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기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일 겁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제때에 기회를 얻지 못하면 보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 소유하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뭐든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조건의 제일은 물론 돈이구요.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사람들은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순간들을 모두 헌납한 채 때와 기회를 낭비합니다.
그날, 그 순간, 그때에 하지 못한 그것은, 어떤 날, 어떤 순간 어떤 때에 얻고 얻어봐야 그날, 그 순간, 그때의 그것과 같을 리 없습니다. 어제는 달아 보이던 캔디도 오늘은 입이 거부하는 걸, 어제는 멋져 보이던 그 옷도 오늘은 본전 생각이 나는 걸, 그래서 그날 그때에 맛봐야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생은 자꾸 무의미해집니다. 쌓는 것들은 사실 그런 순간들의 총합입니다. 많이 쌓았다면 그는 수많은 때와 기회를 바꿔 먹은 것입니다. 그게 좋으면 됐습니다.
공간이 우리를 초청할 때, 우리는 자꾸 이것 저것을 잽니다. 공간은 시간과 달라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고, 문제는 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고 공간의 초청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공간은 생물이라 때의 변화와 함께 초청했던 손을 거두고 어떤 식으로든 요청을 거부하기 일쑤입니다.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다리기도 합니다. 오래오래 자기 주인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때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염원하지 않은 사람은 이것이 기회인지 모르겠다며 망설이지만, 염원해 온 사람은 이것이 기회라고, 바로 이것이 기회라고, 그것을 바로 알아봅니다. 매일매일 떠올리고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에게 때가 스쳐 지나갈 리 없습니다. 공간은 그런 이에게 문을 활짝 엽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조건으로 그대를 맞습니다. 필요한 건 시간의 길이만큼 쌓아 올린 염원입니다.
오늘의 그곳은 그때의 그곳이 아니지만, 염원은 다르지 않습니다. 기회가 아니었다면 때를 기다리면 되고, 기회인데 놓친 거라면 염원이 생겨나지 않을 겁니다. 염원인지 후회인지는 기다려지는지 마음만 상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만 알겠죠.
코로나로 버려졌던 공간들이 다시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사람들은 다시 공간을 염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거리에 가득하던 임대 딱지는 개업준비를 알리는 현수막들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가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인간의 공간 경험에 대한 갈증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인간 역시 우주의 공간 그 자체이니까요.
모험를 품은 공간.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63. Le Marais