미소'편은 그렇게 와닿지 않았는데, 작품의 비유를 익명의 sns로 가지고 오시니 오히려 쇼코의 미소 작품의 이면을 생각하게 되네요.

저에게 있어서 쇼코는 그 누군가가 되기도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우상이자 민낯이기 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쇼코는 누군가이며, 자신이며, "아무 사람도 아니"기도 합니다.

사실 전 쇼코의 미소를 읽고 큰 감동을 느꼈지만 어떤 포인트인지 몰랐는데, @kmlee님께서 정말 잘 표현해주신 것 같습니다. 멋진 감상글입니다 :) 옛날에 게임상에서 만난 친구, 집단상담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군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기존의 지인들에게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연락이 안되는 그들과 저는 서로에게 쓰다만 일기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풀봇 리스팀하고 지금에서야 댓글을 다네요 :) 참가상금 1SBD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을 던져주는 글이었습니다. 제목을 몇번이나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걸 생각하면 빔바님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넘겼을거에요.

좋은 글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쇼코의 미소 책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깊은 내용을 담고있는 책이었군요~잘보고 갑니다

짧은 글에서도 많은 사유를 하도록 만드는 글이 좋은 글이며, 짧은 글에서도 많은 사유를 하는 독서습관이 좋은 독서습관이라 생각합니다.

@vimva 님께서 쇼코의 미소를 주제로 kr-bookclub2를 진행하고 계시니 홀릭7 님도 시간 되시면 한번 도전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분명 읽을 가치가 있는 좋은 글입니다.

북클럽도 있군요~~빠른 시일내에 한번 읽어볼게요 도전은 가능할지 몰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