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을 거부한 사나이들 - 에베레스트의 두 사람

in kr-history •  7 years ago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인간을 허락하다

세계 최고의 봉우리가 가려진 것은 1852년의 일이다. 인도를 식민지 지배하고 있던 영국 은 인도 대륙 북부에 거대한 병풍처럼 드리워진 히말라야 산맥을 꼼꼼히 측량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늘어선 봉우리들의 높이를 하나 하나 가려 나가는 와중에 P15란 기호로 표기되었던 한 봉우리가 해발 8,848m로 세계 최고의 높이를 지닌 것으로 판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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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우리는 이미 티벳 쪽에서는 초모룽마 (대지의 어머니)로, 네팔 쪽에서는 사가르마타라고 불리우고 있었지만 영국은 그저 P15로만 부르다가 1865년, 봉우리의 이름을 결정한다. 에베레스트. 이 명칭은 전임 측량국 장관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은 딴 것이었다. 조지 에베레스트 경은 에베레스트 산을 측량한 적도 없었고 알았는지 여부도 불투명하지만 세계 최고봉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는다. 그 영광을 축하(?)해 주기엔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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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 티벳 양국 모두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고, 에베레스트 산을 저마다의 신성한 지역으로 모시고 있던 터라 그 산을 등반한다는 것은 오랫 동안 불가능했다. 하지만 영국은 끈질기게 등반을 시도했고, 먼저 나라의 문을 연 티벳 쪽에서 에베레스트 산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1921년 이래 영국 등반대는 여덟 차례에 걸쳐 에베레스트 정복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 실패 가운데에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명언을 남긴 등산가 멀로리의 비극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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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까지는 목격되었지만 거센 눈보라가 몰아친 뒤 그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정상을 밟았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십 년 뒤 그의 시신과 카메라가 발견되었지만 필름 현상에 실패하여 멀로리의 에베레스트 완등 여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 이 카메라를 소재로 하여 쓴 유메마쿠라 바쿠의 원작 소설을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만화가 '신들의 봉우리'라는 만화다. 기회 닿으시면 꼭 일독하시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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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되는 실패에 영국은 초조해졌다. 인도와 네팔이 독립한 후 프랑스며 스위스 등의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턱밑까지 치닫고 있었다. 1953년 5월 감행된 9차 등반에서 등반대장 존 헌트 대령은 하나의 지상과제를 갖고 도전에 임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전에, 영국인이 등정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1차 등반대는 영국인들만으로 구성됐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2차 도전에 나선 것이 영연방국의 일원이긴 하지만 뉴질랜드인이었던 에드먼드 힐러리, 그리고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였다. 이렇게만 말하면 헌트 대령이 얄미운 일본인같이 보일까봐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그가 힐러리와 노르가이에게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해내 주게. 하지만 명심하게 가장 중요한 건 자네들 둘이 여기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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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5월 28일 드디어 2차 도전이 시작됐다. 정상 정복조인 텐징과 에드먼드가 힘을 아끼는 동안 다른 대원들이 8425미터 지점까지 눈을 치우고 식량과 장비를 날라 주고 돌아갔다. 세계 최고봉의 이마쯤 되는 위치에서 둘은 텐트를 치고 숙영한 후 5월 29일 새벽 등정에 들어간다. 8760미터의 남봉을 지나고 최악의 고비였던 12미터의 가파른 바위 (영국 등 서방세계에서는 '힐러리 스텝'으로, 인도나 네팔에서는 '텐징의 등'으로 불리는)를 넘어서서 오전 11시 30분 에베레스트는 역사적으로 아니 고고학적으로 처음으로 인류의 발자국을 허용한다.

인류 최고봉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는 그 순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고, 하산 후에도 그에 걸맞는 영예를 누린다. 뉴질랜드에서 벌을 치던 힐러리는 귀족 작위를 받아 힐러리 경(卿)이 되었고 텐징 노르가이는 시바 신(神)의 현신으로 치부되어 경배의 대상이 됐다.

등반대장 헌트는 “둘이 한 팀으로 정상을 밟았다”고 했을 뿐, 누가 먼저 정상에 발을 디뎠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힐러리와 텐징이 그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기자들과 호사가들은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발을 디딘 이가 누구인지를 묻고 캐묻고 또 되물었다. 심지어는 사진에 텐징만 등장하고 있으니 힐러리가 정말로 정상에 발을 디딘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까지도 제기됐다. 영국을 위시한 백인들은 내심 네팔인 셰르파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밟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꺼려했고, 네팔과 인도 사람들 역시 신성시되던 산을 최초로 오른 영광을 텐징이 양보했을 리 없다고 우겼다.

하지만 1등이 누구인지를 살천스레 알아내려던 얄팍한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텐징과 힐러리는 되레 서로에게 그 영광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 장관은 처음이었다. 그토록 거칠고 경이롭고 장엄한 광경은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나는 산을 사랑했고 에베레스트를 사랑했다. 평생을 기다렸던 순간에 나의 산은 바위와 얼음 뿐인 무생물이 아니라 따뜻하고 친근하며 사랑스런 존재였다."고 텐징이 감격스레 술회한 것처럼 그들은 호승심(好勝心)보다는 산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경외가 앞섰던 산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텐징은 “힐러리가 먼저 정상을 밟았다.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밟은 것이 부끄러움이라면 그 부끄러움 평생 기꺼이 갖고 살겠다.”라며 일갈했고 힐러리는 텐징이 약간 먼저 정상을 밟았으며 심지어 자신이 오기까지 기다려 주기까지 했지만, 그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다고 텐징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불렀다. 둘은 평생 형제같은 친구로 지냈고 힐러리는 자신에게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산 등정이란 영광을 안겨준 네팔과 세르파족을 잊지 않고 그들을 돕는데 헌신했다. 생전에 100번 넘게 네팔을 찾아 히말라야기금을 만들고 세르파족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세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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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천박한 광고를 일삼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멍청한 바보들이었겠으나 그들은 진정 위대한 산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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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는 제주도 사나이 고상돈이다. 그는 197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등반 훈련 과정에서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3명의 동료들의 사진을 정상에 묻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1979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가 인류에게 문을 연 그 날, 북미 대륙 최고봉 매킨리 봉을 등정하고 하산하는 길에 추락하여 그 짧은 인생을 마친다. 즉 5월 29일은 에베레스트에 인간이 최초로 발을 디딘 날이고,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 대원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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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돈대원에게는 운명이 얽힌 날이군요
다시보고싶은 영화가 있는데....두명의 독일인 등반가가
아이거북벽에 매달려서 연인을 생각하며 얼어죽어가던 멋진 등반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네여

영화제목은 노스페이스 입니다. 말그대로 북벽이죠.

저도 꽤 감명깊게 봤던 영화였습니다.

네 북벽입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상돈씨는 정말 안타깝군요 기일과 역사적인 날이 겹치다니...

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에베레스트 정복 소식 들었던 기억 선명한데

그런데 네팔은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ㅎㅎ

음 그렇군.... 보호령 정도는 된 줄 알았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등수는 의미 없죠. 그 아름다운 경험을 얼마나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지가 중요한 듯 싶습니다.

맞습니다. 힐러리와 텐징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북극의 피어리는 쬐끔.... 아쉽고 아문젠도.... 좀 그렇지만 ㅋ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천박한 광고를 일삼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멍청한 바보들이었겠으나 그들은 진정 위대한 산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천박함에 날리는 일갈같군요. 시원함, 통쾌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제겐 아직도 분노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분노의 근원이 바로 그 천박함을 이루고픈 제 어설픈 욕망이니 전 멀어도 한참 먼 쫄보란 생각입니다. 제 이 깊은 속은 곰곰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시원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글구 두 분 정말 멋지군요. 산사람이네요. 이런 걸 알려주시는 산하님도.

네 감사합니다.... 멋진 산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얼마전 텐징이 사망했었죠
그들 모두 역사 속으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