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골목과 최진실

in kr •  6 years ago 

10년전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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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 골목과 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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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켄 로치의 영화 "자유로운 세계"를 보러, 더욱 간만에 안국동 뒷길을 거닐다보니 이 길이 이렇게 이뻤었나 싶더라. 안국동 계동 이쪽은 조연출할 때 옛날 시대극 재연한다고 뻔질나게 찾아들었던 곳이야. 지금은 기와집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수백개의 기와집들이 처마에 처마를 어깨걸듯 하며 이은 곳들이 많았었거든.

제발 집 좀 빌려 주세요 하며 이리 오너라 ~~ 가 아닌 실례합니다~~를 부르짖으며 발바닥과 마음이 타들어갈 때는 이 길이 이리 오밀조밀 소담하게 예쁜 걸 몰랐어. 윤보선씨 고가만 해도, 그때 표지판을 안보고 우와 이 집 대박이다 빌려 달라고 하자 문을 두드리기도 했으니까. 허기사 그때 그 다급한 마음으로야 천국의 오솔길과 우중충한 청계천 공장골목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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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뻔질나게 돌아다니던 시절에서 불과 몇 년이 더해지지 않았지만 벌써 눈을 비비며 놀랄만큼 변해 버린 곳들이 많아. 마천동에서 30년 동안 막국수 팔던 집이 있었는데, 어느 더운 여름날 잠실에서 촬영하다가 그 막국수 맛있다고 침이 마르게 홍보해서 기껏 30분 차 타고 갔더니만 동네 세 바퀴를 돌아도 그곳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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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주인 할머니의 아들이 가게 처분하고 빌딩을 올렸더구만.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낭패감에 젖었던지...... 요즘 시대는 인걸은 간데없을 뿐더러 산천도 의구하기 쉽지 않은 시대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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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어간에 있는 막걸리집 알아? 벽에는 온갖 낙서 그득이고 앉으면 막걸리 한 주전자에 고갈비 하나 주고 마는...... 항상 바글거렸고 비가 오면 환호를 지르며 비오는 날엔 동동주!를 부르짖으며 술에 젖고 비에 젖는 곳이었는데..... 꽤 뻔질나게 다녔는데 어언 8년째 들르지 못하고 있네. 이젠 그 골목길을 찾아가기가 어려울 거 같아. 그리고 앞으로는 아예 불가능해질지도 모르지. 그 일대가 송두리째 개발된다고 하니까 말이야.

그나마 '정돈'되어 있기에 '닥치고 재개발~~'의 외침의 대상은 되지 않을 듯한 안국동 골목길을 거닐면서 내가 쏘다녔던 골목과 거기서 삶을 엮어 가던 수많은 이들이 시네마천국의 키스신 모음처럼 흘러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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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아직 식지 않은 가을의 햇살을 있는대로 받으면서 한참 동안 서 있었어. 그리고 그 거리들에서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또는 나와 일면식이 없더라도 그 거리에 서면 홀연히, 그러나 당연히 떠올라오는 이들을 그려 보면서는 콧날이 극미하게나마 데워지는 느낌에 스스로 신기해하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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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최진실이라는 배우의 뜻하지 않은 사망을 접하면서 나는 대학 동기들에게 문자를 넣었어. "우리들과 함께 나이 먹어온 최진실이 죽었네. 다들 잘 살자." 아마 동기들 황당해했을 거야. 이 녀석이 이런 문자 넣을 정도의 감성지수를 가진 넘이 아닌데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답장 하나 안오더군. "진실이가 죽었는데 뭐 우짜라고?" 그래 뭐 우짤 것이야 있
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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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와 맞먹을 정도로 까마득한 나의 하이틴 시절에는 최진실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었어. '깜보'의 김혜수와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이상아, '고교생 일기'의 채시라와 하희라가 애들 책 속에 즐겨 끼워져 있던 하이틴 스타 리스트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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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웬만큼 스타덤에 오른 다음에야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광고 카피를 히트시키며 출현했었어. 그나마 그 깜찍한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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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나 채시라 등등보다 더디게 낯이 익었던 최진실이라는 배우를 나는 왜 서슴지 않고 "함께 나이 먹어 온 배우"라고 지칭할 수 있었던 걸까. 방송사 출입 14년에 단 한 번도 옷깃도 스치지 못한 처지고, 교양 PD가 섭외하기엔 너무나 급이 높은 스타로 언감생심 공적으로 만날 일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건 그녀 때문에 주위에서 발생했던 풍경들이 너무나 선명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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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최진실이 슬퍼하는 홍학표 옆에서 창백하게 죽어갈 때 부대 내무반에서 그를 지켜보던 시커먼 병장과 상병들은 어린애같이 울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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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병장이 멀뚱멀뚱 보고 있는 나에게 한 얘기가 기억나. "쟤가 수제비만 먹어서 수제비가 물렸다는 애지? 근데 저렇게 불쌍하게 죽이냐." 수제비만 먹고 큰 건 진짜 최진실이었고, 불쌍하게 죽어가는 건 극중의 최진실이었지만 병장은 그렇게 두 최진실을 하나로 묶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후 20년간 그런 착각은 내 눈에 종종 목격되었어. "장밋빛 인생"에서는 더더욱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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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2.jpg![최진실1.jpg]

일찌감치 시집가서 잘 살거나 대중의 시선과 격리된 신비로운 여배우들로 남은 그녀의 동료들과는 달리 별의 별 사단이 많았던 그녀의 20년은 그대로 출연작 속의 그녀와 결부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그녀는 정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고, 그 험난함 속에서 드라마처럼 야무지게 자신의 영역을 쌓아가다가 그만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뜻하지 않은 총탄을 맞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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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는 배우로서 다양한 면모를 과시한 편은 아니었어. 좀 이미지 변신을 해 보려 시도한 작품 치고 기억에 남는 게 없을 정도니까. 그녀는 '연기 변신'을 통해 성공한 배우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다는 배우였는지도 몰라.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의 깜찍함, 그리고 깜찍함과 겹쳐지는 슬픔과 아픔 모두는 배우 최진실의 것이었고 실제 최진실의 것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그녀의 20년은 정말로 우리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굴곡진 것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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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에서 최진실의 대사가 어렴풋이 기억나. 그 말을 들으며 옆에 있던 강병장이 대놓고 꺼이꺼이거렸었거든.

"내가 죽어도 세상은 그대로겠지. 아무 변함이 없겠지."

아마 화장실 문간에 압박붕대를 걸면서 최진실은 저 말을 뇌까렸을지도 모르겠다. 수제비가 평생의 한이 되도록 수제비만 먹어야 했던 가난한 진실이에게나, 있을 거 다 있고 아버지 성을 떼고 제 성을 선사할만큼 귀엽고 살가운 아이들까지 둔 나이 마흔의 최진실에게나 세상은 그렇게 무섭고 혹독했을 테니까. 그리고 세상은 점점 누구에게나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니까.

온 신문에 도배되고 거의 모든 스타가 상복을 입고 거의 모든 국민이 그 죽음을 입에 담은 여인도 세상이 그리 두려웠는데, 몇 년씩이나 언론과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 아니 모르쇠의 시선 속에서 복직 투쟁을 하다가 외롭게 죽어간 여성 노동자는 그 마지막 순간 얼마나 세상이 두려웠을까. 그리고 한 스타의 죽음을 빌미로 고인의 이름까지 들먹여 가며 자신들의 아픈 곳을 찌르는 창날에 염산을 뿌리려 안달이 난 이들로 인해 세상은 얼마나 더 무서워질까.

진실이는 갔어. 물론 나보다 연장자이고 고인임에 존칭을 부쳐야 마땅하나 아직은 나는 진실이라는 이름이 입에 익고 귀에 다네.. 그리고 그녀와 내가 함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던 20년 동안, 그녀가 남긴 모든 영상과 다사다난은 나의 추억 속에 갈무리되겠지. 잊혀져 가다가도 문득 살아난 어여쁜 안국동 골목길처럼. 그리고 그 길이 떠올려 준 수많은 추억의 일부처럼.

그녀의 이름이 말도 안되는 법의 이름으로 남아 세상의 무서움과 비겁함을 대표하지 않게 되기를 바래. 그래서 지금 나의 처연함에 그 갈색 빛을 더하지 않기를 바래. 고인의 명복을 빌어. 앞으로 그녀가 보여 줄 모습이 많았을 텐데.......

.최진실 10주기라고 해서 오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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