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쟁사 16-15 제4차 전역, 지평리 전투

in hive-115078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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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

지평리 적이 남쪽으로 후퇴할 것이며, 퇴각하여 원주에 집결한 적도 계속해서 철수할 것이라고 판단

중국군은 전과를 확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결심

기동병력 제39, 40, 42군 총 8개연대로 13일 저녁 지평리 지역의 적을 섬멸
제42, 66군 주력부대 및 120사단은 원주 이북 및 서남지역까지 진격, 적의 서쪽으로부터 지원을 저지하면서 원주의 적을 견제

인민군 전선지휘부는 일부 병력으로 국군 제7사단을 정면에서 견제, 주력부대는 평창, 정선 방향으로 전과를 확장

작전 상황

13일 저녁 지평리의 적을 향해 공격을 개시

4개대대 병력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미제2사단 23연대, 프랑스군 1개대대와 1개 포병대대, 1개 전차중대,등 총6,000명

견고한 방어준비를 갖춘 적에 대해 야전공격방식으로 급하게 전투를 개시

중국군 공격부대의 건제가 상이하여 부대간 통신연락과 협조가 좋지 않았음

적부대의 일부만 타격했을 뿐 전투를 마무리 짓지 못함

14일

서부전선의 미제1기병사단, 영국 제26여단, 국군 제6사단이 동쪽으로 지원하기 시작

그날 저녁 중국군은 배치를 조정하여 계속 6개 연대 병력으로 공격, 적을 2평방킬로미터의 협소한 지역으로 압박

적은 거점식 방어를 편성하여 병력과 화력을 집중, 중국군은 화력이 약하고 탄약이 부족하여 전투를 마무리 짓지 못함

15일

미제1기병사단 5연대가 후포리에서 곡수리까지 진격, 전차30대, 비행기 100여대의 엄호하에 적의 지원을 저지하기 위해 배치되었던 116, 126 사단을 공격

중국군은 적 보병을 섬멸했으나 전차 20여대는 지평리에 돌입하여 지평리 방어중인 적과 합류

여주방향에서 지원하는 국군 6사단, 영국군 27여단 선두부대로 지평리 부근까지 진출

이외에도 적은 방어태세를 완비한 상태로 더 이상의 공격이 쉽지 않았음

팽덕회의 지평리 전투 중지결정

팽덕회는 계속 지평리의 적을 공격하면 함락시킬 수 있으나 적군을 각개 격파하여 유리한 전역 형세를 조성하는 것은 이미 한발 늦었다고 판단

팽덕회는 피아간 전력을 비교해 본 결과, 지평리를 함락시키고 적증원군을 섬멸하고 중국군 주력부대가 장호원리 이남지역까지 진출하여 서부전선의 적주공집단의 측후방을 위협함으로써 적군을 전 전선에서 퇴각 시키기 어렵다고 판단

이후 작전상황

15일 17시 30분 지평리 지역의 공격 정지를 결심

16일 새벽 지평리에 대한 중국군 공격부대는 북쪽으로 철수하기 시작, 원주부근까지 진격했던 각 군도 동시에 북쪽으로 철수

인민군 전선지휘부 소속부대는 19일에 평창을 수복, 정선에 접근했으나 20일부터 축차적으로 북으로 철수

서부의 작전 상황

서부의 적부대는 한강 남안 중국군 방어진지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계속

제38군은 한강이남의 무갑산, 남치현 일선, 제50군 1개연대는 광주부군에서 적의 연속적인 공격에저항하면서 기본진지를 지켜내고 적 주공집단의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동부전선 반격작전에 효과적으로 기여

지평리전투 이후 제38군과 제50군은 16일 18일에 한강 북쪽으로 철수

2월 16일까지 전역 1단계는 종료 총 23일간 전투에서 적군 22,000명을 살상하고 생포

지평리전투보다 횡성지역전투에 훨씬 비중이 있었으나 우리는 지평리 전투를 더 중요하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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