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3(목)역사단편69 평양패수고(3)

in hive-143843 •  4 months ago 

평양패수고에서 지적하는 기존 연구자들의 오류는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번째 착오는
'평양'과 '패수'를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두문을 몰라 한자를 그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浿水를 떠나서 平壤이 없고, 平壤을 떠나서 浿水가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은 두 번째 착오에 대해 살펴본다.

第二의 錯誤(제2의 착오)

第二의 錯誤는 平壤과 浿水의 古典에 關한 史冊의 本文을 善解(선해)하지 못함이다. 이를테면 『魏略(위략)』에 「朝鮮 … 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潘汗爲界朝鮮遂弱及漢以盧綰爲燕王朝鮮與燕界於溴(『海東繹史』에 「浿」로 改正)水」라 하고, 『史記』 朝鮮列傳에 「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障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爲其遠難守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 … 滿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都王險」이라 하고, 『史記』 匈奴傳에 「燕有賢將秦開爲質於胡胡人甚信歸而襲破東胡東胡郤千餘里 … 燕亦築長城自遼陽至襄平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이라 한 바, 右의 三書는 다 同一한 事實의 記錄이라.

善解(선해): 잘 이해하다

먼저 위략편을 읽어본다.
朝鮮 … 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조선..후자손초교학연내견장진개공기)
조선이...후에 자손들이 점차 교만해지고 사나워지자 연(燕)이 장수 진개를 보내 공격했다.

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潘汗爲界(서방취지이천여리도만번한위계)
서쪽지역을 공격하여 2천 여리의 땅을 취하고 만반한을 경계로 삼았다.

朝鮮遂弱及漢以盧綰爲燕王朝鮮與燕界於溴水
(조선수약급한이노관위연왕저선여연계어취수)
조선이 마침내 쇠약해져서 한(漢)이 노관을 연왕(燕王)으로 삼았을 때,
조선과 연은 '취(해동역사에 패로 개정)수'를 경계로 삼았다.

강이름이 나왔다.
'溴'水로 되어 있는데 이건 인쇄잘못인듯 하다.
실제로 검색해보면, 溴(추,취;[xiù])는 화학원소인 '브롬'이라고 되어있다.
옛날 글자로도 사용되지 않았다.
착각을 일을키기 쉬운 글자로

湨(격)이 있다. (') 차이다. 중국발음[jú]

검색해보면
강이름, [Ju River]。
在河南西北部, 源出济源市,東南流入黄河
허난성 북서쪽에 있다. 지위안시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황하로 흘러든다.
'济'라고 되어 있는데 '濟(제나라)'다. 간자체라 낮설다.

'湨(jué)水'는 '고대강줄기'라고 나온다.

又東五百里, 曰夷山, 無草木, 多沙石, 湨水出焉. 郭璞云, 一作浿, 而南流注于列塗.
동쪽으로 500리를 더 가면 이산(夷山)이라고 하는데 초목이 없으며 모래와 돌이 많다.
격수(湨水)가 여기에서 나오는데,
곽박이 말하기를 “일설에는 격(湨)을 패(浿)라고 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남쪽으로 흘러 열도(列塗)로 들어간다.
『山海經』 山經柬釋 卷一 山海經第一 南山經
<출처:한국사데이터베이스>

郭璞(곽박: 276~324, 동진시대)

일설에는 격(湨)을 패(浿)라고 하기도 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연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황하' 어디쯤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 충격적이다.

당시만해도, 지나인들이 동북공정을 해야할 필요가 없었으니
상대적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듯 하다.

계속 읽어보자.

先儒들이 或 『魏略』을 據(거)하여 「匈奴傳(흉노전)」의 「郤千餘里(극천여리)」를 「郤二千餘里(극이천여리)」의 誤(오)라 하고, 이에 依하여 浿水를 大同江이라 하여 滿潘汗(만번한)을 大同江 以南에 求하며, 或 「匈奴傳」을 據하여 『魏略』의 「取地二千餘里(취지이천여리)」를 「取地千餘里(취지천여리)」의 誤(오)라 하고, 이에 依하여 浿水를 鴨綠江(압록강)이라 하고 滿潘汗(만번한)을 鴨綠江 以南에 求하였다.
그러나 愚見(우견)으로 말하건대, 『魏略』의 「二千餘里」나 「匈奴傳(흉노전)」의 「千餘里」가 그 何地(하지)부터 起算(기산)함인지를 묻지 않고 終點의 滿潘汗(종점의 만번한)이 何地(하지)임을 求함은 非常한 錯誤(착오)라 하노라.
<출처:평양패수고>

해석하면,
선배유학자들이 <위략>에 근거하여
<흉노전>에 나오는 '천여리'를 '2천여리'의 잘못이라 하고,
그것을 토대로 '패수'를 '대동강'이라 하여, 만번한을 대동강남쪽에서 찾거나
혹은, <흉노전>에 근거하여,
<위략>에 나오는 '2천여리를 취했다'가 '천여리를 취했다'의 잘못이라고 하고,
그 판단에 근거해서 '패수는 압록강'이라 하고
'만번한은 압록강 남쪽'에서 찾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소견으로 말하건대,
위략의 2천여리나, 흉노전의 천여리가

어느땅부터 시작한것인지를 묻지 않고,
종점인 만번한이 어디인가를 구하는 것은 대단한 착오이다.

「匈奴傳」으로 보면 秦開(진개)가 彼 所謂 「東胡(동호)」 朝鮮을 郤(각)하고 遼陽(요양)으로부터 襄平(양평)까지 長城을 築(축)하고 上谷(今 大同府)·漁陽(今 北京 北 六十餘里의 廢縣)·右北平(今 永平府)·遼西(今 盧龍縣)·遼東(今 遼陽)의 五郡을 置(치)하였은즉, <출처:평양패수고>

흉노전으로 보면, 진개가 소위 '동호'인 조선을 물리치고 요양으로 부터 '襄平(양평)'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현재의 대동부),
어양(현 북경북쪽 60여리의 폐지한 현),
우북평(현 영평부),
요서(현 노령현), 요동( 현 요양)의 5개 군을 설치하였다니

大同府(대동부)부터 遼陽까지의 延長 二千餘里의 地方이 곧 朝鮮의 所有를 秦開(진개)가 掠取(약취)함이니, 二千餘里는 곧 上谷부터 起算하여 遼陽까지 至한 者요 滿潘汗(만번한)은 『漢書』 地理志의 遼東郡의 汶潘汗(문번한)의 兩縣(양현)이니, 汶番汗의 沿革(연혁)이 비록 傳치 않았으나 魂略(위략)에는 「滿潘汗(만번한)」이라 하고, 「匈奴傳」에는 「至襄平(지양평)」이라한 바, <출처:평양패수고>

'대동부'에서요양까지의 2천여리의 지역에 걸친 조선의 땅을 진개가 빼앗아 가진 것이니,
2천여리는 곧 상곡부터 기산하여 요양까지의 거리이고,
'滿潘汗(만번한)'은 [한서]지리지에 나오는 요동군의 '汶潘汗(문번한)'과 같은 것이니
문번한의 연혁이 전하지 않았으나,
위략에는 「滿潘汗(만번한)」이라하고,
흉노전에는 양평에 닿는다라고 했다.

襄平(양평)은 漢 遼東那의 郡治(今 遼陽:요양)인즉 汶潘汗(滿潘汗)은 곧 遼陽 附近의 땅이며, 燕은 朝鮮과 滿潘汗으로 定界하였다가 漢은 退하여 浿水를 守하였는즉, 浿水는 곧 遼陽 以西의 물이며 同 地理志에 沛水(패수)가 潘汗縣(반한현)의 塞外(새외)에서 出한다한 바, 今 海城 蓒芋濼(해성 한우락)의 古名이 浿水이니 南藥泉(남약천)의 說을 從하여 沛水를 곧 浿水로 잡는 同時에 滿潘汗(만번한)을 곧 海城 東北 遼陽 西南으로 잡음이 可하며, 險瀆縣(험독현) 註에 險瀆을 朝鮮王滿都卽王險城이라 하였으니 王險城(平壤)인 險瀆(험독)은 今 海城(해성)됨이 明白하거늘, 이제 二千餘里의 起點을 찾지 않고 終點을 찾으며 滿潘汗의 沿革을 묻지 않고 그 位置를 臆定(억정)하며, 浿水와 平壤의 關係的 地方을 버리고 浿水와 平壤·王險城의 沿革을 臆說(억설)하려 하니, 어찌 實際(실제)에 合하리오.<출처:평양패수고>

掠取(약취): 약탈해서 가짐
塞外(새외): 요새밖, 만리장성 바깥
朝鮮王滿都卽王險城(조선왕만도즉왕검성): 조선왕 만의 도읍인 왕검성이다.
臆定(억정): 억지로 정함
臆說(억설): 억지로 설명함
實際(실제): 현실적임

대동해성.JPG

襄平(양평)은 한나라 요동군의 군치(현 요양)인즉 문번한(만번한)은 곧 요양 부근의 땅이며,
연은 조선과 만번한으로 경계를 삼았다가
한나라가 후퇴해서 패수를 지켰으니,
패수는 곧 요양의 서쪽에 있는 강이며,
같은 지리지에
'沛水(패수)'가 潘汗縣(반한현)의 塞外(새외)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현 해성헌우락의 옛 이름이 '浿水(패수)'이니
南藥泉(남약천)의 주장을 따라, '沛水(패수)'를 곧 '浿水(패수)'로 잡고
'만번한'은 '해성동북 요양서남'으로 잡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험독현의 주석에서 '험독'을
"조선왕 위만의 도읍인 왕검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왕검성(평양)인 險瀆(험독)은 현재의 海城(해성)이 명백하거늘

이제, 2천여리의 출발점을 찾지않고 종점을 찾으며
滿潘汗(만번한)의 연혁을 묻지않고 그 위치를 억지로 비정하며,
패수와 평양-왕검성의 연혁을 억지로 설명하려 하니,
어찌 현실에 맞겠는가.<이상 평양패수고 착오2>

신채호선생은 중국 역사서의 기록을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적용했는데
왕검성의 위치를 '해성'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위의 지도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림에서 좌측이 '대동부'
우측에 표시된 부분이 '해성, 요양' 지역이다.

이전에 역사서에 나온 거리를 구글지도에서 비교했을때
기록의 최대 1/2 정도가 실제 거리라는 것을 확인했다.
10리가 4km라는 것을 생각하면
1천리와 2천리는 모두
500리와 1,000리가 되고
실제 거리로는 200km, 400km정도이다.

당시에 거리를 측정할때는,
직선이 아니라 사람이 이동한 거리를 기록했고
필요에 따라 부풀렸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오늘 포스팅에 등장한 대륙의 산과 강은
검색을 통해 확인 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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