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중독 17. 위험한 공격 - 누군가(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파멸한다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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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아동들. 그들에게 있어 '중졸'은 무슨 의미일까?


일전에 국정농단 사태를 촉발시킨 정유라의 학력이 중졸로 내려앉았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고, 너나 할 것 없이 키득대며 ‘중졸, 중졸’ 말하는 것이 나는 탐탁지 않았다. 물론 자신보다 못하다고 자만하던 사람이, 그가 무시하던 대상들보다 ‘못한’ 학력을 가지게 된 것이 조롱의 대상이 될 만은 하다. 나 역시 정유라가 말한 소위 ‘잘난 부모’의 조롱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녀를 용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파렴치한 자의 비행을 비난하며 영문도 모른 채, 함께 비난받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분노가 크더라도 언행을 삼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중졸 학력을 비롯해 정규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을 더러 보았고, 과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고단한 삶 속에서도 검정고시 등을 준비하며 보다 발전된 인생을 다짐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내가 생계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학생들을 부러워했던 20대 초반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도 안타까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력이 낮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처럼 여겨진다. 평균적으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고된 일을 맡아서 하며, 사회적 지위도 낮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으므로, 사회 전체의 과실 중 극히 일부분만을 취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서 어떤 무엇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관계, 거래에서 이득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떤 관계에서나 최우선적으로 배척된다.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은 ‘죄’로 이들은 기피대상이 되며, 기피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굴레로 핍박하기 시작한다. 사실 가난하거나 배우지 못한 죄밖에 없는 선량한 이들도, 이 때문에 덩달아 억압된다.

나만 못한 사람을 향해 비난을 퍼붓거나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쉽고, 때로 에라스무스의 말처럼 ‘전쟁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겐 유쾌한 일’이듯이 전쟁 바깥의 누군가에겐 재미있기까지 하다. ‘빈곤의 포르노’라는 말이 있듯이, 개발도상국이나 폐허의 사람들을 미끼로 기부금을 얻으려는 방송들이 제법 ‘인기’가 있는 이유 속에는 정말 안타까워서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도 있지만 그것으로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자 하는 심리도 있다.

『논어』에서 공자가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은 것보다, 가난하면서 즐기는 것이 낫다’라고 한 것이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즐거운 것들을 삼가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한 것처럼, 더 나은 위치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것은 쉬우며, 또 그만큼 무심코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한 편으로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 오히려 내게 지장을 주거나 방해가 될 확률이 높은 이들을 저버리고 모욕하는 것이 큰 잘못인가, 되묻는다면 그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살인처럼 그 행위를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모욕감은 줄지언정 그 사람에게 직접 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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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모두는 각자의 방식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살아간다. 비록 그 삶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하지만 일전에 썼던 <12. 장애인이 무슨 자랑이에요?>와 같은 글에서 지적했듯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공격이 된다. 내가 신이 아니라면, 나보다 나은 인간이 반드시 있다. 또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도움을 받는다. 하다못해 오늘 내가 대변을 보는 일도, 변기를 설치하는 설비공과, 정화조를 비우는 인력들이 없다면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깔끔하게 뒷처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외에도 같은 방식으로 전혀 내게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도 실은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식으로 모두가 연결되어있다.

그러니까 애당초 ‘나는 저런 류의 인간에게 도움을 받았을 리 없어!’라는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면, 최소한 어떤 인간이건(죄악뿐인 인간, 극악의 범죄자가 아니라면) 간에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딱히 천대할, 마땅히 미워해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사람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더 가벼운 이유로도 사람들은 억압받을 수 있다. 예컨대 못 배워 가난한 사람이 멸시 돼도 좋다면, 같은 이유로 장애인을 멸시해도 좋을 것이고, 상대적인 약자들도 멸시받아도 좋을 것이다. 이런 혐오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 결국 세상은 나 이외의 것은 모두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연속이며, 나 자신조차 누군가에겐 멸시되어도 좋을 상황이 벌어진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본인은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고 있는 지옥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지옥의 광기는 우리가 숱한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했으므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막연히 미워하고 멸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물론 가끔 비천하면서도 악의에 가득 찬 인간도 있다. 즉, ‘약자이면서 악한’ 부류가 그것이다. 이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테지만 그러한 자들이라면 마땅히 멸시해도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도 ‘마땅히 미워해야할 이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설령 멸시한다하더라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러운 방법으로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유라의 입학 취소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은 부정한 것들을 드러낸 좋은 예다. 사실 학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처럼, 이를테면 세대갈등으로 빚어지는 각종 신조어들, ‘틀딱’이라거나 ‘급식충’ 같은 말들도 내가 보기엔 상당히 위험하다. 말 자체 보다, 그 말을 만들어낸 마음들이 위험한 것이다.

이런 부정한 마음들은 걷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인식의 개선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이 변화하더라도, 이미 언어에 뿌리 깊게 녹아있거나, 전통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등, 그 근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성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되묻는 수밖에 없다.

때로 이것은 피곤할 정도의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을 소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선 안 된다’는 유명한 법언처럼.



*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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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사람들이 가진 엘리트의식도 참 가관인데... 학력으로 편가르기하고 그랬으니까요

조금씩은 더 나아지겠죠. 요즘은 좋은 대학을 나와도 별거 없다는게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만, 또 한편으론 수백년을 이어오던 학력 제일주의 이 사회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당장 저희 세대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비교적 좋은 직장을 다녀도 굳이 내 자식 죽어라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확실히 대학이 곧 직장 혹은 성공으로 이어지던 공식이 무참히 깨지기 시작하면서(비록 부정적이지만) 사람들이 학력에 대한 신뢰를 조금은 잃은 것도 같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대학 진학이 곧 성공은 아니다, 라는 인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면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날텐데, 국가나 사회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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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님이 쓰신 자존감 과잉의 시대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다른 사람을 낮춰 자신을 높이는 것만큼 헛된 행위는 없는데 말이죠.. 생각보다 그 사실을 잊거나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한쪽에서는 자존감 상실로 고통받고, 다른 한쪽에선 자존감 과잉이 문제가 되고, 참 아이러니한 요즘입니다 :(

둘을 딱 섞어서 반반으로 나눠놓음 좋겠네요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수록 더 과장되게 표출한다는 점에서 둘은 하나라고 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개인은 현명하고 사려깊을 순 있으나 군중은 그러기 힘든것 같아요. 다들 정유라 기사에 비꼬고 낄낄대는 글을 달면서도 그중 전부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거라 믿고 싶습니다.

저 역시도 약자에 대해서 저도 모르게 낄낄 거렸다가 혼자 뜨끔 하며 이런건 안되지! 했던적이 많거든요. ^-^

이제막 시작한 뉴비가 팔로우와 보팅을 드리고 갑니다!
앞으로 멋진글과 활발한 교류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되세요!

확실히 대중의 물결은 개인의 파도보다 큽니다만, 그래도 정적대중 속에도 동적대중이 있듯,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어 대중의 광기가 진정된다고 봅니다.

과연 개인이 모든 부분에 절대적인 윤리를 적용시킬 수는 없을 것이지만, 자각하는 누군가 계속 설파해준다면 어쩌다 그 부분에 대해 무감각해지더라도 우리는 다시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새로 시작하신다니 멋진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정유라의 학력이 중졸로 되었다는 기사에 많은 댓글들이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했죠. 그런데 사실.. 이후에 정유라 스스로도 얘기했듯이 학력은 당사자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중졸이든 고졸이든 자기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죠.
전 오히려 좋아라하며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이 안타까웠어요. 학력이 뭐길래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며, 누군가의 학력이 낮아지는 걸 보는걸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학력중심사회이며 학력으로 누군가를 무시해도되는 우리 사회가 무서워졌습니다. 정유라 사태에서는 학력이 이슈였지만, 그 이슈가 재력/외모/집안 등으로 바뀌어도 상황은 마찬가지겠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

맞습니다 사실 정유라 본인이 밝히기도 했지만 학력의 높고 낮음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정유라에게 큰 의미가 없겠죠. (돈만 주면 언제든 박사가 되는 세상이니...)

이전까지는 정치권, 기득권의 프레임 놀음에 국민들이 우롱당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어도, 시대가 발전한 만큼 이제는 스스로 자성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꾸준히 제기하고 생각하면 모두가 서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리라 믿습니다 :)

자존감 과잉의 시대... 타자를 낮추어 자신을 높이려는 헛된 욕망 때문이겠죠. 글에 깊이 공감하여 보팅 & 리스팀합니다~

적절하게 짚어주셨네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주의 시작!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시작해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방문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짱짱맨 오치님! ^^

이 글은 또 이제야 봤습니다~ 스팀잇에서 작가님 글을 자주 볼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ㅋ 가즈앗!!!

더 자주 눈에 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즈았!!!

노력안하셔도 눈에 띌 것 같습니다 ㅋㅋ 가즈앗!!! ^^

저도 정유라의 학력을 낄낄대고 조롱하고 싶지만.. 그것이 제 안에 존재하는 천박함이겠다 싶어 참으려고 합니다. 더 고상한 비판도 있겠지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로 함께 파멸할지도 모를 이들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 분명 우리는 마땅히 비난해야할 일에 더 좋은 방법으로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행한 것이 양면의 칼임을 잊지 말아야겠네요. 남을 낮추면 나도 낮아진다는 것을. 나는 을이자 갑이며 갑이자 을임을. 늘 주의해야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그럴만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타인을 비난할 때 늘 경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글 입니다. 남을 학력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곧 나 역시 그렇게 판단되어도 좋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말과 행동들이 내게 쏟아져도 괜찮은가, 늘 반성해야만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