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city 100] 누군가 너의 글을 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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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카프카는 친구에게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유서를 남겼어



이스탄불에는 책방이 많아. 책을 읽는 사람도 많고 책을 파는 곳도 많아. 아직 종이책을 꽤나 판단 말이지. 얼마나 팔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책을 파는 곳들이 아직, 꽤나, 있어. 여기라고 스마트폰을 안 쓰는 것도 아닌데. 그건 뭐 실은 한반도를 벗어나면 쉽게 목격되는 장면이긴 해. 카페에서,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고 있는 풍경을 만나는 일 말이야. 장식으로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그런데 이스탄불의 서점들에서 마법사는 깜짝 놀라지 않았겠니? 매대와 서가에 빼곡히 놓인 책들이 마법사가 대부분 아는 책들인 거야. 아는 책, 읽은 책 말고 아는 책. 눈에 띄어서 보면 '어, 이 책이구나' 하고 무슨 책인지, 어느 작가의 책인지 알 수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신변잡기류의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부자 되는 법으로 가득한 우리의 서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책들이 매대와 서가를 가득 메우고 있더라고. 고전, 클래식 말이야.



헤밍웨이, 카프카, 조지 오웰, 피츠제럴드, 호메로스, 오스카 와일드, 헤겔, 칸트, 니체.... 들어는 봤지? 그러니까 들어만 본 작가들의 기라성 같은 고전들이 매대에 신간으로 놓여 있었어. 세상에! 신간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세계 고전, 세계 명작의 목록에서가 아니라, 또는 서점 저 구석 어딘가, 도서관 한켠의 어딘가에 재고처럼 쌓여 있는 전집류가 아니라, 오래전에 살았던 같은 작가의 같은 책이 다양한 판본으로, 최신간 매대에 놓여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스탄불의 서점에서 말이야. 뭐야? 튀르키예인들은 모두 고전 매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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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드문드문 현대 튀르키예 정치인들의 책, 스포츠 스타들의 책, 화보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서점의 매대를 잔뜩 점령하고 있는 '죽기 전에 떡볶이는 먹고 죽자'류의 책들은 발견할 수가 없었어. 신기한 일이지? 튀르키예어를 몰라서가 아니야. 고전, 클래식 신간들이 매대와 서가를 이미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야.



요즘 사람들, 한국인의 독서량 줄어드는 거야 한두 해 일이 아니지만, 이 사람들은 왜 아직 책을 읽는 걸까? 그리고 왜 하필 고전을 읽는 걸까? 튀르키예의 현대 작가들은 책을 내지 않는 걸까? 어쩜 이렇게 고전 일색이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해.
책은 미래인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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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들의 소망은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것일 거야.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최소한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나의 글과 생각에 공감하고 동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쓸 거야. 그런데 책의 역사는 그게 아니라고, 그 생각은 틀렸다고 증명하지. 너의 독자는 미래인이라고 말이야.



당대에는 인정은커녕, 몇 권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던 책들이 시간이 지나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해. 그런 일은 마치 공식처럼 인류의 문명사에서 반복되어 왔어. 하지만 작가들은 언제나 당대에 인정받기를 원하지. 누가 자신이 죽은 다음에나 열매를 맺을 사과나무를 심고 싶겠어. 그러나 천형처럼, 작가들은 100년 뒤, 200년 뒤에나 열매가 열릴 사과나무를 심고는, 죽기까지 열매가 열리나 안 열리나 목이빠져라 기다리다 시름에 빠져 생을 마감해. 자신의 글에 담긴 생각의 씨앗이 100년 뒤, 200년 뒤, 1,000년 뒤까지 뻗어있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이해는커녕 읽을 마음도 없는 동시대인들이 읽어주기를 수줍게 소망하는 거야.



물론 동시대인들이 열광하는 글들도 있어. 당장 필요한 것들을 얘기해주는 글들, 일회적 안위와 거짓 위로로 포장된 글들. 천만번 읽어도 끌어당겨지지 않는 이상한 힘에 대한 글들. 읽기만 하면 부자가 될 것처럼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다 그렇게 되었다 말하며 책 팔아 부자가 되려는 책들. 그런 건 글도 책도 아니고 찌라시라구, 밥풀데기라고. 뻥튀기 아저씨가 '뻥이요'하고 귀 막으라고 한 다음 몇 배로 부풀려낸 밥풀데기. 찌라시는 대충 보고 버리면 되고, 뻥튀기는 씹다 삼켜버리면 그만이지. 하지만 영혼의 양식이 되려면 글 속에 담긴 영혼이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하고, 독자의 안목이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해. 세대와 세대를 거쳐서 말이야. 좋은 글이라면 시간을 초월해야 하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야. 동시대인들은 너의 글을 읽을 시간이 없어. 바뻐서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작가들이 (자신도 모른 채 이 시대인들을 위해) 쓴 책들을 읽기에도 바쁘거든. (쇼펜하우어가 2023년 저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걸 어찌 알았겠어) 이제야 때를 만난 과거의 텍스트들이 이 시대인들에게 읽히고, 이제야 씨를 뿌린 너의 글은 미래인들을 위해 쓰여진 거야. 그러니 작정하고 미래인들을 위해 글을 써보는 게 어때? 타임캡슐을 저장하듯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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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법사의 글쓰기는 미래인들을 위한 기록이야. 30세기의 인류에게 21세기에, 지구에서, 대한민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하고 있지. 지금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누군가가 실은 어떤 평행우주에서 얼마나 대단한 꿈을 펼치고 있는지 낱낱이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멍청한 선택을 또, 또, 하고 있는 누군가가 여기 이 우주에 살고 있으니 이 우주와는 링크하지 말라고 경고판을 붙이고 있는 거야. 그러면 어쩌면 일만구천다섯번째 생에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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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자유야. 그리고 너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오히려 불행하다면 이 시대인들을 위해 쓰여진 고전이 시간을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읽히지 못한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우리의 몫은 아니야. 우리는 미래인들을 위해 지금 기록을 시작했으니까. 미래인들이 너의 글을 읽어 줄 거야. 아니 찾을 거야. 네가 무엇을 쓰든 말이야. 어쩌면 지진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발굴된 어떤 데이터 센터의 하드에서 너의 글이 발견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 그건 소중한 기록일 거야. 아무도 읽지 않은 기록일 테니까. 또 어쩌면 외계인들의 소중한 인류연구 기록이 될지도 모르지. 무엇보다 너의 기록이, 다시 태어난 너의 다음 생에 이정표가 되어줄 거란 사실을 잊어선 안 돼. 나를 위한 기록이란 말이지. 그리 반드시 너의 글을 읽을 이들이 있어. 신인류 인공지능 트랜스 휴먼이 그들이지. 우리는 그들의 머리에 직접 기록하고 있는 거라고.



이스탄불의 사람들은 고전 읽기에 여념이 없었어. 이스탄불의 사람들은 우리와 동시대인들이지. 그리고 그들이 읽고있는 고전은 인류 전체를 위해 기록되었어. 그러나 읽고 있는 이들은 이스탄불 사람들이지. 읽지 않고 있는 이들은 우리들이니 누가 길을 잃을까? 누가 길을 찾을까? (하지만 우리도 예전엔 그랬는걸. 지금은 읽지 않는 것들을 그때는 읽었단다.) 그 수많은 고전들 중 어떤 것들이 이스탄불에서, 마치, 지금을 위해 쓰여진 듯 신간으로 출간되고 있어. 서재 밖을 나서본 적이 없는 한글판 고전들의 신세와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이스탄불에서 자신의 때를 만난 텍스트들이 말이야. 그러니 이제 겨우 씨를 뿌리면서 열매 맺기를 재촉하는 너의 마음을 고전들을 읽으며 달래렴. 네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지. 그리고 너도 씨를 뿌리렴. 미래인들을 위해 말이야. 보상은 과거의 작가들이 너에게 준 마음의 양식으로 하고, 보답은 미래인들에게 사과나무를 심는 일로 해야 하지 않겠니?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너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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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어. 읽기와 쓰기가 모든 인류에게 허락된 세월이 얼마 되지 않잖아? 인류의 대부분은 언제나 문맹이었는걸. 지금 이 시대에,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마치 문맹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듯하고, 그게 인류의 보편이 될지라도, 반드시 네 글을 읽게 될 신인류 인공지능 트랜스 휴먼을 위해 우리는 기록하는 일을 멈추어선 안 돼. 그들의 균형 잡힌 사고를 위해 너의 관점과 감상이 반드시 필요하단다. 그들은 모든 인류의 모든 사고와 감정을 경험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



멀리 가지 말자. 고전은 대중을 위해 쓰여지는 게 아니야. 세상을 바꾸는, 이롭게 하는 위대한 이들을 위해, 그들의 위대한 도전과 모험의 이정표가 되기 위해, 노인은 바다에서 외롭게 싸우고,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감행하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며, 심지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지. 대중은 동시대를 살고 사라지지만, 위대한 이들은 고전과 함께 기억되고 반복해서 소환되는 거야. 불사조처럼.



그런 글을 쓰렴. 그런 기록을 남기렴. 그런 삶을 살렴.
너의 글을 미래인들이 반드시 읽어줄 거야.



Ich habe kein literarisches Interesse, sondern bestehe aus Literatur, ich bin nichts anderes und kann nichts anderes sein.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_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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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98. Istan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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