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그 시절 놓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1998년 作. 사랑의 경계에 대하여.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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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MBC드라마가 대세였다.
봤지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한 지붕 세가족''아들과 딸''여명의 눈동자'
주제가로 기억에 남는 '질투''파일럿''걸어서 하늘까지'
그리고, 그녀가 나오는 두 작품. '마지막 승부''M'

만나면 좋은 친구우우~MBC 문화방송!


그의 러브하우스

반갑고 추억이 담겨있는 그 배경음악과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따라다라라 따라라라~♬ 그러나 신동엽의 멘트 '자 어떻게 바꼈을까요?'는 없고, 방세를 받으러온 주인 아주머니의 성화만 있다. Before&After가 있다는 것은 같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는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주인은 그대로고, 철수(이성재)의 러브하우스에는 주인은 바뀌었지만 예전의 분위기는 그대로다.

군대 말년휴가를 나온 철수는 자연스레 여자친구 다혜(송선미)의 집으로 향한다. 그의 손에 들린 그녀 집의 열쇠도 자연스럽다. 철수에게 이별도 통보하지 않은 채 다혜는 집을 떠나고 그 자리에 춘희가 대신 들어왔다. 주인이 바뀐 철수의 러브하우스, 그의 마음속 상자에는 과연 Before&After가 생겨날까?


그녀의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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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기사 춘희. 그녀에게는 프레임을 경계삼아 몰래 흠모하는 사내가 있다. 춘희는 인공(안성기)을 카메라의 프레임속에 담고 모니터의 프레임속에 그의 이야기를 쓴다.

춘희는 철수와 다혜가 이별이라는 마침표를 찍는자리에 동석한다. 그리고 담배 한 모금처럼 들어왔다 사라지는 그의 사랑의 끝을 지켜본다.

(물잔을 돌리며 철수에게 건내는 춘희) '요기로 마셨어'
'녹지도 않는 걸 강에다 버리면 어떡해, 후회되면 니것도 마저 던져. 그럼 둘이 같이 있게 돼잖아.'

이별이 아니었다면 다혜와 함께가려던 그곳으로 철수는 급히 차선을 변경하며 방향을 돌린다. 표지판을 경계에 두고 철수화 춘희는 갈라진다. 미술관은 뭐하러 가냐는 철수의 핀잔에 춘희는 답한다.

'네모난 창틀밖으로 보는 풍경같잖아.'

위병소를 나오기 전부터 철수의 설렘은 이미 러브하우스에 도착해있었다. 철수는 다혜의 집인 줄 알고 춘희의 밀린 월세를 엉겁결에 대신내었다. 의도치 않던 월세에 물려버린 철수는 춘희의 집에 머물며 그녀가 쓰는 시나리오를 함께 집필한다. 표지판을 사이에두고 멀치감치 떨어져 있는 미술관과 동물원의 거리 만큼, 춘희와 철수가 그리는 사랑의 공간은 아직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다혜가 빠져 텅빈 철수의 러브하우스. 인공에 빠져있던 춘희의 프레임. 철수와 춘희가 그리던 사랑의 교집합은 아직 콩알만하다. 접점에서 맞닥드린 철수의 러브하우스와 춘희의 프레임의 과연 합집합이 될 수 있을까?


이정향의 화이트초콜릿, 허진호의 다크초콜릿.

표지판을 경계에 두고 서로 향하려던 곳이 달랐듯, 둘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좀 처럼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춘희와 철수가 그려내는 극의 방향 끝은 같은 색깔일까? 그래서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것일까? 서로가 밀고 당기는 힘, 그 경계의 싸움에 춘희는 러브하우스에서 철수를 밀어낸다. 그리고 그가 프레임에 남기고 간 흔적들을 모니터의 경계에서 확인한다. 철수를 밀어 낸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아직 그의 차는 그녀의 집앞 그대로이다. 창밖의 철수가 걱정되던 춘희는 우산을 쓰고 집 앞으로 내려가 차창안의 철수에게 자신의 상극을 보여주며 그를 러브하우스로 다시 이끈다.

감독 허진호는 이 장면을 '봄날은 간다'에서 오마쥬했을까.

자동차 창 밖의 그녀. 자신의 공간으로 오기를 넌지시 건네는 한마디. 그후로 함께하는 둘. 물론, 은수와 상우, 춘희와 철수는 다르다. 감독 이정향이 그리는 사랑과 감독 허진호가 그리는 그것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다르듯이.

아무튼, 각자의 사랑을 그려내던 모니터의 프레임의 경계에서 다툼이 있던 춘희와 철수는 서로를 밀어내던 러브하우스의 경계에서 다시 화해하고 콩알만하던 접점을 찾아 다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다.

허진호가 그려내는 사랑과는 다른, 이정향이 그려냈지만 그 극 안에서 춘희와 철수가 그려내는 초콜릿은 씁슬해질까, 달콤해질까? 둘이 써내려갈 이야기의 제목이 정해졌다. '미술관 옆 동물원'

콩알만하던 그 접점에 서서 미술관과 동물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둘 사이에서 치워지며 교집합의 크기가 넓어질까?

춘희가 그려내는 미술관의 액자속에는 그녀 자신 혹은 철수를 투영한 다혜가 있고, 철수가 그려내는 동물원의 우리속에는 그 자신 혹은 춘희를 투사한 인공이 있다.

춘희와 철수가 각자의 사랑을 그려 던져 놓은 그곳 초콜릿의 맛은 어떠할까?


철수 너란 녀석

자칫 잘 못보면, 아니 나처럼 놓친 사람들이 다시 보면 이 영화는 '심은하의, 심은하에 의한, 심은하를 위한 영화'로만 비춰질 수 있다. 다음 장면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이 되는 곳에서 또다른 주인공이 전혀 다른 행동을 할 때 그때야 비로소 눈에 띄지 않던 그 주인공을 다시 본다.

철수는 약속에 늦은 춘희에게 자신의 차로 바래다 준다 하지만, 전날의 사소한 다툼으로 춘희는 철수의 호의를 거절한 채 멀어져가는 버스를 붙잡으려 오르막길을 달려간다.

자신의 차 엑셀에 탄 철수, 엑셀레이터를 밟고 그녀가 놓칠 뻔 한 버스를 가로막아 세우고, 엑셀에 춘희를 태울 줄 알았는데, 의기양양하게 시트에 앉아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그녀를 자신의 차에 태우지는 않았지만 철수는 그녀의 마음속으로 가는 엑셀을 밟았다.


러브하우스 옆 프레임

미술관 옆 동물원, 표지판을 바라보며 양갈래로 나뉘어 등을졌던 두 남녀의 발걸음은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다. 인도에서는 나란했던 발걸음이 대로의 중앙차선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어디를 향해 건너야 할지 고민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는 신호등이 없다. 그 둘에게 누군가가 정해주어야 할 방향이 없다는 듯이.


프레임 옆 러브하우스

같은 방안에서 다른 프레임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춘희와 철수. 다른 장소,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각자의 상대를 바라보던 철수와 춘희. 둘이 다시 만난 그 푯말, 양갈래로 나뉘던 그 표지판에는 신호등이 없다. 춘희와 철수가 망설임을 느끼던 그 대로에는 주위를 빠르게 지나가던 방해요소들이 가득했지만, 그것들은 결국 철수의 러브하우스와 춘희의 프레임속에 묻힐 그것들이었다.

춘희의 마음 속 동물원에서 걸어오던 철수, 철수의 마음 속 미술관에서 걸어오던 춘희.

그 둘앞에는 신호등이 없다. 처음 서로 방향을 달리해 걸었던 그 길. 뒤를 돌아선 그 둘 앞에는 미술관도 없고, 동물원도 없다.
둘이 써내려간, 서로가 심사위원이 되었을, 둘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의 영화는 끝이 났지만, 춘희와 철수의 영화는 이제 시작이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지우다

미술관 옆 동물원, 그 갈림길에 놓인 경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옅어졌다.
경계없이 자유롭던 둘 춘희와 철수의 사랑의 공간은 무언가에 이끌리 듯 가까워졌다. 그 경계의 짙음은 서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희미함에서 선명함으로 바뀌었고 선명함은 다시 희미함으로 바뀌었다. 앞서의 희미함은 서로의 시공간이 저 멀리에 있을 때의 것이고, 뒤의 희미함은 경계가 사라져 둘의 시공간이 접점을 뚫고 만났을 때이다.

시간과 공간의 그 경계에서 우리는 서로를 밀고 당기며 애를 태운다. 누군가에겐 선명하고 누군가에겐 희미할 그 경계, 과연 짙음과 옅음의 적당함은 어떠할지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옆에 있을 것인가, 누군가의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미술관 옆에 있던 철수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남의 사랑이야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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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봐야 할 영화는 많네요..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나게 하는 글이군요

그 당시에 보셨나보군요. 저는 이제야 보게되었는데 좋은 영화였습니다.

아니, 이런! feyee95님하고 두분이서 넘 취향이 같으시군요 ㅎㅎㅎㅎ 두분 혹시 잘 아는 사이? 도플갱어? 나도? 셋다 취향이 같다!!!

사실 미동님 포스팅전에 미리 보려고 점 찍어두었는데...미동님 포스팅 보고 다른 영화를 볼까 하다가 이 영화 말고는 없을 것 같아서 보았어요. ㅎㅎㅎ8월의 크리스마스도 재밌게 보셨다면 우리 모두 같은 취향 아닐까요?ㅎㅎㅎ

마지막 문장이 참신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사랑이야기를 더 쉽게 이야기하던데.. 남의 이야기나 내 이야기나 다 어렵지만 저는 이제는 사랑~보다는 동반자! 가족! ㅋㅋㅋㅋㅋㅋㅋ

막상 남의 사랑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니 더 어렵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ㅠㅠ
몇 일 전에 tv에서 봤는데 야노시호는 한 팀이라고 하던데요?ㅎㅎㅎ 팀플레이 화이팅입니다!

히야 글 잘 쓰신다.. 좋은 평론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겠죠? ^^
3, 4번이나 보신 티도 많이 나고 글로 풀어내려고 노력하신게 보이네요..ㅎ
멋져요 ㅎㅎㅎ
남의 사랑이야기. 맞아요 남의 사랑이야기 진심이 담긴 글로 쓰는 건 어려운 거 같아요 ^^
리스팀할게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
다시한번 영화를 생각하게 되네요.

사실 줄거리의 나열이라 잘 쓴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줄거리보다는 대사들이 너무 좋은 영화라 느껴서 그 감정들을 옮기기에는 제가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몇 번을 본 것 같아요.

미동님이 좋게 읽어주시니 더 기분이 좋네요. 고맙습니다!

이 영화를 포함해 그 시절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ㅎㅎ

놓친 영화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ㅎㅎㅎ2000년까지만 가보려구요.

이 영화 정말 좋아해서 감독님 강연도 들었어서 남다른 애정이 있는 영화에요~ 오래된 영화지만 담백하게 사랑 얘기를 잘 담은 것 같아서 좋았어요.^^

이정향 감독님 다음작품 말씀 없으셨나요? 대사가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집으로'도 재밌게 보았는데 이 영화도 지금보니 더 좋게 다가온 것 같아요.

네 제가 아마 영화가 나왔던 1998년도에 뵈었던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