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금동관음보살좌상에 관한 경과보고는 서산부석사금동관세음보살좌상 제자리봉안위원회 이상근 위원장의 보고서입니다.
- 1330년 2월
“남섬부주 고려국 서주 부석사 당주 관세음보살을 조성하는 결연문
대저 듣건대 여러 불보살님이 큰 서원을 발원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함이라. 비록 너와 내가 없이 평등심으로 그들을 보고자 하나 부처님께서도 인연이 없는 중생은 교화하기 힘들다 말하시니 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에 의지하여 제자 등이 함께 대원을 발해 관세음보살 한 분을 조성하고 부석사에 봉안하여 길이 정성껏 봉양케 함이라. 이로써 현세의 재앙을 끄고 복을 이룰 것이며 후세에는 함께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비노라” 라는 탄생 이력을 밝혔습니다.
(보권도인 계진 함께 발원하는(同願) 심혜, 혜청, 법청, 도청, 환청, 달청, 소화이, 담회, 현일, 금동,유석, 전보, 김성, 국응달, 난보, 만대, 반이삼, 도자, 만대, 국사, 국악삼, 석이, 인철, 서환, 방동, 내화팔, 수단, 국한, 악삼, 시수, 김용)
1378년 9월, 천수만을 침입한 왜구는 부석사를 거쳐 풍전역, 서산관아까지 침탈당했고 이때 관세음보살좌상도 약탈당했습니다.
1526년 10월, 종관은 대마도에 관음사 창건하고 주존불로 봉안합니다.
1951년 5월, 관음사 주지 안도 료순에 의해 ‘복장물’이 발견되어 621년만에 비밀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1978년 10월, 대마의 미술사가 발간되어 ‘서산 부석사 불상이 대마도에 온 이유로 왜구에 의한 일방적 청래’라고 밝혔습니다.
2004년 11월, 서산 부남회가 대마도 관음사에 방문하여 교류협력 증진을 이야기했습니다.
2012년 10월, 뜻밖의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3년 2월, 대전법원은 부석사가 신청한 불상이전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3월 부석사불상봉안위가 출범했습니다. 봉안위는 6차례 대마도 방문 조사, 12차례의 세미나 그리고 3번의 재판 준비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부석사의 원시 소유권과 역사성은 인정되고 불상의 점유 시효는 간논지에 인정되었습니다. 봉안위는 이를 역사는 지키고 시간은 빼앗긴 판결이라고 평가합니다.
- 2025년 1월 24일. 양국의 불교계는 2004년 이후 못다 이룬 교류협력 증진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