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에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는 시계를 돌려도 한참을 더 돌린 것 같은 구시대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잔스카르 산골 오지에 사는 텐진과 팔킷은 단짝 친구이지만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곳에 사는 여자들에게는 극단적인 두가지의 선택만이 있다. 모르는 남자와의 결혼 vs 비구니 되기.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도 어찌저찌 살다보면 정도 생기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낡은 포장지로 애써 포장하려고 해도 가당치 않다.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고 모르는 집에 결혼한다는 건 그 집의 일꾼으로 들어간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기에 삶은 더욱 가혹해진다. 어느 날 텐진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가 낯선 남자의 창을 마셨다는 것. 라다크에서는 남자가 청혼할 때 여자의 집에 보리로 만든 술 ,창을 보내게 되는데 그 술을 마시면 승락한다는 의미이다. 말 한마디 의논도 없이 덥썩 마신 창으로 텐진은 영락없이 그 집에 결혼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신랑과 신랑 부대가 말을 타고 텐진의 집으로 오는 장면은 약소국을 정복하러 진격하는 부대와도 겹쳐보여 어찌도 공포스럽던지. 그 운명을 순응하지만 신부 화장을 하고 머리 장식을 하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텐진의 모습에 가슴이 많이 저릿했다. 사랑하던 남자와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헤어진 팔킷은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지을 수 있는 방법은 비구니가 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도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끝내 허락을 받고 달라이라마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비구니 학교에 들어가겠다고 결정한다. 한 겨울 얼음길을 걷는 차다 트랙을 수십시간 걷고 비행기를 타고 어렵사리 간 그곳에서 결국 팔킷은 비구니가 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보다도 영화의 뒷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팔킷은 오래지 않아 파계를 하고 남자와 가정을 꾸렸다는 것. 그리고 기승전결이 극적으로 짜여진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일부가 연출이라는 것(주인공의 엄마인가 아빠가 진짜가 아니라고) 팔킷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비구니가 되는 게 아니라 누구도 간섭못할 상황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예전에 헤어졌던 남자와 다시 만났으려나 싶었지만 그것까진 알 길이 없다. 그저 군인이라고만 들었다.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지 못한다는 것에서 모든 비극은 시작된다. 근대적인 이 스토리 말고 지금의 시점으로 이 질문을 가져와 누군가 "당신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짓고 만들어가고 있냐?"고 묻는다면 백프로 예스라고는 말 못하겠다. 대체적으로 내 운명을 스스로 만들었다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인 부분과 후천적인 눈치로 머뭇거리고 못한 일도 분명 존재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면서도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인가 물음표가 들때도 많았다. 사실, 운명은 날씨와도 같은 속성이 있어 내가 컨트롤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고 거친 돌풍에 휩쓸리기도 하고, 비바람에 홀딱 젖기도 하고, 해가 쨍쨍 내려쬐어 좋은 날이 계속되기도 한다. 어떤 날씨가 날 방해하고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묵묵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쫓는 것, 그것이 궂은 날씨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라다크를 다녀와서 마음에 바람이 불어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묵묵하게. 능동적으로. 두 단어를 가슴에 새겨본다. 내 운명을 내가 만들어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