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내일의 두 얼굴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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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두 얼굴 @jjy

잠시 한가한 틈에 집에서 가까운 곳을 걸었다.
냉이도 나오고 민들레도 어른 손바닥만큼 자랐다.
쇠별꽃 이파리도 지난 가을 떨어진 나뭇잎 틈에서
파릇한 잎으로 속으로 꽃을 짓고 마늘은 볏짚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있다.

며칠 전부터 내일은 꼭 가야지 하다 오늘에야 빈 밭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일이 몇 번을 지나갔다.
듣기에 따라 내일이라는 말은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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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있으니까 고단한 오늘을 견딜 수 있고
내일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내일의 숨겨진 얼굴을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내일이 가진 다른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 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원래 악마는 타락한 천사였는데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점점 마음이 비뚤어져 나쁜 짓을 일삼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들은 별다른 능력도 없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게 볼수록 심술이 났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느님과의 사이를 갈라놓고
악마의 편으로 만들어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사람들끼리 서로를 저주하며 살게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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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의견이 흉년이 들게 해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자는
악마가 있었으나 인간은 어려울수록 하느님을 찾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의견은
전염병을 퍼뜨려 병들어 앓다 죽에 하자는 악마도 있었지만
죽음에 앞두고 하느님을 찾으면서 매달려 울고불고 기도하면
마음 약한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천국에 가게 되기 때문에
그건 더 더욱 안 될 말이라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가장 나이든 악마가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간에게 하느님을 찾지 않게 할 달콤한
유혹이 바로 내일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일 해도
충분하다고 귀에 대고 속삭여라.

씨를 뿌리는 일도, 장작을 패는 것도, 바느질을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 내일 해도 충분하다고 속삭여라
오늘만 날도 아닌데 내일 해도 충분하다고 얘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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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다음에 먹어야지 하다 잊어버린 사과가
주글주글하게 늙은 얼굴로 나를 비웃고 있었다.
이제껏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는 계절은 올 해도
미루지 않고 제때 봄이 왔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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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일이라는 것은 악마가 기발하게 생각해내었던 유혹의 아이템이었군요. "내일해도 되, 내일로 미루자". 악마를 이기는 방법은 오늘 할 것은 반드시 오늘 해 놓으려는 습관이군요.

저도 수시로 유혹에 눈길을 줍니다.ㅎㅎ

저의 수많았던 내일에
이런 악마의 속삭임이 숨어있었을 수도 있겠어요

내일해도 된다는 생각을 지금 해보자!
로 바꿔볼래요^-^

좋은 글 감사해요

우리의 어깨에는
한쪽엔 천사가 한쪽엔 악마가 타고 있다지요.
어느쪽으로 기울어지느냐의 차이지요

내일 해도 되는건 내일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거였군요 ㅋㅋ

악마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달콤했을까요ㅎㅎ

내일..다음에..저도 자주 쓰는말인데 ㅎ 악마의 속삭임이었다니 ㄷ ㄷ ㄷ

뭐 가끔은 제가 악마를 유혹하기도 했겠지요.

내일로 미룰 때 좀 허무해지는 것 같아요.

게으름을 주고 허무를 산 셈이네요.
그럼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할일을 하는 열성을 보이면 허무는 사라지겠지요.

내일로 미룰 수 있어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겠습니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는 빛을 줬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빛은 인간에게 채찍이 되기도 했지요.
어렵네요.

딜레마입니다.
게으름과 여유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습니다.

이제보니.. 제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었네요... ㅠㅠ

아닙니다.
파파님께서 악마를 길들이고 계셨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