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을 영화 <더 랍스터> 속으로. 작년, 문화 관련 수업에서 레포트로 적었던 에세이입니다. USB에 소장하다가, 오늘 열 편의 추천 영화 중 <더 랍스터>를 적으며 생각나 올립니다 :)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흥미롭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상 : 영화 ‘더 랍스터’(The Lobster)
연애와 결혼이 필수불가결해지는 세계
나는 대중영화나 상업적 영화보다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인디영화를 선호한다. 그런 영화들은 대체로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급작스럽게 행복한 결말로 규정짓거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 강제적으로 주변인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다. 대중을 목표로 하지 않은 영화는 흥행여부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감독의 예술성에 집중해 서사를 이끈다. 즉 깔끔하며, 처음 구상했던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작위적이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번 에세이는 최근 삼 개월 이내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를 선택했다. 2015년에 개봉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다. 제68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는 최종 관객 수가 육만 명도 육박하지 않은 영화로 이는 비긴 어게인의 60분의 1도 안 되는 수다. 특이한 스토리와 연출법으로 흥미를 유발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흥밋거리로 지나칠 만한 게 아니라는 문제적인 질문을 던져준다고 생각했기에 에세이의 대상을 이 영화로 정했다.
영화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연애를 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버리는 사회’다. 여기서 말하는 동물은, 함축적이고 내포적인 다른 동물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그 동물이다. 그래서 제목이 ‘더 랍스터’인 이유는 아내가 이혼해 커플 메이킹 호텔로 강제 수용되는 남자주인공에게 “45일 내에 짝을 찾지 못하면, 무슨 동물이 되고 싶냐?”라는 질문에 “랍스터”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 분석을 사용해 이 텍스트를 분석하자면, 우선 외연(denotation)은 다음과 같다.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는 것, 사람들에게 연애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시화적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공통점의 커플이 등장한다. 물론 기한 내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공통점을 만들기도 한다. 코피가 자주 나는 여성의 짝이 되기 위해 코에 충격을 가해 코피를 만들어내는 남자나, 영화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감정이 없는 여자와 짝이 되기 위해 역시 감정이 없는 연기를 하기도 한다. 연애하고 싶지도, 동물이 되고 싶지도 않아 도망가는 사람들은 ‘외톨이’라 칭하는데, 커플 메이킹 호텔 혹은 이 세계에 사는 대부분 이들은 이런 사회 속에서 거짓을 고하면서까지 사회에 동화되려 노력한다.
즉, 내연(connotation)은 외톨이와 커플, 그리고 사회를 규정하는 조그마한 법칙들을 통해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이분법적 사회를 보여주는 것과 괴이한 규정이나 법칙에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수용하는 대중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외연, 즉 영화 속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5일간 호텔에 머물 수 있고…….”나 “44와 45뿐이에요. 중간 크기는 없어요.” 혹은 “이성애자, 동성애자 하나만 선택하세요.”다. 커플 메이킹 호텔에 수용되는 이들은 모두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데, 기호에 부가되는 표현적 가치를 통해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규정됨’이라는 내용의 형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조그마한 대사들은 영화를 감싸는 세계에서도 확장해 적용된다. 단순히 성적 취향이나 신발 치수가 두 개로 나눠졌듯, 세계 법칙 역시 외톨이와 커플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문화적인 특수한 개념·보편적 가치로 작용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mythology)는 바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애매모호해서는 안 되고, 사회가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가치를 수용해야 함’이다.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의 교육법은 참으로 잔혹하다. 혼자 식사하면 음식이 목에 걸려 죽어버리지만 둘이 식사하면 음식물을 빼 줄 수 있다는 것, 혼자 다니면 강간을 당하지만 둘이 다니면 강간을 당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을 연출한다. 이런 교육법에도 외연(denotation)과 내연(connotation)이 적용된다. 여기서 파악할 수 있는 내연은, 겉으로 보이는 위험 상황을 통해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괴한 교육법을 통해 만들어지는 신화(mythology)는 탈신화의 노력 없이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가장한다.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그런 설정들을 보며 ‘역시 둘이 되어야 한다. 어서 빨리 짝을 찾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에 ‘연애와 결혼’이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
관객들은 이런 강압적인 규정과 법칙이 잘못되었음을 알기에, 보면 볼수록 더욱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계를 살아가는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은 그 인식을 하지 못한다. 즉, 연애와 결혼을 하지 못하면 동물로 내몰리는 사회를 정상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기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고착화된 이데올로기, 신화의 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외톨이들이 도망친 숲에서 향유하는 음악과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향유하는 음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숲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각자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만, 커플 메이킹 호텔은 짝과 두 손을 부여잡고 격정적인 블루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관객들은 시각적으로 이 두 개의 춤을 맞이하게 되고, 여기서 알 수 있는 내연은 이분법적인 사회를 뜻한다. 고독함을 선택할지, 혹은 맞지 않더라도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며 커플 행세를 할지. 그 두 개의 사회 역시 모두 강압적인 규정이 있기에 혼란스럽다. 내가 만약 도망쳐 고독함을 선택해 그 숲에서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났더라도, 끝까지 모른 척해야 죽음을 면할 수 있다. 주인공 데이비드도 안타깝게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신화는, 기호와 코드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은폐한다.
또한, 신화의 위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관객들은 ‘더 랍스터’를 마주하며 이런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영화 속 세계에만 적용된다고 인식할 것이다.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 버리는 법칙을 보며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도 적용된다. 영화 속 세계처럼 짝을 찾지 못한다고 동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는 반강요적이고 반강제적으로 연애와 결혼을 요구한다. 결혼을 한 사람이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기대, 평균 수명이 더 높다는 수치들을 들이밀며 오래 살기 위해서는 짝을 만나야 함을 설명하기도 하고,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면 어른들은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지” 등의 사사적인 문제를 공적자리에서 대놓고 물어보기도 한다. 오히려 영화 속 세계가 더 나은 구석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커플 메이킹 호텔에 입성할 때의 질문 중 하나는 “이성애자, 동성애자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다. 현 사회는 ‘동성애 혐오’라는 말이 있듯, 동성애를 기피하기는 물론 거부, 혐오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더 랍스터’에서 정상적이고 극히 자연스러운 법칙이라 취급받는 ‘연애 중심 사회’는 관객들에게 비판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포착하지 못하는 관객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중들처럼 오히려 ‘역시 연애를 해야 해.’라 생각할 수 있다. 결말에서 이 사회가 붕괴된다는 장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 이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결국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모두 외톨이로서 동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들은 호텔에서 도망친 외톨이이므로 처음 호텔에 수감되었을 때 원하는 동물로 언급했던 ‘랍스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들이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당나귀가 되어 수감 날짜를 늘리려는 사람들의 총받이가 되어 죽을 거라는 예상을 해본다.
이 텍스트를 접하는 부류는 두 종류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텍스트가 내포하는 신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영화 속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와,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텍스트의 신화를 붕괴하려는 이. 내가 이 영화를 에세이 주제로 정한 이유는 다른 텍스트들과 다르게 감독이 자신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신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신화론을 설명할 때 가장 유명한 예시로 사람들은 파리의 ‘match’ 잡지를 말한다. 흑인 아이가 군복을 입고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위를 향해 경례하는 것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심는 것이라고. 이렇게 대부분의 텍스트는 구성자들이 이데올로기에 기표를 연결하며 내연을 생성하고, 이를 대중들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지배적이고 자연적인 신화로 만든다. 하지만 ‘더 랍스터’는 다르다.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신기한 사회를 외연과 내연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고 신화를 형성하는 것은 같지만, 그 신화가 감독의 생각과 의도와는 정 반대다. 감독은 사람들이 수용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영상으로 시각화해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 신화에 모순이 있음을 얘기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영화 속이 아닌, 우리가 지내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역시 모순이 있음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이다.
영화는 다양한 커플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커플이 한 쌍 있다. 바로 목소리가 예쁘다는 공통점을 가진 호텔 매니저 커플이다. 이들 역시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맺어진 인연이다. 극 중 숲에 사는 외톨이들이 합작해 총을 들고 호텔을 찾아갈 때, 그들은 죽음 앞에서 냉담히 돌아선다. 부대 대장이 남편에게 총을 건네고 아내를 쏘라고 명령하는데 남편은 고민하지 않고 방아쇠를 눌러 버리기 때문. 하지만 그 총은 사실 총알이 없다. 이 장면에서도 바르트의 신화론을 적용할 수 있는데, 우선 외연은 남편이 아내에게 빈총을 겨눠 방아쇠를 누르는 것과 외톨이들이 유유히 방을 나가는 장면이다. 이로 보이는 내연은 45일간 감금되어 만들어진 짝들은 대부분 거짓인 셈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말 신뢰적으로 사랑해서 만들어진 연인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이는 초반에 언급했던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가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두가 당연하게 인식해 지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사실상 연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영화 ‘더 랍스터’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많다. 바르트의 신화론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 채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denotation과 connotation, 그리고 mythology-ideology를 배우며 의미화를 설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대중문화를 수용적으로 접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구조주의 분석을 적용하며 그들이 심어 놓은 신화에 동화되지 않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match’ 잡지를 보며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특히 '이성 교제'에 대한 사회의 통념적인 인식은 사회의 존속을 위해 선택된 전략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인류의 번식을 위해 자연선택된 유전적 전략일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국 전체를 위한 것이므로 개인에게는 지극한 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요. 저도 대학 시절에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랑세'를 내야하는 사회를 그린 'Love tax'라는 시나리오를 썼던 적이 있어서 더 와닿는 비평이었습니다 :)
그리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비단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사회의 외연과 내연을 이미지로 치환시켜 잘 드러내는 영화일수록 더 매력적인 영화가될 수 있겠지요. 영화의 이미지란 이미 그 자체로 현실의 복제인 까닭에 현실 영역의 신화를 밝히는데 탁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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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어린 댓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랑세를 내야 하는 사회라니, 기발한 스토리네요. 읽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비혼을 결심하는 분들이 많아지니 훗날에는 인류의 존속을 이유로 pistol님의 시나리오처럼 사랑세를 걷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pistol님이 매력적이라 느끼시는 영화도 보고싶습니다 :) 리스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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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랑세' 낸다는 그 시나리오 스팀잇에 연재해주세요ㅋㅋ
저 같은 싱글들은 왕창 뜯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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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민님 리스팀타고 왔습니다ㅎ 굉장히 독특한 영화네요..!
넷플릭스에도 있네요. 일요일의 마무리를 이 영화로 해야겠어요.
추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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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감사합니다 :-)
몰입도가 좋은 영화에요. 일요일 마무리 기분 좋게 하시고, 내일도 힘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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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제목과 포스터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콜린 파렐과 레이첼 와이즈가 동업하여 랍스터 가게를 성공시키는 그런 내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네요. 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PS)
마트에 팔던 랍스터 먹고 싶네요. 쪄먹고 남은 껍질은 라면 넣어 끓이면 일품...
아, 이런 분위기 아니죠? 그럼~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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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 이런 댓글 넘 좋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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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결혼할 생각 없는 1인으로서 반가운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랬는지 정작 재미는 별로 없었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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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좀 된터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도 초반에는 집중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재미가 없었다니 아쉽네요 ㅠㅠ @thelump 님의 재밌었던 영화도 추천받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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