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 연합사의 상황평가 및 결정
유엔군과 한국군이 저항할 의지가 없고 퇴각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을 볼 때, 서울을 포기하거나 한강남안까지 철수하거나 또는 계속 남쪽으로 후퇴할 것으로 보았다. 이런 기회를 포착하여 전과를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지원군 우종대 및 인민군 제1군단은 기회를 보아 서울, 인천, 수원, 양평을 점령한다.
동서 양종대가 상기전선까지 진출하면, 즉시 공격을 정지하고 휴식과 재정비 및 보충을 실시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평택, 안성, 충주, 제천 선까지만 후퇴시켜 그곳에서 방어케 함으로써 장차 다시 공격시 적을 섬멸할는데 유리하게 한다.”(90)
1월 3일 조중연합군은 추격으로 전환
우종대
제50군
고양 이북의 벽제리에서 미 제25사단 1개대대의 저항을 격퇴, 고양남쪽에서 영국 제29여단의 퇴로를 완전히 단절, 그날 저녁, 영국 제29여단의 황실 에르스넷 라이플 연대 제1대대 및 영국눈 제8기갑 연대의 본부 중대를 완전히 섬멸, 전차 31대 노획 및 파괴
제39군
의정부 서남의 회룡사에서 미제24사단 제21연대와 조우, 일부를 섬멸, 이후 의정부 서쪽의 부곡리에서 영국 제29여단 2개 중대를 섬멸
제38 및 제40군
의정부 동남지역인 수락산 지역까지 적을 추격, 미제 24사단 제17연대를 섬멸
좌종대
제42군
주력부대와 제66군의 1개사단은 각각 가평, 춘천으로부터 북한강을 도하, 홍천 방향으로 진출, 남쪽으로 퇴각하는 적을 저지
유엔군 및 한국군은 1월 3일 15시부터 서울에서 퇴각하기 시작
4일 중국군 제50군과 제39군의 각각 1개사단과 인민군 제1군단 일부가 서울을 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