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zzan문학상 출품작/ 할미와 기저귀

in hive-160196 •  3 years ago 

제1회 zzan문학상 출품작/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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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는 등을 송곳으로 벅벅 긁었다. 흰색 메리야스 속 늘어진 할미의 몸을 송곳이 훑는 그 모습은 굉장히 기괴했다.

“하지 마. 아프잖아”

“아냐 시원해”

늘 할미의 등은 산짐승이 할퀴고 간 듯 기다란 손톱자국과 핏자국이 뒤엉켜 있었다. 무뎌진 감각을 효자손의 뭉툭한 손이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빗, 옷걸이, 휘어진 손을 부셔 거칠게 만든 효자손을 거쳐 마지막으로 자신의 간지러움을 해결할 도구로 할미는 송곳을 선택했다. 송곳은 즉각적이었다. 몸에 생채기를 내는 만큼 시원했고 간지러움이 바로 사라졌다. 할미는 늘 만족한 표정으로 송곳으로 몸을 긁었다. 그보다 할미를 더 시원하게 할 것은 없어 보였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고 어딜 가든 기죽지 않고 할 말을 꼬장꼬장하게 하던 할미가 갑자기 쓰러진 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일을 시작한 해였다. 치가 떨릴 정도로 더운 여름이었다.

“나 오늘 좀 울어야겠어.”

할미의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시큼한 소주 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던 아빠는 말했다.

“할머니 괜찮아 보이지?”

“응.”

“근데 괜찮은 게 아니야.”

말이 끝나고 아빠는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목놓아 우는 걸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강한 아빠를 무너지게 할 만큼 할미에게 죽음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당시 갓 일을 시작한 나는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특히 밤낮없이 일하는 업종이었던 탓에 밤에도 주말에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 가까스로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할미를 찾곤 했다. 내가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방긋 웃으면서 아프지 않다고 말하던 할미는 어서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라고, 내일 회사에 늦지 말고 나가라고, 자신이 없어서 집이 더럽지는 않냐고, 시시콜콜 걱정을 해댔다. 할미의 살 날이 머지않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몸 걱정은 하지 않고, 집안 걱정만 해댔다.

할미와 나는 좀 각별한 관계였다. 죽고 못 사는 이런 건 아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웠지만 그래도 10년 넘게 한방을 쓰고 살을 비비고 잔 정이랄까? 같이 티브이를 보며 드라마 속 악역을 욕하거나, 이불을 뺐어 덮으며 쌓은 소소하고도 깊은 전우애 같은 것.

“할머니, 돈 좀 빌려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것에 비해 부족했던 학창 시절, 내 용돈의 공백을 채워주는 건 늘 할미 몫이었다.

“꼭 갚는 거다.”

“물론이지.”

내가 못 미더운 할미는 채무의 상환을 거듭 강조하며 장롱 속에 있는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 손에 쥐여 주곤 했는데, 난 단 한 번도 갚은 적이 없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려면 갚으려 했는데 내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할머니가 아팠으니. 온종일 집을 쓸고 닦고, 소주 2병도 거뜬히 먹던 할머니는 쓰러지고부터는 조금도 기력을 펴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못된 말도 많이 하고 욕도 잘하며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고집 센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 기운이 그토록 희미해진 것이. 더 이상 가망이 없던 할머니는 병원을 나왔고, 남은 삶을 하루하루 반납해가며, 매일매일 조금씩 더 약해졌다.

“화장실!”

기운이 없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할미였으나 화장실에 가겠다고 우리를 깨울 때만은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였다. 새벽마다 할미는 소리를 꽥 질렀고 자다가 할머니 방에 달려가 번번이 할머니를 부축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은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엄마가 사 온 노인용 기저귀를 차면은 서로가 편할 것을, 왜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10m도 안 되는 화장실을 가면서 휘청거리다 이내 쓰러지고야 마는 앙상한 몸에, 얇은 메리야스 안으로 점점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깊은 생채기에 마음이 아렸다. 죽음은 점점 더 가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언니, 언니”

할미는 언니가 없었고, 10년 넘게 같은 방을 써오면서 할미가 언니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할머니는 동네 언니인지 사촌 언니인지 누군지 모르겠는 언니를 찾기도 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흔히 죽음을 앞둔 사람 앞에 일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 데 그 시점이 아니었다 싶다. 할머니 머릿속에는 지지직거리는 흑백 영상이 천천히 혹은 빠르게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날이 얼마 간 이어지고 며칠 뒤, 부스스하게 깨어난 나에게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 돌아가셨어"

우린 모두 생각보다 담담했다. 나는 천천히 할미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싸늘한 할미의 주검이 아닌 방 한켠에 제 주인을 잃은 노인용 기저귀였다.

‘저 기저귀 환불할 수 있을까?’

할머니의 주검을 앞에 두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왜 그 앞에서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죽음을 회피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그 기저귀가 정말 아까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내가 섬찟했다. 너무도 계산적인 내가 혐오스러웠다. 그러고 나니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선이라는 게 있다. 결벽증이라고 부를 만큼 깨끗하고 청결했던 할머니에게, 기저귀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선 너머의 것이었다. 온종일 집을 쓸고 닦았으며, 매일매일 샤워를 하던 할미에게 "청결"은 일종의 자존심이자 타협할 수 없는 삶의 지표였다. 그 자존심을 지킬 수 없었기에, 제 삶을 놓은 것만 같았다. 뜯어놨지만 한 개도 쓰이지 못한 기저귀에 다시 시선을 옮기고, 나는 엉엉 더 크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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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납니다...ㅠㅠ

할머니와 오래 같이 살았어서 저도 할머니 생각하면 늘 눙물이....

신과함께를 보고도 울지 않고 미나리를 보고도 할머니보다는 아빠의 꿈으로 영화를 읽은 저에요.

소설인줄 알고 읽다가 수필 같다고 느꼈고 수필이 아니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수필이였어요.

할머니와 추억과 애정이 거의 없다시피한 메마른 저조차 너무 슬프잖아요.

할머니와 오래살기도 했고 추억이 많아서 옛날에 할머니 얘기를 하며 종종 울었드랬지요...최근에 파친코 소설을 읽으면서 일제시대를 살고 일본에서 살기도 했던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는데 난 왜 당신 삶의 역사를 제대로 물은 적이 없을까 뒤늦게 후회스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