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6 기록

in avle-pool •  19 days ago  (edited)

20240414_173509.jpg

산파가 바쁘게 일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불을 들고 있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는 처음으로 아이를 낳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깜짝 놀라 이글거리는 눈을 진통하는 여인의 얼굴에서 떼지 못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경험 하나를 얻었다. 분만하는 여인의 얼굴에서 발견한 것은 그에게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관솔불을 비추면서 크나큰 호기심으로 진통에 시달리는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예상치 못한 뭔가가 나타났다. 소리치는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에 나타난 선들은 다른 여자들이 사랑에 도취한 순간 보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극심한 고통의 표정이 크나큰 쾌락의 표정보다 좀 더 격렬하고 좀 더 일그러지긴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일그러짐, 똑같은 타오름과 소멸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고통과 쾌락이 자매처럼 비슷할 수 있다는 이런 깨달음에 그는 깜짝 놀랐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남성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지만 여성이 성관계에서 쾌락이 절정으로 가는 과정까지 표정과 신음이 겉보기에 출산의 가장 큰 괴로움과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는 지적, 그것이 어쩌면 고통을 동반한 쾌락 추구의 마조히즘(masochism)을 지지하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 이걸 지나치게 병리적으로 이해 해야 할까?

가정을 이룬 한 아기의 탄생에서 어머니의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고 아기와 가족에게는 축복이 시작 된다는 점에서 삶이 괴로움 속에 피어나는 가식적 축복 혹은 세뇌되는 축복이 아닌지 의심스럽긴 하다. 앞으로의 그 아가는 3할은 잠과 휴식 속에서, 거의 나머지 7할은 행복이라는 허상을 얻기 위한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까?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imag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