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못의 일본인 무덤

in hive-196917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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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은 아마 대구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못일 것이다. 내 지인들 중 일찍 결혼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성못 부근의 까페에서 소개팅을 했는데.....로 시작하는 사연들이 많았다. 내 아이가 처음 탄 오리배도 수성못의 오리배였다.

미즈사키 린타로(水崎 林太郞), 수성못을 산책하다가 낯선 이름을 만났다. 저건 뭐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기웃거리면서 훑어보니 저 안 쪽에 무덤이 하나 있고 그 묘역은 소공원처럼 잘 꾸며져있다. 설명판의 내용을 길게 읽은 시간은 없어 표지판의 사진만 찍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수성못 축조사업을 벌인 사람이라고 한다. 자료에 따라 연도, 출신도 왔다갔다 하는데 일본 기후현 출신으로 정장町長을 역임하고 1915년에 '개척농민'으로 대구에 건너와 화훼농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성 들판의 농업용수가 부족해지자 수리조합을 설립을 주도하고 조선총독과 담판을 지어 예산을 타낸 후, 개인재산까지 보태어 수성못 축조공사에 보태었다고 한다. 죽을 때는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대구의 유일한 일제시대 일본인 무덤이면서도 스토리가 나쁘지 않다. 그래서 한 때는 한일교류, 우호의 상징처럼 쓰이기도 했나보다. 묘역의 설명에도 그런 부분이 부각되어 보인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수성못이 등장하는 어떤 동화책에서 린타로의 이야기를 얼핏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1939년에 대구에서 사망하여 수성못 옆에 묻혔고, 시간이 흐른 후 그를 기리고자 몇몇 사람이 나타나 단체를 만들고 묘역을 정비하여 추도식을 거행하기에 이른다. 아래 자료를 찾아 읽다보니 드러난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이고, '사실은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정에서 비롯된 평가는 부정적이다.

죽은 자는 말이없다지만, 고향을 떠나 식민지에 묻힌 무덤주인은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 옆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비詩碑와 함께 세워진 이상화 흉상은 그 무덤을 바라보며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체적으로 미즈사키 린타로에 대해 긍정적인 묘사를 한 자료는 조선일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과 얽힌 역사문제에서 긍정적인 묘사만 있을리가 있나, 부정적으로 묘사한 자료는 대구 매일신문과 구의원 강민구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2009년 4월, 조선일보
2017년 5월, 제 7대 수성구 의회 215회 2차 본회의 회의록에서 강민구 의원이 린타로에 대하여 발언한 부분
2017년 7월, 매일신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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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물이 있었군요.
당시 부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제대로 대우나 노임을 받았을 리는 없겠는데
대신 오늘날 공원 산책은 좋겠어요.

연못이 커서, 커피 한 잔 하고 한 바퀴 돌면 딱 좋은 코스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