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진 살갗, 감정] 녹색괴물, 질투

in kr-gazua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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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쾌락의 정원에 프렌치 라벤더의 향이 퍼져있어. 그 속에서 남겨놓은 맥주인 호가든 포비든 프롯을 마셨어. 프롯의 잔향이 라벤더의 달콤한 사이로 흘러. 당분간 마시지 않았던 93포랑산 청병을 마셨어. 마치 홍차의 맛이 나는 듯한 보이차야.

기독교 역사에서 정원은 원죄를 낳는 곳이었어. 젊은 시절 쾌락에 탐닉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에게 의탁했어. 그러면서 더 이상 젊은 시절의 죄를 짓지 않겠다고 했지. 그런데 그 관능적인 쾌락을 탐닉하지 않겠다던 그의 의지는 공교롭게도 정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어. 그 정원이야 말로 원죄를 낳는 원인이라고 했던 거야. 우리가 갖고 있는 정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들, 느낌들, 그것들은 이런 오해로부터 상당부분 유래되었어. 그 오해는 정원이 갖고 있는 생명력에 대한 남자들의 질투와 두려움도 있었겠지. 자신들의 힘을 잃어버릴까봐 눈을 가린 거야.

질투를 경계하셔야 합니다! 자고로 질투란 놈은 녹색 눈빛을 가진 괴물이죠. 사람의 마음을 먹이로 하여 진탕 즐기는 놈이죠. - 세익스피어, 오셀로

이런 오해들이 기승을 부렸던 건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였어. 여성의 정원이 남자의 대칭물로 이해하거나 결핍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식 이해는 가관이었어. 그러다가 정원에 있는, 그 자체로 유의미한 깊은 뿌리가 있는 관능의 분수가 발견되면서 달라졌지. 여성은 남자의 대칭물이거나 남자의 결핍이 아니라 그 자체란 게 인식이 생겨난 거야. 물론 아직도 그렇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는 불쌍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긴 하지만.

성경에 니고데모가 묻지.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에 갑니까. 젊은 예수가 대답해. 다시 태어냐야 한다고.

사람은 살아가면서 몇번 다시 태어나야 해. 그리고 그 다시 태어나는 건 지배하기 위해 흙과 백을 나누는 논리 중심의 머리 뇌에서, 같이 살기 위해 느낌과 감각 중심의 골반-복부 뇌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기도 해. 그 자체로 이미 휼륭한 것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 다는 거야. 바흐의 푸가가 골반을 지나 복부에서 머리로 울려펴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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