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1(화)역사단편67 평양패수고(1)

in hive-143843 •  4 months ago  (edited)

조선사연구초 3부를 시작한다.
<출처: 독립기념관 자료집, 신채호 조선사연구초>
사전은 '네이버, 다음'

제목: 平壤浿水考(평양패수고)

一. 緖言(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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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은 神誌秘詞(「『高麗史』 金謂磾傳(고려사 김위제전)」에 보임) 가운데 古三京(고삼경)의 一인 百牙岡(백아강)이요, 朝鮮 文明이 發生한 七大江의 一인 浿水(패수)가의 서울이라. 그러나 時代를 따라 地名이 遷徒(천도)하였음으로 만일 今浿水·大同江(금 패수, 대동강)을 古浿水로 알고, 今平壤·平安南道 首府(금 평양-평안남도 수부)를 古平壤으로 알면 平壤(평양)의 歷史를 잘못 알 뿐 아니라, 곧 朝鮮의 歷史를 잘못 앎이니, 그러므로 朝鮮史를 말하려면 平壤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출처: 평양패수고>

神誌秘詞(신지비사): 단군조선시대의 사관이 적었다는 기록.
역사서들이 개방되지 않고 궁중서고에 감춰진채 보관되었던 풍토때문에
비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牙(아): 어금니, '대장의 깃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百牙岡(백아강): 삼한시대에 세개의 중심이 있는데 저울, 저울추, 저울판에 비유했다.
백아강은 저울판에 해당한다.
遷徒(천도): 옮겨가다.

해석해보면,
'평양'은 신지비사에 나오는 옛 삼경(세개의 수도)중 하나인 백아강이다.
조선 문명이 발생한 7개의 큰 강들중 하나인 '패수'옆에 있던 서울이다.
그러나 시대변화에 따라 지명이 이동했기 때문에
현재의 패수인 대동강을 옛날의 패수로 인식하고,
현재의 평양 즉 평안남도의 중앙도시를 옛평양이라고 생각하면
평양의 역사를 잘못 알게되고,
조선의 역사를 잘못 알게되니,
조선사를 말하려면 평양부터 알아야 한다.

丸都(환도)가 어디냐? 卒本(졸본)이 어디냐? 安市城(안시성)이 어디냐?
迦瑟那(가슬라)가 어디냐? 阿斯達(아사달)이 어디냐? 百濟의 六方(백제의 육방)이 어디냐? 渤海의 五京(발해의오경)이 어디냐?
이 모든 地理가 朝鮮史上 累百年來(누백년래) 未決 訟案(미결송안)이다.
그러나 그 가장 重要 또 有名한 訟案(송안)은
平壤 位置(평양위치)가 어디냐? 의 問題이다.
왜 그러냐하면 平壤 位置의 問題만 決定되면 다른 地理의 解得(해득)은 容易(용이)한 까닭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迦瑟那(가슬라): 역사학계가 '강릉'이라고 주장하는 고구려지명
累百年(누백년): 수 백년
訟案(송안): 송사의 내용과 과정을 적은 기록을 이르던 말.

해석해보면,
'환도가 어디냐? 졸본이 어디냐? 안시성이 어디냐? 가슬라는 어디냐? 아사달이 어디냐?
백제의 육방이 어디냐? 발해의 오경이 어디냐?
이 모든 지리적 문제가
조선사상 수백년동안 해결되지 않은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논쟁은
"평양위치가 어디냐?"에 대한 문제다.
왜냐하면, 평양의 위치문제만 결정되면 다른 지리의 해독은 쉽기 때문이다.'

평양의 위치에 대해서 수백년전의 학자들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는 이야기다.
헌데 이병도이래 식민사학으로 공부한 소위 '정통 역사가'들이
너무도 쉽게 평양의 위치를 비정하고 아는척을 한다.^^

平壤의 位置가 時代를 따라 다르니,
(一) 三朝鮮時代의 平壤이요,
(二) 三國東北國 兩時代의 平壤이요,
(三) 高麗 以後의 平壤이다.
高麗 以後의 平壤은 今平壤이니, 이는 오직 그 數百年來 定都 可否의 系統的 爭論(계통적쟁론)이 대강 辨論(변론)할 거리가 되는 以外에 그 位置에 對하여 問題가 없고, 三朝鮮의 平壤, 古平壤은 非常한 努力(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到底(도저)히 그 位置를 알 수 없으므로 가장 어려운 問題요, 三國 東北國의 平壤은 或 古平壤을 가리켜 平壤이라 한 記錄도 있고, 或 今平壤을 가리켜 平壤이라 한 記錄도 있는 平壤이므로, 다음 어려운 問題이다.<출처: 평양패수고>

三國東北國 兩時代(삼국동북국 양시대): 삼국시대와 발해-신라의 시대

해석하면,

'평양의 위치가 시대에 따라 다르니,
(1) 삼조선시대의 평양이요,
(2) 삼국동북국 양시대의 평양이요
(3) 고려 이후의 평양이다.
고려 이후의 평양은 현재의 평양이니,
이는 오직 수백년동안 이어진 평양의 위치여부에 대한 계통적 논쟁에서
대강 변론을 할 수 있고 그 위치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
삼조선의 평양인 '고평양'은 비상한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도저히 그 위치를 알 수 없으므로 가장 어려운 문제요,
'삼국-동북국'의 평양은 간혹 '고평양'을 가리켜 평양이라 한 기록도 있고,
혹은 현재의 평양이라고 한 기록도 있으니 그 다음으로 어려운 문제다.

本編은 곧 古朝鮮의 平壤, 古平壤의 位置를 辨證(변증)하려 하는 바, 近世 우리 朝鮮의 先儒(선유)들이나 最近 日本의 學者들이 京畿·黃海·平安 三道와 遼東半島(요동반도)의 名山 大川에 골마다 더듬어 古平壤의 位置를 찾음에 非常히 努力하였지만, 그 努力의 報酬(보수)가 없고 平壤이 어디라는 答案이 바로 되지 않았으니, 이는 그 찾는 方法이 錯誤(착오)된 까닭이다. 著者가 才力(재력)의 淺薄(천박)함을 不拘(불구)하고 그 錯誤를 訂正(정정)하여 累百年來 잃어버린 平壤을 제자리로 돌리려 하여 本編을 草(초)한다. 대개 그들의 錯誤가 어디 있는가?
<출처: 평양패수고>

辨證(변증): 분석해서 종합적으로 증명하는 것
報酬(보수): 노력의 댓가
草(초): 초안을 잡다.

해석하면,

본편은 곧 고조선의 평양인 '옛평양'의 위치를 증명하려 하는 바,
근세 우리 조선의 선배학자들이나 최근 일본의 학자들이
경기-황해-평안 3개도와 요동반도의 명산 대천 골짜기 마다 더듬어가며
옛 평양의 위치를 찾는데 특별히(=비상한) 노력했지만,
그 노력의 댓가가 없고, 평양이 어디라는 해답이 바로되지 않았으니
이것은 찾는 방법에서 착오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재주와 능력의 부족함을 불구하고 그 착오를 정정하여
수백년동안 잃어버린 평양을 제자리로 돌리려 하여
본편을 기초로 한다. 대개 그들의 착오가 어디에 있는가?

일본학자들까지 옛 평양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 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요동지역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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