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또 한 번의 여름밤

in hive-102798 •  3 months ago  (edited)



체념이란 건 나쁜 말인 줄 알았어. 자포자기의 다른 말일 거라고. 그런데 희망에 찬 체념이란 것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지. 어떤 화백의 이야기에서. 그분이 그러더라고,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고는 '체념'하게 되었다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그 화백의 불같은 의지는 대신 화폭에 담겼지. 골방에 자신을 유폐시키고 끝없이 반복되는 선 긋기와 붓질로 그 '화'와, '한'을 쏟아내었다지. 그게 한국의 'Dansaekhwa'가 되었대.



'체념滯念'에는 희망이 있어. '념'을 놓았을 뿐이지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념'은 무언가로 승화되었지. '체념'이란 '념'에 몸을 만들어 주는 일일 테니, 캔버스에 담기거나 책으로 묶이거나 물질로 변화한 '념'이 세상을 바꾸는 건 당연한 결과야. 그러므로 우리는 그 '념'이 어떻게 세상에 자신의 몸을 드러낼지 알 수가 없어. 다만 쏟아낼 뿐.



그러나 포기에는 희망이 없어.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는 걸 테니. 단념, 자포자기는 체념과 같은 말이 아니야. 체념은 자기를 변용시키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니까.



어제 안타까운 죽음을 들었어. 그는 7년을 매일 15시간씩 배달을 했다지. 달인의 경지에 오른 그는 월 1200만 원을 벌었대. 그리고 신호를 위반한 버스에 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 신호를 위반한 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무리하게 오토바이를 몰던 그가 아니야. 그랬다면 그는 7년을 해올 수 없었을 거야. 그렇다고 자신의 일을 버리고 다른 삶을 살았다 한들, 그날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거야. 그의 성실과 노력에도 상관없이 그날 그 자리, 그 순간에 있었다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의 종말이 된 거야.



7년을 매일 15시간씩 글을 쓸 수 있을까? 월 1200만 원의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도? 그리고 정해진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서 운명의 종말과 마주칠 때 나는 행복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나의 '념'은 몸을 얻게 되었겠지. '체념'한 나는 쏟아내었을 테니까. 지구가 뜨거운 '화'를 대기에 쏟아내듯, 나의 '념'도 활자로 자신을 드러내었을 거야. 그렇다면 그때의 여름밤은..



그날 그 자리, 그 순간에 머물기 위해 '체념'이 필요할 때가 있어. '념'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드러낼지 알 수 없으니까. 우리는 그저 품어내고 쏟아낼 뿐이지. 때와 장소는 운명의 몫이잖니. 그러니 우리는 그저 무더운 하루를 살고 선선한 바람이 어루만져주는 여름밤을 느끼는 거야.



또 한 번의 여름밤을.









[위즈덤 레이스 + Music100] 23. 여름밤_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


Human Library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