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독서중] 가벼운 나날(제임스 설터)

in postingcuration •  1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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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를 떠올리면 된다.

장소는 맨해튼 근처 숲과 강을 배경으로 한 빅토리아풍의 주택이며 때는 1950년대 초반.
매력적인 아내와 건축 설계사로 일하는 젊은 남편, 그리고 귀여운 두 딸이 동물과 뛰어논다.
아내의 이름은 네드라, 남편은 비리다.

비리는 맨해튼으로 출퇴근한다.
아내는 집안을 가꾸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책을 쓰기도 하며 다정한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둘은 온전한 가정을 추구하나 사실 속으로는 균열을 느낀다.

남편은 회사에서 만난 여성과 바람을 피웠고 아내는 근처의 혼자 사는 남자와 불륜 관계다. 서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싸우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네드라의 매력은 비리 친구들조차도 흔들리게 하니.

'진실하게 살면서 행복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충실하지만 불행한 사람보다 낫지 않아?' (p274)
아이들이 고등학생일 즈음에 둘은 공식적으로 이혼한다.

비리는 아내를 잊지 못하고 모든 일에서 무심해졌지만 네드라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며 하고픈 대로 하며 산다.

'그녀의 삶은 잘 보낸 한 시간 같았다.
그 비결은 그녀는 후회나 자기 연민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날들은 바닥나지 않는 채석장에서 캐내는 돌 같았다. 그 안에는 책과 사소한 볼일들, 해변, 그리고 가끔씩 오는 우편물이 있었다.' (p353)

여주인공이 뭔가 이룰 거라는 고정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네드라는 자기 안의 에너지와 삶을 조율하다 시골 통나무집으로 옮겨온다. 거기서 그녀는 특별한 병명도 없이 조금 앓다가 죽었다.

한편 비리는 삶의 의욕을 잃고 무작정 떠난 로마 여행에서 니타라는 헌신적인 여성을 만나 결혼도 한다.

'그녀는 마치 잘 차려진 식사 같았다'(p393)

그러나 니타의 맹목적인 헌신은 오히려 비리를 숨막히게 한다. 네드라가 죽고 나서 얼마 후 자신이 살던 곳에 온 비리. 그는 뭔가를 결심하는데......


소설은 이야기를 완결짓지 않고 끝난다.
완결을 지어도 큰 차이는 없는 전개다. 풍족한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허술한지 볼 수 있으며 무너지더라도 삶은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게 되어 있다.

번역자의 후기에 의하면 이 글을 쓸 무렵 저자 자신도 아내와의 갈등으로 무척 고통스런 날들을 보내는 중이었다고 한다.

미국 최고의 문장가라는 제임스 설터라는 작가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데도 무척 고민하는 작가였나 보다. 그런 문장을 우리 말로 옮기느라 번역가가 얼마나 고심했을지 후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실 원어로 봐야 문학 작품은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뒤집어서 우리 말의 사투리와 독특한 정서를 어떻게 영어로 전달하랴.

"꼬라지를 보니, 참 거시기 허구만."

Look at the corrugated fish. It's just a fiction.

파파고가 이렇게 번역해 주네.


아주 재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은은히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
한 사람에게는 광년(light years) 같은 삶이지만
우주의 관점에서는 한 인간의 '가벼운 날들(light years)이기도 하다.


제임스 설터 / 박상미 역 / 마음산책 / 2013 / 13,800 /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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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내용이 우리가 많이 보는 로맨스 드라마 수준처럼 느껴집니다. ㅎㅎ

작가가 탁월한 언어 마술사라는데 번역하니 그저 그런 느낌이긴 해요.

번역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언어가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꼬락서니 번역에 빵 터졌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