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그맨

in hive-102798 •  3 years ago 

image.png

이명세 - 개그맨

알 수 없는 끌림으로 3학점짜리 영화사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한 학기 동안 수많은 시대의 명작을 짧게 훑어나갔다. 필요 이상으로 밝은 조명의 강의실은 답답했고 교수님의 나긋나긋한 설명도 지루했지만, 수업 중 짧게 스쳐 가는 이미지들은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하는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프린트물에 적힌 영화의 이름을 소중히 간직한 채, 다음 주 수업을 기다리며 몇 편의 영화를 찾아보곤 했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고전에, 그것도 흑백 영화에 마음이 동했다. 낡을수록, 스토리나 연출이 더 고전다울수록 더 좋았다. 좋아하는 감독의 이름을 물으면 줄곧 페데리코 펠리니의 이름을 꺼냈다. 어린 마음에 특별해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었겠지만 그의 영화에 감도는, 오래된 영화에서 오는 독특한 질감과 분위기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을 죄다 잊고 있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명세'라는 이름이 익숙했고(영화사 수업을 듣던 시절 영화과에 재직 중인 교수님이었다), 이번 영화제 섹션이었던 '태흥영화사'의 영화를 한 편 정도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자마자 좋았다. 안성기의 젊은 모습,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연기.

이 영화에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오래된 영화의 공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익숙한 분위기와 질감을 느낀 순간, 영화의 짜임새와는 상관없이 느낌만으로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관람 내내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한국에도 내가 좋아하는 류의 고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IMG_4631.jpg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