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다시, 스피툭

in hive-102798 •  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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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스탠드에는 수십 대의 버스가 대기 중이었는데 차장이 버스의 종착지를 큰 소리로 외치며 승객을 모으고 있었기에 스피툭 행 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은 버스가 승객들로 금세 가득 찼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 라다크 여자의 교태 섞인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척 거슬렸는데 듣다 보니 제법 흥겹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장이 눈짓을 보내며 버스가 스피툭 곰파에 다다랐음을 일러 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둘러보니 하늘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흙색이었다. 세상이 정확히 하늘 반, 땅 반인 것처럼 느껴졌다. 언덕 꼭대기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스피툭 곰파가 보였다. 완만한 경사의 비탈길을 오르며 그제야 고산병을 핑계 삼아 목마른 개처럼 헥헥거렸다. 왼편으로는 레 공항의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곰파 입구에서 조금은 경건해진 마음으로 기도 바퀴를 세 차례 돌렸다. 종교를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몸과 마음에 긴장을 주었다. 관광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관광다운 관광을 나선 우리는 이곳저곳의 풍경을 사진 속에 담느라 분주했다. 스피툭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모든 것이 작게만 보여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사방이 조용하고, 비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선명했다. 라다크의 모든 색깔은 채도가 높았다. 하늘은 내가 알던 파란색보다 훨씬 진한 파란색이었고,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카페, 라다크>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스피툭이었다. 버스를 타고 스피툭을 가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수십번도 더 찾아가던 길이지만 마치 처음인 것 처럼 아득하다. 창스파를 지나 메인 바자르를 지나 레 게이트를 눈 앞에 두고 마니체링을 지나 버스 스탠드에 도착했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버스 스탠드였던 것만 같은데 바로 나타나지 않아 잠시 길을 헤맸다. 늘 사람들이 와글거렸던 버스 스탠드는 인적이 드물다. 큰 소리로 승객을 모으는 차장도 없이 버스들만 차곡차곡 서 있다. 스피툭이라고 적힌 버스에는 아무도 없어 다른 버스를 기웃기웃거린다.

"스피툭?"

몇 번의 질문 끝에 마침내 버스에 올라탔다. 스피툭 가는 버스는 스피툭으로 향하지 않고 레 게이트로 역행한다. 레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서다. 버스 스탠드까지 굳이 오지 않아도 더 편하게 스피툭 곰파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스피툭 곰파를 보며 천천히 걸었다. 기억 상으로는 굉장히 길고 고된 길이었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아마도 갓 라다크에 와서 적응이 되기 전 많이 올랐던 길이라 고생 필터가 끼워져 있었나보다. 작년에도 스피툭에서 스님 친구들을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친구들이 없는 스피툭은 폐가가 된 고향집을 맞닥뜨린 기분이다. 외롭고 스산하다. 모든 법당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고 가장 꼭대기만 열려있다. 그곳에서 다음 날 레에 도착할 피터님의 무사 도착을, 이제 곧 시작할 춘자로드의 무탈과 성공을 빌며 기도했다. 다음 날, 레에 못올 뻔한 피터님이 우여곡절 끝에 오신 것을 보면 기도빨이 꽤 먹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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