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나를 사흘간만 풀어주시오. 여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렇게도 나를 믿지 못한다면, 좋소이다. 이 도시에 세리눈티우스라는 석공이 있소이다. 나의 둘도 없는 친구죠. 이 친구를 인질 삼아 여기에 잡아두시죠. 내가 도망쳐 사흘째 해가 저물기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 친구를 죽이십시오. 부탁합니다. 그렇게 해주시지요.”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여기는. '약속'한 이들이 화폐를 발행하고 우리는 그 비전에 따라 목숨 같은 '자산'을 대신 맡기지 않았는가. 담보가 없는 하얀 종이에 적힌 '약속' 그것만을 믿고 목숨을 화폐로 전환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의 목숨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니. 그것은 '약속'을 파기한, 방기한, 외면한 발행자들의 문제인가, '약속'을 사고팔고, 복잡하게 뒤섞어 판 쩐주들의 문제인가, 눈이 확 뒤집혀 투전판에 '약속'을 헐값에 베팅한 어리석은 마음의 문제인가.
"오늘은 반드시 그 왕에게 사람의 신실(信實)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그러고는 활짝 웃으면서 내 발로 처형대에 올라가리라······ 하며 메로스는 유유히 떠날 채비를 했다."
인간들에게, 사람 사이에, 신실(信實)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정부와 기관, 어떤 중앙 시스템의 보장을 받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들의 신실(信實)만으로도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이런 것을 만들고, 이런 것에 자산을, 자신을 바치고 제 발로 모든 것을 걸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는 처형대에 올랐다.
누구의 잘못인가? 이것은 잘못인가? 약속이, 신실이 무너지는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 이들은 이것은 사기라고, 그러게 내가 뭐랬냐고, 어리석은 젊음들이 자산을 헌납하지 못하도록 막아서야 했다고 힐난하지만, 그 현장에 선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약속'을 여기서 멈출 텐가. 이제 그만둘 텐가.
"아아, 탁류를 헤엄쳐 건넜고 산적을 세 놈이나 때려누이고는 예까지 다다른 메로스여, 진정 용기 있는 자, 메로스여, 이제 여기서 지쳐 쓰러지다니 한심하구나. 사랑하는 친구는 너를 믿은 나머지, 그 때문에 이윽고 살해당해야만 한다. 너는 희대(稀代)의 불신자다. 이제 사람을 믿지 못하는 못된 왕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냐."
의심하는 것이 정당한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쳐 준 것은 너희라고. 사람의 마음은 결코 믿을 수가 없다고. 인간은 본시 사리사욕 덩어리니 필요한 것은 채찍과 억압뿐이라는 왕의 불신을 깨부수겠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체인을 연결하고 모든 약속을 기록하면 아무도 '신뢰의 망'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왕, 중앙 따위는 필요 없을 거라고. 그리고 체인을 연결하는 대신 채찍 아닌 당근을 주면, 보상을 주면 사람들은 연결을 끊지 않을 거라고. 연결된 체인과 절대 끊어지지 않는 보상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누가 했는가? 왕이 했는가? 우리가 스스로 하지 않았는가. 스스로 빨간약을 먹고 체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자산을 연결시키지 않았는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씨부렁거리느냐. 놓아준 새가 다시 돌아온단 말이냐?"
그래서, 놓아준 새는 다시 돌아왔는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물고 다시 돌아왔는가? 그것은 우리의 환상이었는가? '약속'은 모두 '거짓말'이었는가? 무너지고 풀어지는 '약속'과 '체인'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러니까 달리는 거야. 믿음을 받고 있으니까 달리는 거야. 아직 늦지 않았다고. 늦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야. 인간의 목숨도 문제가 아니고. 나는 뭐랄까, 좀 더 어마어마하게 큰 것을 위해 달리고 있는 거야. 따라오라고, 피로스토라토스!”
"너만은 나를 믿어줄 것임에 틀림없어. 아니, 그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아, 차라리 악덕한 놈으로 목숨을 이어갈까? 마을에는 내 집이 있고 양 떼도 있지. 여동생 부부가 설마 나를 마을에서 내쫓진 않겠지. 정의니, 신실이니, 사랑이니 등등은 골똘히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야. 남을 죽이고 스스로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 세계의 정법(定法)이 아니던가."
돌아서는 우리의 마음은 정의와 신실과 사랑,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 부질없다 여기고 이제 그만 연결을 끊으려 하는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왕의 통치 아래로 돌아가려 하는가. 남을 죽이고 스스로 살아가는, 신실(信實)을 상실한 인간 세계의 정법(定法)을 따르려 하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치도 의심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다. 나는 믿음을 받고 있는 거다. 내 목숨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죽음으로써 사죄한다는 따위의 허울 좋은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신뢰에 보답해야만 한다. 지금은 다만 이 한 가지뿐이다. 달려라! 메로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는가. 조금만치도 의심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는가. 목숨으로써 서로의 신뢰에 화답해야만 할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그거 없이 도대체 누구와 체인을 연결하였단 말인가. (알고 보니) 사기꾼들과 연결한 체인으로 꿀 좀 빨았는가? '신뢰의 체인'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며 교묘하고 영리하게 인간 세계의 정법(定法)을 실천하여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가? 에라, 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멍청이들아! 신실(信實)도 정법(定法)도 모르고 남들 뒤꽁무니만 줄줄 쫓는 줏대 없는 건방진 녀석들아!
"이 말을 들은 왕은 잔혹한 마음으로 슬쩍 웃음을 머금었다. 건방진 녀석!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건 뻔하다. 이 거짓말쟁이에게 속는 셈 치고 놈을 풀어주는 것도 어쩌면 재미있는 노릇이다. 그러고는 대신 그 사내놈을 죽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세상 믿을 놈이란 아예 없다고 울상을 하며 처형되는 꼴을 보고 싶다. 세상에 정직한 자라고 하는 녀석들에게 이걸 보여주어야지."
망연자실한 이들에게 세상이 보여주는 비웃음이다. 뭔지도 모르면서 목숨 보다 귀한 자산을 빚까지 내어 턱턱 맡긴 이들의 어리석음과 목숨으로써 서로의 신뢰에 화답할 친구도 없이 30배, 60배, 100배의 수익을 떠벌리는 사기꾼들과 체인을 묶은 멍청함이 가져온 처형이다. 그러나 친구, 그 친구를 가진 이들이라면,
"오늘 밤 나는 처형을 당한다. 죽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나 대신 잡혀 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또 왕의 극악무도함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는 나는 처형된다. 젊은 날로부터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잘 있어라. 안녕! "
달리고 달리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친구를 위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스팀시티]를 향해. 위즈덤 러너는 달리고 달리는 것이다. 창작자를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 도시는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읽는 자들이 있어야 쓰는 이들이 있고, 보는 자들이 있어야 그리는 이들이 있고, 듣는 이들이 있어야 노래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읽고, 보고, 듣고 그리고 살겠다고 찾는 이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아 걷고 달리는 것이 아닌가. 콩알만 한 @stimcity의 보팅이나 받겠다고 공들여 포스팅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어리석단 말인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위즈덤 러너들은 메로스보다도 용감하고 살렘의 왕보다도 지혜롭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허튼 'contract'에 의존하여 목숨 같은 자산을 태워버린 어리석은 이들과는 달리, 기다리는 친구와 떠오를 도시를 찾아 여전히 읽고 보고 듣고 달리는 것이 아닌가.
“그만두세요. 달리는 건 그만두시라니깐요. 이제는 스스로의 목숨이 소중하다고요. 그이는 당신을 믿고 있으니까요.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태연자약했어요. 왕이 짓궂게 그이를 빈정거렸는데도, 메로스는 꼭 온다고만 대답하며 강한 신념으로 일관한 것 같습니다.”
[위즈덤 레이스 + Book100] 012. 달려라 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