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여행이야기) 송광사 2, 지붕의 아름다움

in oldtstone •  7 years ago 

여행을 다니다니다 보면 처음에는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써놓은 여행기를 읽으면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다 보면 내가 남이 써놓은 글을 보고 그렇구나 하는 것은 남의 느낌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나만의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여행지에서도 문화유산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역사가 얼마나 되었고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고 하는 것 처럼 지식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느끼는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식은 유한하지만 느낌은 무한합니다. 예술이 끝이 없다는 것은 바로 지식이 아니라 느낌과 감정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같은 곳도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리고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다 다릅니다. 같은 곳을 여러번 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송광사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송광사는 좀 아리송한 절입니다. 승보사찰이라하여 고승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하지만 절 그 자체는 그낌이 아리송 합니다. 다른 절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곳곳마다 스님들 공부하는 곳이라 하여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많은 것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송광사에서 중요한 곳은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입니다. 오늘날 승보사찰의 명성이 있게 만드신 분이지요. 한국 불교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불교에서 선 수행의 기본을 세우신 분이라고 하면 옳은 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은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뒷쪽에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관음전을 돌아가면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은 매우 급합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자연히 계단 하나 하나 신경써서 발을 디뎌야 합니다. 불교사찰에서 계단은 급하게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에 충실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밥을 먹을 때는 밥먹는데 집중하고 일할때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때 공부할 생각하고 공부할 때 밥먹을 생각을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원래 분열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얽힌 실타래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얽힌 실타래 같은 의식과 정신을 정리합니다. 그것이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따라 가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정말 쉽지 않더군요.

각설하고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에 섰습니다. 수백년 넘는 세월을 이겨온 사리탑 앞에 서 있으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은 다른 사리탑하고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으면서 아주 단아 합니다. 지붕아래에 균형이 잘 맞추어진 동그란 돌이 놓여져 있습니다. 제가 보조국사 지눌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대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돈오와 점수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불교에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을 보면 보조국사 지눌이 얼마나 선각자적인 수행자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앞에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리탑앞에서 보는 송광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비가 그치고 안개가 끼여 있었습니다. 안개는 조계산을 휘감고 돌아 서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용이 토해 놓은 듯한 윤기나는 안개를 배경으로 송광사의 지붕들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제 입에서 ‘아!’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송광사가 천년동안 숨겨왔던 비경을 본 것 같았습니다. 송광사의 제 1경은 안개낀 날 바라보는 지붕의 모습이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송광사의 지붕은 너무나 조화로웠습니다. 검은 색의 기와는 안개에 쌓여 부드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지붕과 지붕은 모두 조화로웠습니다.

송광사에 가시면 반드시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앞에서서 절집의 지붕을 내려다 보십시요. 특히 안개낀 날의 지붕은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서 다시 지붕들을 쳐다 보았습니다. 위에서 보았던 아름다움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있는 돌담과 지붕의 사이로 다시 겹쳐 보이는 지붕은 위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지붕이 무엇인가 모르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라면 아래에서 올려다본 지붕은 거만하게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약한 속살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런지요 ?

송광사는 법정스님이 출가했던 절이기도 합니다. 법정스님이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세우신 절 길상사는 송광사의 옛이름이지요. 인연은 또 그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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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생활의 터전이 되고 있는 절이라면 금지구역도 있을 법 하죠. 스님들도 생활공간이 있을테니....

사진이 없으니 자연히 글에 집중해 상상력을 동원하게 됩니다. (혹, 이점을 염두하신 걸지도! ㅎㅎㅎ) 순간에 집중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확 와닿네요. 늘 산중의 사찰에 갈 때나 그곳에서 걸음을 옮길 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불편함'이 느껴졌었거든요. 이제 그 의미를 알았네요 :)
다음에 한국가면, 사리탑 앞에서 지붕을 내려다보고 꼭 사진으로 담아보아야겠습니다! :)) 차분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미지 연상 여행 잘 구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친절한 글을 읽어 주셔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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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인거죠?
어떻해 생겼는지 궁금해서 찾아 봤어요
다행히 사리탑에서 보는 절 지붕 사진도 있네요
사진으로 일단 만족하고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 겠어요

가서 보시면 좋아 하실 것 같습니다

송광사에 다녀오셨네요.
제게 송광사는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곳입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로 접어드는 풍경
지금도 각인 되어 떠나지 않고 있는 곳
감사합니다.

더위에 건강하세요.

송광사와 인연이 있으신가 보군요.
참 좋은 곳이지요

같은 경치를 여행하고도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시는 군요.
느낌은 무한하기도 하지만 순간적이라 그래서 같은 곳을 계속 찾게 되는군요.

그렇지요

사진이 있으면 글쓰기가 조금은 수월하더군요.
물론 글의 질은 떨어질수 있겠지만 여행의 일상을 쓸때는 정말 좋은것 같습니다.

오늘도 온갖 상상력 동원하며 글 감상중입니다 ㅎㅎ

ㅎㅎ 감사합니다.

송광사라는 절은 가보지 않았지만 절은 참 정감가고 아름다운 곳이지요.

저도 송광사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불일암이 있다는 것은 이미 전부터 알아왔기에 가보고 싶었으나 너무 멀어 시간 관계상 가보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이었군요. 저도 사리탑보단 가파른 계단을 아래로 보고 놀라고, 다시 능선과 어우러지는 처마 곡선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깝게도 그때 찍은 사진들이 사라져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지금도 꺼내 그릴 수 있었네요.

비오고 안개가 끼면 더 아름답습니다

첫문단 아주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자기만의 느낌으로 여행하는게 진정한 여행이죠.
타인의 여행기는 정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부분을 제외하곤 버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송광사 어떤 곳인지 사진도 함께 올려주셨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추가 정보를 좀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ㅎ

새로운 형태의 여행기? 혹은 여행 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사진이 없는데 왠지 본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좋은 여행 에세이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형태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네요 ㅎ

한번 같이 해보시지요

👍👍👍👍👍👍👍👍

고교시절, 수학여행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엔 그냥 고찰이구나 하는 느낌이였습니다. 그 기억을 삼십년이 지난 후에 다시 돌이켜 보았습니다. 다시찾은 송광사, 저는 임경당과 우화루 밑을 흐르는 맑은 물이 가장 인상적이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