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도 무엇이 선생을 저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지만 나는 '나'에 비해 조금 더 이르게 답에 다가갈 수 있었다. 나의 통찰이 특별한 게 아니라 '나'에게는 처음이지만 현대인에게는 염세적인 지식인이 이제 그렇게 특별한 인물상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정도 추정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이점이 있어도 선명한 진상을 알고 싶은 마음은 우리 모두 같기 때문에, '나'의 갈구하는 마음에 공감하고 진상에 다가가는 게 더딘 것에서 오는 답답함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시선을 따라가던 독자들에게 선생의 진실에 대해 모두 알게 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나'의 감상에 대해서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다. 감상을 이미 '나'와 동화된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몫으로 남은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사람의 마음에 생긴 병을 스스로 고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미 병든 마음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기 때문이다. 마음 뿐 아니라 상황조차도 선생을 그렇게 몰고간다. 선생에게 자신이 자신을,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 건 필연이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에는 탈출구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 지점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어느 하나 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선생이 어느 지점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콕 집어낼 수도 없다. K가 조금 더 살아있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파국을 맞이할 것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선생은 자책하게 될 것이고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긴 세월을 보내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민 속에서 썩어가는 건 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선생은 그렇게 고민하던 문제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마침내 찾아서 모두 털어놓았다. 그럴 이유는 몇 가지 제시할 수 있지만 나는 선생이 모든 걸 털어놓은 이유보다는 그 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우선 선생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걸 모두 털어놓았다. 그것도 하루만에 마친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서 조금씩 써가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 과정은 옛 감정을 재생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떠올리게 한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반복해서 새로운 게 나올 구석이 없다고 느껴질 때조차도 새로운 생각은 떠오른다. 단순히 기억으로 갖고 있는 것과 타인에게 나누기 위해 언어로 옮겨놓은 결과물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나누는 건 중요하다. 상담을 할 때도 상담사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월등한 통찰력으로 상황에 맞는 정확한 조언을 주는 게 아니라 내담자의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일단 내어놓으면 속으로 품고 있을 때와는 다른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결말을 열어두었으니, 나는 '나'에게 모든 걸 털어놓은 선생이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와 그 과거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뿐 아니라 부인 시즈와도 그것을 나누는 것. 그게 그의 진정한 탈출구다. 그의 망설임. 도저히 닥치기 전에는 남에게 전할 수 없던 마음.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라면 출구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게 사랑 앞에서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악인'이 된 자신에게, 그 스스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고민거리를 떠안고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원망하는 문구를 남기지 않은 K에 대한 진정한 속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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