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에 사로잡혀 한 생을 살다가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좌도 우도 앞도 뒤도 봬도 않고, 그저 마음을 사로잡은 그것에 닿으려고 하루 한날을 쏟아내고, 봄여름가을겨울을 지새우다 어느 날 돌아보니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러 있고. 원하던 그것, 소망하던 그것이 손에 떡하니 들려 있으면, 아니 여전히 닿지 못해 마음이 안달이고 애가 타면. 그건 얼마나 충만하고 절절한 인생인가.
하루라도 빨리 졸업 못해 안달인 인생들 사이에서, 놓을 수 없는 그것, 놓아지지 않는 그것, 온통 마음과 정신을 지배해버린 그것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인생은 얼마나 저릿하고 애틋한가. 그것을, 그것을 너는 가졌는가.
애타는 그것을, 그것 때문에 죽겠는 그것을. 도망치지도, 놓아버리지도, 잊지도 못하는 그것을. 그것은 사랑인가, 사람인가, 꿈인가, 설움인가. 그게 무엇이든, 그것을 가진 인생은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졸업 못 해 안달인 허무들 사이에서 無를 채우고 채우는,
"예전에 정정렬이라는 명창이 계셨다. 춘향가로 유명한 양반이었는디. 그 선생님이 소리를 했다 하믄 듣는 사람들이 다 눈물을 쏟고 난리가 나부렀제. 근데 그분이 떡목이여. 선천적으로 탁하고 고음이 전혀 안 올라가는 그런 목이었지."
"근디 어떻게 명창이여? 소리가 갈라지고 뚝뚝 끊겼을 것인디. 엄니도 직접 들어봤어?"
"들어봤제."
"정정렬 선생님은 타고난 떡목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거칠어도 힘이 있는 소리로 바꿔놔부렀지. 그러니 듣는 사람 귀에는 빈 곳이 하나도 없이 다 채워져서 들릴 수밖에. 그래서 사람들은 선생님이 없는 소리, 無를 부른다고 했었다."
"정년이 너는 빈 소리를 무엇으로 채울라냐?"
"엄니라믄 뭣으로 채워서 불렀겄소?"
"나라믄.. 눈물로 채울꺼나. 한숨으로 채울꺼나."
뭣으로 채웠을꼬, 뭣을 쏟아부었나. 돌고 돌아보니, 텅 비어버린 가슴과 휑하니 비어버린 마음만 남았으니. 내 눈물과 내 한숨은 어데에 담겼나, 어데로 날아가 버렸나.
"별천지에서 왔다고 했어라. 처음 국극 무대 보고 온 날. 가슴이 뻘떡뻘떡대가꼬 잠도 못 이루고 있응께. 저희 언니가 그랬어라. '이자뿌러. 그 사람들은 별천지에서 온 사람들이여.' 먹고 살기만 해도 쎄빠지게 힘든 세상서, 별천지나 쫓겄다고 한께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저한테는 그 별천지가 이 세상 버티게 해 주는 꿈잉께요."
"꿈?"
"저뿐만이 아니어라. 저 대문 밖에서 우리 공연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가시나들도, 다른 국극단 아그들도, 국극만 있다면 뭔 일이든 꿀떡꿀떡 참을 수 있응께요. 같이 무대 올릴 사람들도 있고, 그 무대 봐줄 사람들도 있는디 불안할게 뭐대요. 사람들만 남아있다믄 전부 다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께요."
별천지로 날아갔구나. 별들에게 쏟아졌구나. 그 별은 어느 때나 떠오를까? 사람들만 남았으면 전부 다 있는 거라는데, 나는 전부를 잃었는가. 꿀떡꿀떡 참아댄 그것은, 어느 세상 별에 뿌려졌는고. 어느 별의 가슴에 가 닿았는고.
오 자히르,
오 자히르,
나를 사로잡은 그것, 놓을 수 없는 그것, 닿을 수 없는 그것을. 붙들려고 만지려고, 허공에다 소리를 지르고 손짓발짓을 해보다가, 해보다가. 글을 쓰고 글을 적고, 글을 뱉고 글을 먹고, 날을 새고 날을 세고,
간절함이 언젠가는 저 별에 닿았다가 되돌아 올겁니다. 황금색 도구를 줄 거에요.
꿈을 버리지 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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